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 협의체가 첫 회의를 연 11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 앞에서 한 환아가 보호자와 함께 구급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 진료'에 집중하도록 구조 개편 첫 발을 뗀 가운데
지역 종합병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에도 나서기로 했다.
관내 발생 환자를 대부분 수용할 수 있는 2차 의료기관을 의료전달체계의 '허리'에 빗댄 당국은 이들 병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특화·전문병원도 적극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초고난도' 前 환자들은 관내서 대응토록 2차병원 지원 강화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제7차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2차 의료 육성 및 일차의료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2차 의료기관은 동네 병·의원을 이르는
1차 병원과 상급종합병원(3차) 사이 중간단계에 해당된다. 올 2월 전공의 대거 이탈 후 가동된 비상진료체계에서 3차 병원의 빈자리를 메우며 주목받았다. '빅5' 병원을 비롯한 상당수 상급종합병원은 전체 의사인력의 40% 이상이 전공의라, 정상적 진료가 불가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원정 진료' 등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완화하려면, 지역 내 의료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2차 병원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증·응급으로 분류되는 환자들 중에서도 '초고난도'가 아닌 환자들은 지역완결적 의료체계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은 "전국에 종합병원과 병원급 의료기관이 1700여 개 있는데 이 병원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병상규모, 진료과 개수, 중환자실 전담인력 유무 등 일부밖에 없다"며 "하드웨어적인 기능 분류 외 어떤 진료를 하는지, 진료 역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등을 보는 기준은 지금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먼저 다양한 질환과 증상의 포괄성 중증도, 수술 역량, 적정 재원일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차 병원의 '역할 재정립'부터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다소 획일적인 기존의 의료 질 평가, 종별 가산제도 등이 2차병원 기능 확충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관련 내용도 손 본다.
정 단장은 "우수한 2차 병원이 현재는 종별 가산 등에서 상급종합병원에 비해 5%씩 일률적으로 낮게 지원을 받고 있다"며 보상체계의 근본적 개편을 병행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특히
주변에 3차 병원이 없는 지역들도 일부 있기 때문에 그런 곳들은, 어느 정도의 중증 환자들을 볼 수 있는 기능을 꼭 갖출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지원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개특위는 이와 함께 포괄적으로 여러 과(科)의 진료를 수행하긴 어렵지만, 특화된 분야에서 전문적 진료가 가능한 병원 육성을 위한 대책도 안건으로 다뤘다.
질환과 진료과목으로 분류하고 있는 현 전문병원 유형을 목적·기능에 따라 재분류하는 데 더해, 성과에 따른 보상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위는 특히 뇌혈관과 화상, 심장, 아동 등 공급이나 수요가 부족해 인프라 유지가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보상 강화방안을 마련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유정민 복지부 의료체계혁신과장은 "최적의 진료를 위해 2차진료 역량을 어떻게 기준 삼을 건지, 어떤 성과 평가를 하며 육성을 할 건지 기본적 세팅이 필요하다"며 "일률적으로 공공 또는 민간(병원)을 육성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지역 의료생태계를 보면서 (맞춤형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연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8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고령화로 인한 노인환자 증가에 대비해 1차의료도 강화한다.
정부는 1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통해 묶음 수가, 건강 개선, 환자 만족도 등에 따른 성과 보상 등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들 병·의원이 지역 2차병원과 지역의사회 등과 연계협력을 강화하고, 1차의료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마련'도 이번 회의에서 거론됐다.
지역의료 생태계 강화를 위한 시범사업은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3년간 500억 원의 규모로 3~4개 권역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하고, 향후 성과를 바탕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유 과장은 관련 수가에 대해 "만성질환 본 사업도 기본 진찰료는 유지하면서 추가관리가 필요한 부분을 '관리'로 묶어가는 형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며 "(복합 만성질환 관리 관련) 외국에서도 행위별 단위로 (수가를 적용)하는 곳이 있고 묶음 단위로 하는 곳이 있는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의료계와 같이 논의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가칭 '의료사고심의위' 신설 논의…"고소·고발 가급적 안 가게"
한편, 의개특위 산하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에서는
수사 초기부터 의료감정 결과를 기반으로 필수의료 여부와 중대 과실 유무를 판단하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이 새롭게 논의됐다.
법정 상설 심의기구로서 의료사고 수사에 대한 전문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위원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모였다는 전언이다.
심의위는 정부와 의료계, 환자·시민사회, 법조계 등 의료사고 관련 전문성과 사회적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의료분쟁조정원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의료사고 수사와 기소가 중과실 위주로 진행될 수 있게 수사기관에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심의위의 전문성에 대한 의문 제기와 함께 피해자 측이 그 결과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정 단장은 "전반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부분은 고소·고발까지 (최대한) 안 가게 하는 방안, 그래서
환자들도 의료사고의 실체를 정확하게 규명받고 소송까지 안 가도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사전단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위에서는 당사자 간 합의 시 형사처벌을 면책하는 반의사불벌은 의료행위 전반에 대해 폭넓게 인정하되,
사망사고는 사고 중대성을 고려해 '필수의료' 분야로 한정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또 망자의 의사를 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반의사불벌 특례 적용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망사고에 한해 형사 면책을 적용해 달라는 의료계 요구에 대한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는 심의위의 기능과 역할 등을 포함한 논의 결과를 연내 특위에 보고할 예정이다.
아울러
의개특위는 지난 11일 출범한 여·의·정 협의체와 별개로, 특위는 의료개혁 실행방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