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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만화' 황벼리 작가 "청년들의 단절·고립감 공감했으면"[만화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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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믿을 수 없는 영화관' 통해 청년 이야기
"저마다 현실 탈출 꿈꾸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견뎌낼 수 있는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고 싶어"

만화 '믿을 수 없는 영화관' 황벼리 작가와 노컷뉴스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만화 '믿을 수 없는 영화관' 황벼리 작가와 노컷뉴스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한국만화가협회가 2024년 올해의 출판만화로 선정한 장편만화 '믿을 수 없는 영화관'(한겨레출판, 2024)은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는 영화관 직원 풀잎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 머물고 싶은 영화관 관객 이소, 떠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섭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을 그린 황벼리 작가는 "이 만화를 보는 독자들이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공감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인공들은 현실 세계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뭔지 모를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단절, 고립된 채 살아가는 듯한 주인공들은 각자의 판타지 세계로 잠시 떠나지만 결국 탈출에 실패한다. 그러나 돌아온 현실에서 이들은 나름대로 잘 버티며 머물고 있음을 깨닫는다.

황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실패 하는 현실 탈출기'이자 '청년들의 외로움에 대한 단상'을 담고자 했다고 했다. 독자들은 진솔한 구성, 섬세한 작화와 함께 수줍지만 젖어드는 듯한 주인공들의 주옥같은 대사에 빠져든다.

"지나간 시간 위로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 고여 있던 시간이 마르면 /  반짝이는 순간의 결정들이 서서히 드러나는 거죠. / 그러니까 기억은 사탕 같은 거예요. 영원히 녹지 않는 사탕요."


2024 올해의 출판만화 '믿을 수 없는 영화'. 황벼리 작가 제공 2024 올해의 출판만화 '믿을 수 없는 영화'. 황벼리 작가 제공 

미대에 진학해 조형미술과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한 황 작가는 정작 현대미술 개념을 체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학창 시절 만화를 좋아해 무작정 그림을 그리겠다며 미대에 진학했지만 친구들이 작품 표현에 집중할 때 황 작가는 작품에 스토리를 입히는 것이 더 좋았다고 한다. 결국 전공과 자신의 미적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방황한다. 그런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진 만화가 다가왔다.

"운 좋게 졸업 전시도 했지만 이렇다 할 게 없었어요. 미술 전공을 살리려면 돈도 많이 들다 보니 캐릭터 공모전에도 응모해보고 한동안 방황했는데, 우연히 서점에서 크리스 웨어 작가의 400페지에 달하는 그래픽노블 '지미 코리건 :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를 보고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크리스 웨어는 디테일과 내러티브를 강조하며 디자인 개념까지 더하는 등 그 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로 아이너스상, 하비상, 앙굴렘 작품상 그랑프리 등을 수상한 그래픽노블계의 거장이다. 황 작가의 롤 모델인 셈이다.

크리스 웨어처럼 제대로 된 만화가가 되기 위해 만화 전공이 있는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꿈꾸었던 만화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그렇게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첫 만화가 단편 모음집 '다시 또 성탄'(2017)이다. 우리에겐 아직 낯선 철학적이면서 긴 스토리 라인을 가진 그래픽노블인 이 작품은 나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서 떨쳐낼 수 없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의 작품들은 외로움과 단절, 고립, 존재에 대한 질문을 통해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내는가 하면, 관계에 대한 색다른 접근을 통해 우리가 은연중에,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음을, 연결되고 싶어함을 지속해서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 같은 그림 이야기는 종이가 물에 젖듯 순식간에 빠져든다.  

2017년 졸업작품 '다시 또 성탄'을 시작으로 독립출판만화 '사진 한 장의 무게', '아무런 맛이 나지 않을 때까지', '보통권' 등 감각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 세계를 구축한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황벼리 작가를 장편만화 '믿을 수 없는 영화관'과 함께 노컷뉴스 [만화인]이 만났다.

황벼리 작가. 김민수 기자황벼리 작가. 김민수 기자

첫 장편만화 '청년, 그 외로움에 대한 단상' 그린 이야기


▶'믿을 수 없는 영화관'은 어떤 만화인가?

= 현실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 실제 떠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탈출기다. 그렇다고 꼭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잘 머물고 있다. 실패하는 현실 탈출기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세계를 꿈꾸는 주인공들이 결국엔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실패라면 현실 안주를 의미하나?

= 주인공들이 보게 되는 영화관의 영화 속 다른 세계는 저마다 이유가 존재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다. 이해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떠난다. 떠나지 않으면 죽는 갈림길에 있는 주인공들 역시 떠났거나 떠나지 못해서 죽을 것 같은 게 아니라, 이곳 현실에서 머물고 견뎌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품에서도 등장하지만 창문에서 뛰어내리면 죽는다는 걸 알지만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뛰어내린다. 원하는 답을 결국 찾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이 세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황벼리 작가의 중단편 만화(왼쪽부터) '사진 한 장의 무게', '아무런 맛이 나지 않을 때까지', '다시 또 성탄'. 작가 제공 황벼리 작가의 중단편 만화(왼쪽부터) '사진 한 장의 무게', '아무런 맛이 나지 않을 때까지', '다시 또 성탄'. 작가 제공 

▶독자들이 이 작품에서 특별히 느꼈으면 하는 감정이 있나?

