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환(가운데) 금융위원장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상법 개정 논의가 촉발된 원인은 '회사의 이익' 뒤에 숨은 지배주주의 일반주주 재산권 침해다. 지배주주의 지배력 확대나 실탄 마련을 이유로 알짜 계열사가 헐값에 합병되거나 모기업의 유망한 사업부를 분리해 별도로 상장시키는 일이 잦았다. 원기업의 일반주주들은 손 한번 쓰지 못한 채 손해를 보는 일이 반복됐다.
전날(2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표한 김병환 금융위원장 등도 이같은 문제는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라는 데 공감했다. 그러나 제시한 해법은 그러한 기업문화를 바꿀 원칙의 재정비가 아니라 여전히 적당한 규율과 회피책이 혼합된 절차적 방안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핀셋 개정만 하겠다는 건가…"재무거래 개정 충분"
전날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은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개정하기보다, 핀셋 개정 방침을 고수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자본시장에서 일반주주 보호가 미흡했던 대표적인 케이스는 대부분 재무적 거래 부분"이라 답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실제로 그간 시장에선 기업의 손익에 관련된 영업활동보다는 재무활동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배치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물적분할에서 주주권 침해 사례가 발생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도 강화된 법률의 빈틈을 파고든 꼼수가 다시 등장하곤 했다.
일반주주들은 이번 개정안 역시 그러한 꼼수를 덮는 또 하나의 미봉책이 될지 우려하고 있다. 개정 대상이 된 합병가액 산정기준도 과거엔 공정한 평가를 위해 주가(시가)를 기준으로 뒀지만, 시장상황과 기업운영 양상에 따라 이같은 기준이 불합리해지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개정안은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의 일반주주(대주주 제외)에 공모신주의 20% 범위 내에서 우선배정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는데, 이 역시 구체적 상황에 따라 언젠간 일반주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데 최근 발생한 유형 몇 가지를 법에 담는다고 해서 얼마나 보호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법이 어떻게 바뀐들 국내 기업 지배주주들이 일반주주와 공정하게 이익을 나누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라 생각해서 투자자들이 떠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개정 능사 아냐" 인식은 같지만 해법은 '쉬운 길'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이같은 문제의식은 전날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표한 김 위원장을 비롯해 법무부와 금융감독원 등 정부 당국자들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법상의 행동규범을 지키면서도 편법·탈법적으로 일반주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사례가 반복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당국자들은 "행동규범 강화가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면서도 명쾌한 해답은 아니라는 데 공감했다.
구상엽 법무부 법무실장은 "지금까지 문제가 된 사안들이 아주 그레이(회색지대) 영역에서 벌어진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외국과 법제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외국에선 벌어지지 않는 일이 왜 우리나라에선 벌어지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법개정만이 아니라 다른 원인을 찾고 교정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 실장은 "기업의 문화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 변화의 촉매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엄정한 법집행"이라며 "현직 검사로서 반성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사법부와 기업, 주주, 소비자 다같이 고민해 봐야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 개정안이 나온 후 더불어민주당 국장(국내주식시장)부활 TF는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은 정부가 재계의 요구에 굴복하며 실질적 개혁을 회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자본시장법 개정은 상법 개정을 대체할 수 없으며, 양 법안의 역할 분담을 통해 종합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