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임시 대의원총회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황진환 기자취임 이후 수차례 불거진 '막말' 논란과 의·정 사태의 핵심당사자인 전공의 및 의대생과의 불협화음으로 '말 많고 탈 많던'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반 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처음엔 의협 대의원 일부를 중심으로 제기되던 현 집행부에 대한 회의는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임 회장 불신임을 공개 요청한 전공의·의대생의 목소리가 힘을 받으면서, '압도적 가결'이란 결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넘어가게 된 의협이 전공의단체 등과 새로운 접점을 찾을 경우, 11일 출범하는 여·야·의·정 협의체에 더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압도적 찬성'(76%)으로 탄핵 가결…13일 비대위원장 선출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임시총회에서 임현택 의협 회장 불신임(탄핵)안 표결이 이뤄진 10일, 의협 회관에 행사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이은지 기자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의협 대의원회는 전날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임 회장 불신임안(案)을 정족수 150명을 넘긴 170명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대의원 248명 중 224명이 총회에 참석한 가운데 반대는 50표, 기권은 4표에 그쳐 75.9%의 압도적 찬성률을 보였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 가결을 위해선 재적 대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총회에 참석하고, 출석 대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임 회장은 당일 투표에 앞서 "회장 불신임안과 비대위 구성안 상정으로 임시총회가 열리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송구하다"며 "마지막 기회를 한 번 더 주신다면 사적인 자리를 포함해 어떤 상황에서든 언행에 주의하겠다"고 호소했으나, 등 돌린 표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로써 임 회장은 지난 5월 공식 임기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지금껏 의협 회장 중 임기 3년을 다 못 채우고 강제로 물러난 사례는 지난 2014년 노환규 전 회장 이후 두 번째다. 재임 기간 상으로는 임 회장이 역대 최단기다.
탄핵안에 이은 비대위 구성안 표결은 투표자 169명 중 찬성 106명, 반대 63명으로 가결됐다. 비대위 구성은 재적 대의원 과반이 출석해, 참석 대의원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의결돼 탄핵안보다는 가결 문턱이 낮다.
1차 투표 직후 현장 대의원이 대거 빠진 데 대해,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어려운 시기에 차라리 (비대위원장 대신) 회장을 빨리 보충하자(뽑자)는 의견도 있었다. 또 (차기 집행부로 가는) 공백을 아무리 짧게 해도, 한 달 동안 중요한 일이 결정될 때 누가 맡아서 할 거냐(는 우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래) 비대위원장을 오늘 선임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사실 비대위원장은 대의원이 꼭 해야 할 이유는 없어서 '피선거권의 제한'이 된다"며
"월요일(11일) 공고를 하고 지원을 받아, 수요일(13일) 오후 8시 모바일 투표로 비대위원장을 선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의협은 차기 회장 선출 역시 '연내에' 마치겠다는 입장이다. 당초 두 달은 걸리는 선거기간을 한 달 내외로 줄여 압축적으로 치르겠다는 계획이다. 정관상 의협은 60일 이내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현재 비대위원장이나 차기회장 후보로는 지난 선거에서 임 회장과 맞붙었던 주수호 전 의협 회장과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 김성근 전 의협 비대위 대변인 등이 거론되고 있다.
취임 직후 비대위 이어 전공의·의대생과 잇따른 '불화', 결정적
황진환 기자앞서 임 회장은 유효투표수 65.4%에 해당하는 과반의 지지를 얻어 제42대 의협 회장에 당선됐으나,
인수인계 단계부터 김택우 전 의협 비대위원장 등 비대위 집행부와 삐걱대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임 회장 측 인수위원회는 "비대위 운영과정에서 당선인의 뜻과 배치되는 의사결정과 대외 의견 표명이 여러차례 이뤄졌고 이로 인한 극심한 내외의 혼선이 발생했다"며,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직후 꾸려졌던 비대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후 임 회장과 김 위원장이 포옹하며 극적인 화해의 장면을 연출했지만, 이 같은 '내홍'은 의협 내부에서만 불거지지 않았다.
실제로
임 회장의 결정적인 탄핵사유는 9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의·정 갈등을 풀기 위한 '의료계 단일창구' 만들기에 실패했고, 앞으로도 가망이 크게 없다는 점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는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대부분이 이탈한 전공의·의대생과 끊임없이 불화해 왔다.
특히 공개적으로 임 회장과 설전을 벌여 온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6월 의협이 여전히 전공의와 학생만 앞세우고 있다며 "임 회장은 이제는 말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하지 않을지"라고 저격했고, 지난달 1일에도 "재차 강조하지만 임 회장은 사직한 전공의와 휴학한 의대생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지껄이지 말라"고 맹공했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관련 전공의 못지않게 대정부 강경 노선을 견지해온 의대생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지난 7월, 의협이 젊은 의사·학생들의 의견을 듣겠다며 깔았던 멍석 격인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 참여를 거부하며 임 회장의 행보를 두고 "무능과 독단"이라고 평가했다.
임 회장의 연이은 '막말'이 의료계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그의 실책으로 인해 정부 정책에 정당하게 반대하는 의료계의 '순수한 목소리'가 오염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전협과 의대협은 이번 임시총회를 앞두고 잇따라 임 회장 탄핵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의협 대의원들에게 보내며 쐐기를 박았다. 의협 대의원이기도 한 박 위원장은 본인이 직접 전날 총회에 참석해 한 표를 행사하기도 했다.
아울러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이유가 '전공의 불참'임을 감안하면, 의료계 또한 출구 모색을 위한 새 출발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모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공의, 협의체 참여가능성 올랐다?…'정부 태도변화 없인 무용' 지적도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임시 대의원총회를 마친 김교웅 대의원회 의장(오른쪽 두번째)이 브리핑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에 더해,
대전협이 의협 새 집행부와 협력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대목은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협, 더 나아가 전공의가 참여할 '여지'도 생겼다고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닻을 올리는 협의체는 야권이 빠진 가운데 의료계도 대한의학회와 의대학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이 참여해 '반쪽짜리' 개문발차(開門發車)란 비판이 나오는 상태다.
박 비대위원장은 지난 7일, 자신을 포함한 전공의 90명의 명의로 내놓은 서한에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임 회장 탄핵이 확정된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결국 모든 일은 바른 길로"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의장도 향후 비대위 체제는 전공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구조가 될 거라고 언급했다. 그는 "기존 집행부에는 전공의협의회가 (의견을) 얘기할 라인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임 회장 등과) 서로 알력이 있는 걸로 비춰졌다"며 "비대위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면 전공의가 더 적극 나서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위원장 등 전공의와 의대생이 '2025년도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입장을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는 만큼, 정부의 전향적 변화가 없이는 협의체도 공전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의협 대의원회 김영준 부의장은
"현재 (의대) 정원은 그대로 두고, (정책) 책임자 문책이 안 되면서 전공의와 학생들을 (비대위와 협의체에) 들어오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이들이 들어오겠냐는 것"이라며 "(그런 기대는) 상당히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