연합뉴스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매출을 2개 분기 연속 앞섰다.
두 회사의 매출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 TSMC가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선점한 후 격차를 벌리고 있는데 수장의 '사법리스크'를 털어낸 삼성전자가 추격에 속도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작년 4분기에 매출 30조1천억원, 영업이익은 2조9천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지만 매출은 주력인 메모리 매출이 모바일과 PC용 수요 약세에도 고부가 제품 판매 확대에 힘입어 4분기 역대 최대를 달성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AI 열풍에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내줬고, AI 반도체 생태계를 이끄는 엔비디아의 퀄테스트 통과가 지연되며 아직 공급망에 합류하지 못했다.
이런 영향으로 삼성전자 매출은 엔비디아를 포함해 빅테크 등 AI 칩 생산 요청이 쏠리고 있는 TSMC의 매출을 좀처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TSMC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은 8684억6천만 대만달러(우리돈 약 38조4천억원)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작년 4분기 TSMC의 응용처별 매출을 보면 AI가 활용되는 고성능컴퓨팅(HPC)이 53%로, 기존에 최대 비중을 차지했던 스마트폰(35%)을 크게 앞질렀다.
AI 반도체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한 지난해만 해도 두 회사 매출은 2분기에는 28조원대로 비슷했지만 격차가 3분기 약 3조원에서 4분기에 8조원 정도까지 벌어졌다.
작년 3분기 매출의 경우 삼성전자 DS부문이 29조2700억원, TSMC가 7596억9천만 대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32조3천억원)였다.
앞서 삼성전자는 2021년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반도체 매출에서 인텔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업황이 본격적으로 둔화하기 시작한 2022년 3분기를 시작으로 2024년 1분기까지 TSMC에 매출 역전을 허용하면서 매출 1위 자리도 함께 내줬다.
지난해 2분기에 근소한 차이로 삼성전자 매출이 TSMC를 재역전했다가, AI 칩 수요 폭증과 맞물려 3분기에는 다시 TSMC가 앞지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부터 시스템메모리까지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회사인 반면 TSMC는 파운드리만 하는 만큼 실적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반도체 시장을 이끌며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경쟁도 하는 두 회사의 위상을 고려하면 매출 1위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양사의 이런 매출 격차는 올해 1분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증권가에서 예상하는 삼성전자 DS부문의 1분기 매출은 작년 4분기보다 15%가량 줄어든 25조원대 안팎이다.
삼성전자 역시 최근 실적 발표에서 올해 1분기에 모바일·PC 고객사의 메모리 재고 조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실적 개선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주력인 범용(레거시) D램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HBM은 아직 강력한 실적 반등을 이끌지 못하는 상황이다. 파운드리도 수주 부진과 낮은 가동률로 실적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반면 TSMC는 올해 1분기 매출 전망치를 작년 1분기보다 32% 증가한 250억~258억 달러로 제시했다. 한화로 환산하면 36조~37조원 수준으로, 삼성전자 매출 전망치보다 10조원 가량 많다.
TSMC는 1분기에 탄탄한 AI 수요가 스마트폰 비수기 영향을 상쇄해 호실적을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삼성전자도 최근 AI 산업에 대한 대응 전략에 고심하고 있어 그 성과에 관심이 쏠린다.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항소심 무죄 선고 직후 오픈AI 샘 올트먼 CEO(최고경영자)와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과 만나 역대급 AI 프로젝트로 불리는 '스타게이트' 협력 등을 논의했다.
삼성전자가 스타게이트에 합류하게 되면 반도체 사업 부진으로 촉발된 '삼성 위기론'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