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에 놓인 가운. 연합뉴스정부가 비상계엄 사태 당시 포고령에 '의료인 처단' 내용이 담긴 것을 두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사직 전공의 복귀를 위해 수련 및 입영 특례 조치를 내놨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도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할 수 있다며 의료계에 손을 건넸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여전히 싸늘한 분위기다. 전공의 7대 요구안 등 의료계 요구에 대해 아직 구체적 답변이 없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의정갈등은 계속되는 가운데 올해 의료 공백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의정간 대화가 전격적으로 이뤄진다 하더라도 새내기 의대생과 휴학 의대생까지 7500명을 한 번에 교육해야 하는 숙제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전공의 복귀 수련·입영 특례…의대 정원 '제로 베이스' 논의
연합뉴스1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를 위해 수련·입영 특례를 마련했다.
14일부터 시작되는 레지던트 1년차 추가모집 등 상반기 수련 전공의 모집 때 사직 전공의들이 원래 병원에 복귀해 수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사직 1년 내 복귀 제한' 규정을 해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사직 전공의 등 의무사관후보생이 수련에 복귀하면 수련을 마친 후 의무장교 등으로 입영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원칙적으로 의무사관후보생은 수련기관에서 퇴직할 경우 병역법 시행령에 따라 입영해야만 했다.
이번 상반기까지 사직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의료 공백이 한층 심해질 것을 우려한 정부의 고육지책이다.
이는 대한의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대한수련병원협의회, 상급종합병원협의회, 국립대학병원협회, 대한사립대학병원협회 등 의료계 6개 단체가 보건복지부에 건의한 내용이기도 하다.
12·3 내란사태 당시 '전공의 포고령'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일 "포고령 내용으로 상처를 받은 전공의분들과 의료진 여러분들께 진심어린 유감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의정 간 최대 현안인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놓고도 의료계가 대화에 나선다면 '제로베이스'(원점)에서 협의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실컷 때려놓고 마치 특혜주는 듯…진정성 없어" 싸늘
연합뉴스하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싸늘하다. 정부가 당장 전공의 입영, 전문의 부족 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에 대해 '액션'만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지역 의사협회장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전공의 등 의료계를 열심히 때려놓고 마치 특혜를 주는 것처럼 이야기하니 (의료계에서는) 아무런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전공의들이 요구하는 7가지 사안에 대해 어떤 전향적 논의를 할 것인지, 적어도 핵심 내용에 대해서는 짚어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번 특례에도 전공의들이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한 이후에도 정부가 여러 차례 특례를 마련했지만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직 전공의 절반은 의원과 병원에서 근무하는 상황이다.
한 필수의료과 사직 전공의는 "정부가 어떤 특례를 준다 해도 현장이 바뀌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사실 바뀐다 해도 (필수의료과 전공의들의 경우) 이제는 돌아갈 마음이 아예 사라진 것 같다"고 언급했다.
"마음이 떠난 전공의들을 불러오려면 (사직 전인) 1년 전과는 확실히 달라져야 한다"는 게 그나마의 조언이다.
전격 의정 대화될까…올해 의료 공백 심화·의대 교육 '첩첩산중'
정부, 의료계와 의학 교육계에 드리는 말씀 발표. 연합뉴스이처럼 정부의 태도 변화 속에도 의료계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해, 의정간 대화가 조속히 마련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26년 대입 일정에 맞추려면 내달 안에 의대 정원 논의를 마무리 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의료계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A씨는 "지난해 2월에 뜬금잆어 '2천명 증원'을 발표한 정부가 지금 와서 '얼른 논의하자'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정부의 이 정도 발표에 의료계가 '이제 돌아가자'고 할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1년 동안 이어진 의료 공백은 올해도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전공의들이 대거 떠난 병원에서는 전문의들의 사직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3~10월 전국 수련병원 88곳에서 사직한 의대 교수 등 전문의는 1729명으로, 전공의 이탈 이전인 2023년 같은 기간 사직한 865명에 비해 약 2배 증가했다.
대학병원의 경영난도 악화일로다. 전공의 사직 이후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대학병원들은 병동 통·폐합 등 축소 운영하고, 간호사 등 직원들의 무급휴가 신청까지 받았다.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 4곳(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세브란스병원)의 지난해 상반기 적자는 2135억 원에 이른다.
또 의정 대화가 전격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의대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올해 의대 신입생 4500명과 휴학한 2024학번 3천명까지 총 7500명을 한번에 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신임 회장도 당선 직후 "2025학년도 의대 교육 '마스터 플랜'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막막한 현실 속에, 정부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새 의협 집행부는 공식 입장을 준비중이다. 의협은 오는 14일 김 신임 회장 취임식, 16일 기자간담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내놓을 입장은 지루하게 이어진 의정갈등과 의료대란의 향후를 전망하는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