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2.3 내란 사태에 육군사관학교 90년대 학번들이 대거 연루돼 군 안팎의 비판과 우려가 일고 있다. 이들은 1988년 '5공 청문회'를 학창시절 지켜본 뒤 육사에 입학한 기수로, 전두환 신군부의 어두운 유산과 결별한 세대로 여겨졌다.
박정희 유신세대인 김용현(38기) 전 국방부 장관이나 전두환 정권 때 입교한 노상원(41기) 전 정보사령관은 물론 이번 사태의 또 다른 핵심인 80년대 학번 여인형(48기) 방첩사령관 등과도 다를 줄 알았지만 기대를 저버렸다.
1990년 입교생인 육사 50기에는 문상호 정보사령관(소장), 구삼회 2기갑여단장(준장), 이상현 1공수여단장(준장) 등이 포진해있다. 이 여단장은 그나마 부하들을 계엄군으로 출동시킨 잘못을 눈물로 뉘우쳤지만, 문 사령관과 구 여단장은 사태에 깊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
특히 문 사령관은 정보사라는 폐쇄적 조직의 특성을 활용, 이미 전역한 '올드보이'(OB)와도 결탁해 비선 점조직을 운용한 혐의가 짙다. 군대를 정치적 야욕 달성을 위한 개인 사병처럼 부리고, 심지어 특수요원(HID)까지 동원한 비밀공작 의혹까지 제기됐다. 전두환의 '하나회'도 혀를 내두를 일이다.
육사 50기에선 이밖에 이모 방첩사 참모장, 최모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 소모 육사 교장 등도 이번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현재 수사기관에 입건된 방정환(51기) 국방부 정책실 차장과 정성우(53기) 방첩사 1처장 등도 마찬가지다.
방 차장의 경우 구삼회 여단장과 똑 같이 휴가를 내고 직무와 전혀 관계없는 과천 정보사 100여단에 비상계엄 당일 출근했다. 이들은 정보사 내 별동대로 특수임무를 수행할 '수사2단'(제2수사단)의 단장과 부단장을 맡을 예정이었다.
물론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계엄이라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에서 앞뒤 분간 못하고 휩쓸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김현태(육사 55기) 707특임단장은 "몰라서 행동했지만, 모르는 것 또한 제 책임이라 생각하고 부대원들을 내란죄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빠뜨린 것에 사죄한다"고 담대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담자들은 역사 앞에 지은 대죄에 진정한 참회보다는 구차한 자기 구명에 급급하다. 단 1명도 부당한 명령에 항명은커녕 소극적 저항조차 하지 않았고 계엄이 실패하자 비겁한 변명과 거짓말로 군복을 더럽혔다.
(왼쪽부터)김용현 전 국방부장관·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여인형 방첩사령관. 연합뉴스
45년 전 12.12 사태 때 말 그대로 중과부적의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산화한 육사 선배 김오랑(25기) 소령의 기개와 용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기껏 무속인 OB가 내민 '진급' 미끼에 낚여 내란 성공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한 최악의 군인들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국방부는 12.3 사태 이후 쏟아지는 온갖 질책을 감수하면서도 "(그래도) 우리 군에 사조직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가담자가 거의 100% 육사 출신인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육사 출신의 자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정말 그렇다면 더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순혈주의와 선민의식이 지나친 나머지 문제의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홍범도 흉상 철거를 육사만 모른 척 할 때부터 병세가 깊어진 것 같다. 왜 육사 폐교론까지 나오는지 자성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