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매 중 막내인 나진을 붙잡고, 막바지 등교 준비 중인 첫째 딸 나현을 지켜보고 있는 '다둥이' 아빠 이부성씨.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글 싣는 순서 |
①"이기적 MZ라고요?"…청년이 말하는 '출산의 조건' ②"'아빠 껌딱지', 레알 가능한가요?"…主양육자 아빠들의 이야기 ③"'우리 아버지처럼'은 안 할래요"…요즘 아빠들의 속사정 ④[르포]"MBTI 'T'인 아빠는 육아 젬병?"…'파더링' 현장 가보니 ⑤그렇게 아버지가 된다…"10년 후 나는 어떤 아빠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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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이: "목욕도 같이 안 한다면서요?" -료타: "우리 집은 뭐든 혼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방침이라서요." -유다이: "뭐, 방침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그래도 그런 걸 귀찮아해서는 안 돼요." -료타: (아픈 곳을 찔렸다) -유다이:
"지난 반년 동안을 봐요. 케이타가 료타 씨와 함께 있었던 시간보다 나랑 있었던 시간이 더 많았다고요." -료타: "시간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유다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시간이라고요. 아이들에게는 시간." -료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 말이죠." -유다이:
"아버지도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잖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각본집>(플레인아카이브, 고레에다 히로카즈著) 中-
'가족'이란 키워드에 천착해온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을 통해
완벽해 보였던 가정에서 6년간 키운 아이가 알고 보니 친자가 아니었다는 1970년대 실화 기반 설정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같은 날 태어난 두 남자아이는 병원 간호사의 잘못으로 뒤바뀐 이후 계층도, 분위기도 완전히 다른 집안에서 살아간다. 얄궂은 진실을 뒤늦게 마주친 두 집은 '친자 교환' 프로젝트에 돌입하고,
성공한 건축가인 노노미야 료타와 전기상회를 운영하는 사이키 유다이는 '아빠의 조건'에 대해 위와 같은 공방을 주고받는다.
낙후된 마을에서 근근이 먹고 사는 사이키는 '본업은 아빠'라 할 정도로 아이 셋과 시간을 보내는 데 정성을 쏟는다. 식사와 목욕, 놀이, 잠자기 등 대부분의 일상이 '함께'다. 반면 전형적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료타는 아들이 하루만 피아노 연습을 빼먹어도 꾸중하는, 표현에 인색한 아빠다.
생물학적으로 '남'의 핏줄이나 제 외아들로 키워온 케이타가 보고 싶어 '기른 아들'을 찾아간 그가 건네는 말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장미꽃, 잃어버려서 미안해…미안해…카메라…카메라로 아빠 사진도 잔뜩 찍어줬지?…피아노도 말이야, 아빠도 피아노 하다가 중간에 그만뒀어. 그러니까…이제는, 이제 미션 같은 건 그만하자!"
고레에다 감독은 딸을 낳은 뒤 바쁜 일정에 잠만 자러 집을 스쳐가는 생활을 반복하던 중 어느 날
딸이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라는 인사를 한 데 충격을 받고 이 작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빠와 같이 연을 날리고 싶다던 딸에게 '그런 건 남자애들이나 하는 거야'라고 대꾸해버린 자신을 보며 "내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버린 것이 있다는 걸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21년에 태어난 딸 로희를 육아 중인 김태헌씨. 3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아빠'인 태헌씨는 '파더링' 교육을 통해 배운 대로 놀이 등 아이와의 친밀감 형성에 보다 집중할 계획이다. 김태헌씨 제공CBS노컷뉴스가 지난 6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대면 및 비대면으로 만나 온 10여 명의 '요즘 아빠'들은 남성도 주(主) 양육자가 될 수 있고, 교육과 실전을 거쳐 숙련된 돌봄에 이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독박육아' 부담과 신화화된 모성(母性)이 여성들에게 거대한 출산 장벽임을 상기할 때, 이는 한국도 공동육아가 디폴트인 사회로 가는 중임을 알리는 희망적 시그널이기도 했다.
'딸'이라서 두렵고, '양육자'로서 뭐가 부족한지도 몰랐지만…
커피업계(로스팅 팩토리)에서 일하는 30대 초반 김태헌씨는 4살짜리 딸 로희를 키우는 젊은 아빠로, 내년 초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는 1남 1녀인 집에서 누나와 지냈음에도 "(처음에 태아가) 딸이라고 했을 때 많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같은 성별인 아들은 대략 '어떻게 케어하면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딸은 짚이는 게 없었다.
