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15일 국회에서 우원식 의장을 예방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대통령 권한을 이양받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여부를 두고 '시험대'에 오르는 모양새다.
여당의 행사 압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야당은 권한대행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특검 수용을 촉구하는 양상이다.
양 특검이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에서도 우회적 입김을 넣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가운데, 향후 한 권한대행의 결정에 촉각이 곤두세워지고 있다.
'특검 거부권' 말 아낀 韓권한대행…시간 갈수록 '시험대'
한 권한대행은 15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 논의가 있었는지에 대해 "정식으로 논의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면서 정 실장을 필두로 한 대통령 비서실은 한 권한대행을 보좌해야 하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에게 공식 보고를 받거나 업무 지시를 내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대통령실 참모들의 간단한 비공식 보고 정도는 받을 수 있다.
한 권한대행을 보좌하면서도 윤 대통령 지근 거리에 있는 대통령 비서실이 '연결 고리'가 되는 셈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왼쪽),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연합뉴스김 여사 특검법에 세 번을 포함해 취임 후 25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온 윤 대통령이 이번 특검법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우회적으로 전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는 법안은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여당은 야당이 발의한 내란 특검법과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 당론으로 반대했지만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내란 특검법과 김 여사 특검법은 아직 정부로 이송되지 않았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는 데 통상 1주일가량 걸리고, 대통령은 정부 이송일로부터 15일 이내에 이를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이달 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공포나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권한대행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 받았기에 법적으로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지만 정치적인 부담이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에 대해선 헌법에도, 법률에도 규정은 없다"면서도 "다만 권한을 대행하는 정도이기에 국가적으로 어떤 정책을 수립, 집행하려 하는 등의 적극적 권한 행사보다는 소극적인, 현상 유지적 권한 행사만 가능하단 견해가 많다"라고 밝혔다.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간에 고건 당시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거창 양민 학살사건 보상 특별법'과 '사면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 탄핵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던 당시 정국과 현재 내란 사태 비판 여론이 극도에 달한 현 상황을 동일선상에 비교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수 국민들은 특검이 들어와서 빨리 사실관계 조사를 해서 응분의 책임을 받기를 원하고 있는데 선출직도 아닌 권한대행이 방패 역할을 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검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국이 또 소용돌이로 가기 때문에 국정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한 총리가 그런 상황을 초래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라고 밝혔다.
양 특검법 외에도 애초 거부권 행사가 유력했던 법안들의 수용 여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농업 4법'과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를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 국회 동행명령 범위를 확대하는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등은 지난 6일 정부에 이송됐다. 이 법안들의 거부권 시한은 오는 21일까지다.
여당은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기 전인 지난 13일 윤 대통령에게 해당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바 있다.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연합뉴스
이르면 17일 국무회의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아직 권한대행 인수인계 업무도 빠듯해 거부권 여부는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을 아꼈다.
야권은 특검법 등의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권한대행이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직무대행은 교과서적으로 보면 현상 유지 관리가 주 업무"라며 "한 권한대행이 대행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은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은 기자간담회에서 "(한 권한대행의) 직무는 '국정의 안정적 관리'라는 제한적 범위에 그쳐야 한다"며 "거부권 행사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회와 적극적 협력 이뤄질까…韓 '피의자 리스크'
한 권한대행은 국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국정안정협의체'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정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여야를 포함한 국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여당은 협의체 제안을 거부한 상태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가 '여야'를 강조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며 "여당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여당의 투쟁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와 국회 간 협력이 '공회전'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 권한대행은 이번 내란 사태 핵심 인물로 '피의자' 신분이기도 하다. 국정 운영에서 방어 차원의 행보가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내란죄 피의자 윤 대통령의 경우 지난 11일 검찰의 출석 통보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같은 날 경찰의 압수수색도 거부했다. 급물살을 타는 수사에 '버티기'로 대응하면서 향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준비에 주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