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난동범 최원종. 황진환 기자지난해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2건의 사건이 있었다. 서울 신림역과 경기 분당 서현역 인근에서 각각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이다.
가해자 조선(34)과 최원종(23)은 일면식이 없는 시민들을 무작위로 공격했다. 인파가 붐비는 공공장소였지만, 흉기를 든 이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두 가해자는 결국 출동한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그러는 사이 신림역 사건으로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서현역 사건에선 2명이 숨지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에는 이 같은 '이상동기 범죄'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부족하다.
모방범죄를 막기 위해선 다중이용시설 현장에서 '시민 방패' 역할을 할 수 있는 경비원에게 보다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관심이다.
①정신장애 ②빈부격차 ③사회적 배제
25일 행정안전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매년 발간하는 'FUTURE SAFETY ISSUE'에 따르면 재난안전연구원은 이상동기 범죄의 원인으로 △정신장애 △빈부격차 심화 △사회적 배제를 지목했다.
3가지 모두 각기 다른 내용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 연결돼 있다. 연구원은 정신질환 환자가 겪는 망상이나 환각 등 현상이 이상동기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고 밝혔다. 이들에게는 부정적인 인식이 씌워지고, 대인관계 형성에서 차별 등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배제된다고 봤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 속에 고립된 개인은 반사회적 성향이 고착화 된다. 2018년 영국 유니버시티 대학교 런던 연구진(UCL)은 뇌 신경 촬영기법을 활용해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폭력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소득양극화 등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것 역시 사회적 배제로 연결되는 것으로 연구됐다. 지난 2008년 일본 아키하바라에서 발생한 '도오리마(거리의 악마)' 사건이 이와 유사하다. 25세이던 가토 모토히로는 트럭으로 행인들을 들이받은 뒤 차에서 내려 흉기까지 휘둘렀고, 결국 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가토는 당시 직장을 잃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불만을 토로하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원은 이상동기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신건강과 사회적 배제와 관련해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연구원은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에 한정된 정신건강 검진 질환을 확대하고, 검진 기관에는 전문인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정신건강의학과와의 연계를 명확히 해 사후관리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 방패' 경비원에 권한 부여해야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경비원이 순찰을 돌고 있다.잇따른 이상동기 범죄에도 현장에서의 대응 매뉴얼은 미흡한 상황이다. 이에 연구원은 '민간 경비원'의 법적 권한을 강화해 '시민 방패'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법 개정을 통해 강력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를 의무적으로 휴대하게 하고, 형사처벌이나 손해배상 위험성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다중이용시설에서 근무하는 민간 경비원은 이용객이나 직원들의 안전을 책임(경비업법 제7조)져야 하지만 경찰과 같은 사법권은 없다. 때문에 강력범죄에 대응하다가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형사처벌이나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강력범죄에 대응 가능한 장비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할 의무도 없어서 즉각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 경비업법에 '휴대장비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이 없어서다. 때문에 대다수 현장에는 강력범죄에 대응 가능한 장비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상동기 범죄 발생 시 총포형 분사기 등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대다수 경비원은 '분사기 소지허가'를 받지 않아 최루 작용제 등을 휴대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원은 경비원의 전문성 부재도 지적했다. 대다수 경비원은 전문 훈련을 받은 경호인력이 아닌 경비업무를 돕는 용역업체 소속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런 용역업체의 직원들은 '20세 이상 45세 이하', '초보 가능'과 같은 기본적인 요건으로만 채용되기 때문에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운 것으로 연구됐다.
연구원은 이상동기 범죄의 심각성을 테러 수준으로 규정하고, 현행 경비업법을 개정해 경비원들이 즉각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립재난연구원 오한길 연구사는 "최근 이상동기 범죄가 발생하고 있지만 '시민 방패' 역할을 할 수 있는 경비원들에게 권한이 부여되지 않다 보니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라며 "하지만 현행 경비업법은 강력범죄에 대응 가능한 휴대장비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 연구사는 "이상동기 범죄는 테러 수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경비업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 다중이용시설에서도 경비원 등이 즉각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해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