어려서는 5명이나 되는 이모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적도 있어 대학시절 여학우들과 말문을 트는 게 상대적으로 쉬웠던 편인데도 그랬단다. 자라면서
사춘기에 접어든 누나가 "아빠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좀 멀리하게 된" 모습이 떠오르자, 행여 자신의 미래가 아닐지 내심 염려도 됐다.
태헌씨는 "(대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고, 특히 딸 같은 경우는 컸을 때 아빠랑 멀어지는 일이 (더) 많지 않나"라며
"딸이 성인이 됐을 때 단둘이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의 친근한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올해 2회차인 인구보건복지협회의 '파더링(fathering)' 교육에 참가하게 된 건 로희와 또래인 자녀를 둔 처제의 권유 때문이었다. 신청하면서도 처음엔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저도 어쨌든 아빠가 처음이니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라는 막연한 생각… 또 저희는 부모님이 터치를 (별로) 안 하고 자유롭게 컸던 세대인데 지금은 워낙 다른 세대잖아요. 일일이 케어해주고, 정보나 시대도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앞으로도 얼마나 빨라질지 걱정되고. 그럼 제가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이 새로운 세계에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궁금하더라고요." 포털이나 유튜브에 검색만 하면 육아 관련 정보가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지만, '옥석'을 가리긴 쉽지 않다는 애로도 있었다.
외국계 플랜트 관련 업체에 근무하며
5살 난 아들·3세 딸을 양육 중인 정진우씨처럼 둘째가 생기면서 '육아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된 아빠도 있다.
진우씨는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첫째도 4살쯤 되니, 먹여주고 재워주는 걸 넘어서서 조금 더 '정신적인' 부분들을 신경써 줘야겠더라"고 말했다. 임신육아종합포털(아이사랑)에서 인구보건복지협회의 '파더링' 참여 모집공고를 접한 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나쁘지 않겠다' 싶어 신청했지만 사실 교육을 받기 전엔 양육자로서 딱히 뭐가 모자란지도 잘 몰랐다.
"어떻게 보면, (아빠도) 교육이 필요한 걸 알고 계신 분들은 본인이 부족한 걸 인지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전 그렇진 않았고요. 수업을 받아보고, 저의 육아방식이나 성격 등을 테스트해보고 면담을 받고 하면서 조금 깨닫게 된 거죠. 그래서 끝나고 나서야, '잘 됐구나'란 생각이 든 거고요."
평소 자신의 감정에도 무딘 진우씨는 다소 어색하고 낯간지럽지만, 요즘 아이들을 향해 '네가 그래서 이랬구나' 등 마음을 알아주는 말을 하려 무던히 애쓰고 있다.
"그런 걸 정말 못해서, (파더링의) 제일 큰 소득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계속하려 노력하는데, 그래야 몸에 배서 생각을 안 해도 나중에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8월 24일 서울시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인구보건복지협회 '파더링' 대면 워크숍. 참석한 아빠들은 '언어 트래킹(tracking)', 보드게임(컬링·카드) 등을 실제로 아이와 실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제공무의식적으로 더 '표현'하려, 육아가치관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
파더링 교육을 매듭짓는 자리였던 지난 8월 24일 대면 워크숍에서는 점차 늘어가는 남매 간 다툼을 어떻게 중재할지를 두고 상담사 선생님, 진우씨와 비슷하게 애를 둘씩 둔 다른 아빠들과 솔직한 대화들도 나눴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앞에 두고 '판관 포청천'이 되지 말라 하시더라고요. (한쪽) 얘기를 (주로) 듣고 '네가 잘못했네' 판단하고 (둘째한테) '그럼 네가 오빠한테 사과해'라고 하면, 사과를 해도 진정성 있게는 못 한다는 거죠. 속으론 자기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서 억울하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따로 떼어내 각자 얘기를 들어주고 '그래, 그랬을 수 있겠네', '그런데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면 수용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얘기였어요." 배운 것들을 현실 육아에 반영하려 시도하면서, 극적이진 않지만 미세한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진우씨는 "정량화해서 말하긴 힘들지만, 첫째는 예전에 늘 엄마를 찾았는데 조금씩 아빠(저)한테 의지하려는 부분들이 보인다"면서도 "둘째는 (아직) 아내랑 같이 있으면 무조건 엄마한테 간다"고 말했다.