= 이 만화는 청년들의 외로움에 관한 단상이다. 혼자 커피 만들고 영화관 지키고 혼자 상담하고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서 저마다의 현실 세계에 있지만 그 안에서 뭔가 모를 외로움, 단절, 고립감을 가지고 있는 젊은 청년들의 외로움이 전해졌으면 한다.


▶풀잎 친구가 풀잎을 보고 뜬금 없이 '공터에 버려진 전기 주전자 같다'고 말한다.

= 주변과 어울리지 않고, 일반 쓰레기도 아니고, 아무도 치우지 않는 전기 주전자의 모습을 통해 저마다의 환경에서 가치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듯한 이들의 모습이라는 것은 그저 타자의 시선일 뿐이고, 현실에서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기에 타자의 시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처한 환경은 여러 가지 사회 현상으로 분석될 수 있을텐데?

= 영화관 속 다른 세계에서 돌아온 주인공들이 바뀐 것은 마음가짐이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강원도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방법은 잘 모른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교통편이나 경비가 필요하고 어떻게 여행을 해야 하는지, 여행에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지 알게 된다. 그게 무섭의 미래가 되는 이야기다. 풀잎은 과거, 이소는 현재를 담고 있다. 무섭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변해도 된다는 성장 이야기다. 조금씩 용기를 내보자, 혼자인줄 알았는데 서로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용기를 내보자. 주변을 둘러보자. 결국 혼자가 아님을 우리도 깨닫지 않을까.


▶상업 만화나 웹툰이 아닌 독립출판만화에 터를 잡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 사실 독립출판만화에 짧지만 7년 간 있으면서 정말 이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인가 하는 고민을 여러 번 했다. 시장이 열악한 측면도 있지만, 저는 그래픽노블을 주류 만화의 하위, 독립만화 측면에 있다고 보는데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그래픽노블은 더욱 어중간한 위치에 있게 됐다. 다만, 만화인데 소설 같은 만화다 보니 오락성이 강한 일반 만화와의 차별점이 분명하고 최근 여러 독립출판만화 페어가 생기면서 팬층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올해 처음 열린 독립출판만화 판매전 '칸새'와 독립만화 오프라인 전시 마켓 '하고싶은 만화전'에 많은 팬들이 줄을 설 정도로 몰려 작가들 사이에선 화제가 됐다. 매년 서울시립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에도 20·30대 젊은 독자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서 종이로 된 만화가 웹툰의 공세 속에서 계속 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게 됐다. 특히 젊은 학생, 청년들이 우리 독립출판만화를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정신 바짝차려야겠다는 긴장감을 갖게 된 계기였다.  

황벼리 작가. 김민수 기자황벼리 작가. 김민수 기자
황벼리 작가의 취미이자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새 연구다. 시간 날 때마다 탐조를 떠나거나 깃털을 모아 순서대로 날개를 완성해 조류의 특징을 기록한다. 한 때 만화가의 길을 뒤로하고 조류 생태 활동가에 지원하기도 했다. 황벼리 작가 제공  황벼리 작가의 취미이자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새 연구다. 시간 날 때마다 탐조를 떠나거나 깃털을 모아 순서대로 날개를 완성해 조류의 특징을 기록한다. 한 때 만화가의 길을 뒤로하고 조류 생태 활동가에 지원하기도 했다. 황벼리 작가 제공 
▶'깃털 수집가'라고 들었다. 작품을 위해 수집하나?

= 코로나 팬데믹 당시 일이 없을 때 '탐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쉴 때나 시간이 나는 대로 철새 지역이나 새를 관찰 할 수 있는 곳으로 탐조 활동을 간다. 전문적이기 보다는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새의 깃털을 모은다. 도감에 따라서 순서대로 깃털을 모으고 시민 자연관찰 커뮤니티 '네이처링'을 통해 관찰일기를 공유한다. 작품 활동이 어려워졌을 때 새와 관련된 생태 활동가로 직업을 바꾸려고도 했는데, 결국 취미로 남게 됐다. 기회가 된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새 도감을 만들어보는 것도 생각해본다.


▶새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였나?

= 고등학교때 새 분류학이나 조류 연구를 하고 싶어 이과를 선택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내가 새를 연구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싶은거였구나 깨달았다. 그래서 미대 진학했다. 코로나 시기에 탐조를 접하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그래서 취미로 새 관찰일기를 쓰고 깃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단편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소개해달라.

= 단독 출간은 아니고, 내년 후반기 4~5월 목표로 60~70페이지 중단편 엔솔러지 작품집으로 출간이 계획돼 있다. 같은 주제로 희곡과 에세이, 만화로 구성되는 엔솔러지 작품집이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주제로 하게 되는 작품이다. 기대해달라.


▶하고 싶은 만화, 해야 하는 만화가 있다면?

= 글과 그림이 긴밀하게 연결되고 서로가 꼭 필요한 만화를 그리고 싶다. 쉽게 말하면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서만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유명한 로알드 달 작가의 소설 중에 '백조'라는 작품이 있다. 넷플릭스에 웨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로알드 달 원작 단편 영화 컬렉션으로도 만들어진 동명 작품이다. 소설 속 화자가 영화 주인공으로 등장해 나레이션을 들려주는데, 영화 이미지와 나레이션이 계속해서 조금씩 어긋나는 부조화를 보여주는 독특한 연출처럼 만화 이미지와 텍스트가 조금씩 어긋나면서 나타나는 갭(Gap)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황벼리 작가. 김민수 기자황벼리 작가.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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