'서운하지 않냐'고 물으니,
"(그건) 절대 육아시간 투입량에 따라 결정되는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언급했다. 매일 정해진 일과시간을 채워 근무하는 자신과 달리, 프리랜서로 개인사업을 하는 아내는 상황에 따라 아이들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 여력이 더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만 진우씨는 "저도 퇴근이 좀 이른 편이라 오후 5시 반이면 (보통) 집에 온다. 이후 아이가 잘 때까진 육아를 (같이) 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내 자식'이니까 저랑 안 닮은 구석이 있으면 배우자(의 닮은꼴)가 아닌가 하는 생각하고 아내와 많이 얘기를 했었는데 (애가) 둘이 되니 더 확실한 비교군이 생겼어요. 기질검사 등으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니 육아할 때 '이런 걸 고쳐야 아이랑 가까워질 수 있겠구나'를 얻어가는 게 수확이죠.
첫 아이처럼 조금 크면 감성적인 영역도 발달을 하니까 그럴 때 교감을 많이 하면 100% 엄마가 아니라, 아빠한테도 절반은 아니라도 한 (전체) 30~40%라도 의지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파더링 교육 이전 대비) 첫째와는 좀 가까워졌다는 느낌도 있어요."
아빠가 되어가는 길목에 반성을 토대로 한 유턴(U-turn)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는 아이가 줄면서 육아법에 대한 관심은 되레 급증한 현실이 때로는 필요한 줏대를 위협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유치원의 유혹을 포함해, '사교육 무풍지대'를 찾기 힘든 부모들은 아이의 미취학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태헌씨는 딸 로희와 동갑내기인 조카의 유달리 빠른 학습진도를 보며 갈등했던 상황을 토로했다. 그는 원래 4~5살 무렵부터 영어·수학을 득달같이 시킬 필요는 없다는 교육관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한글을 벌써 다 떼는 등 '6세에 준하는' 지식을 가진 처제의 아들을 보며 "비교와 자극이 되기도 하고, 우리 애도 빨리 (뭔가를) 해야 되나 하는 생각에 조급해졌다"고 고백했다.
"(파더링 워크숍 때) 상담 선생님께 저희 애는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닌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여쭤보니 제가 아닌 아이의 관점에서 피드백을 주시더라고요, '아이가 스트레스가 많겠다'고…다행히 로희는 조카랑 놀면서 그런 압박을 받는 것 같진 않아요. 같이 보드게임을 하면서 홀·짝수 개념도 익히고요. 조급함을 내려놓으니 좋은 부분이 보이게 됐습니다.
6살부터는, 학습 습관을 길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너무 많은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엄마·아빠가 갖고 있는 (분명한) 가치관이 (육아에) 더 중요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여전히 이따금 "아이를 짝사랑하는 느낌"(태헌씨)도 들지만, "정답이 뭔지는 모르고 컸어도 적어도 오답은 안 만들고 싶"(진우씨)은 바람. 이는 '요즘 아빠'들의 공통된 소망이자 동력이다.
'10년 후'…나는 어떤 아빠일까
이들은
'10년 후 어떤 아빠로 남고 싶은지'를 묻는 기획팀의 질문에 각각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얘기는 통하는 아빠가 됐으면 좋겠어요. 진짜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말도 섞기 싫은 사람이 되기는 싫죠. 아이들의 최신 트렌드까지는 못 따라갈 수 있지만, 그 눈높이에 맞춰서 적어도 말하면 알아듣고 기본적인 일상 대화는 할 수 있는, 그런 얘길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요."(진우씨) "딸이 중학생이 되면 (또래)아이들과 똘똘 뭉치려는 게 있을 거고, 아빠에 대한 이미지를 제한하는 경우도 어쩔 수 없이 생길 것 같아요. 중요한 시기고 자칫 삐뚤어질 수도 있는 때라 제지를 많이 할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아이에게 좋게 말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초등학생 때까지의 친밀도가 영향이 클 거란 생각이 들죠.
그때 돼서 제가 싫은 얘기를 했을 때 '아빠는 꼰대야'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빠가 왜 내게 이런 얘길 했을까'를 한 번만이라도 되짚어 생각해줄 수 있으면 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태헌씨) 지난 6월 25일 밤,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아내 안하늘이씨 대신 4남매를 돌보고 있는 전남 무안 '다둥이네' 아빠 이부성씨의 모습. 이은지 기자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