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원 기자'이재명' vs '김건희' 구도로 예상됐던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는 예상대로 여야의 정쟁 위주로만 흘러갔다. '민생국감' 또는 '정책국감'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일방적인 증인 채택과 불참에 따른 동행명령장 남발에 욕설까지 난무하면서 여야 갈등만 전면에 드러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건희 국감' 예고하며 유례없는 무더기 채택…관련자 다수는 출석 안해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건희 국감'을 공언해 왔던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이번 국감 내내 상임위원회를 가리지 않고 김 여사 의혹 관련 증인 채택에 공을 들였다. 이 때문에 다수 상임위의 국정감사에선 김 여사 의혹과 연루된 인물들이 무더기로 증인으로 채택됐다.
국정감사의 증인은 피감기관 소속의 '기관증인'과 필요에 따라 채택하는 '일반증인'으로 나뉜다. 법제사법위원회의 일반증인은 2022년 0명, 2023년 6명이었지만 올해는 85명을 채택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의 일반증인은 2022년 14명, 2023년 0명이었는데 올해엔 149명을 채택했다.
이번 주 국감이 열리는 운영위원회의 경우, 2022년과 2023년에는 일반증인을 한 명도 채택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30명을 채택했다. 야당은 김 여사 의혹 관련 사실관계 확인을 이유로 의혹의 핵심 관계자는 물론 김 여사 본인마저 증인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한 민주당의 증인 신청 남발은 여야 간 정쟁은 물론 증인 대다수의 출석 거부 사태로 이어졌다. 김 여사와 모친인 최은순씨는 물론, 대통령실 관저 증축 특혜 의혹, 황제관람 의혹, 논문 대필 의혹, 부정 채용 의혹 등의 관계자는 모조리 국감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야당에서는 국회의 권능을 무시한 처사라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의석수 부족으로 항의 외에는 대응할 수단이 없었던 여당에서는 야당이 자초한 일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동행명령장 발부에도 대다수는 여전히 불출석…'보여주기식' 비판 불가피
위원장의 불출석 사유서를 보고 있다. 윤창원 기자
증인들이 잇따라 불출석하자 동행명령장 발부와 고발도 이어졌다. 민주당 주도로 지난 25일까지 불출석 증인에 대해 동행명령장 27건이 발부됐다. 이는 20대 국회 2건과 비교하면 14배, 14건이던 21대 국회와 비교해도 2배에 가까운 수치다.
김 여사의 경우 동행명령장이 발부됐지만 경찰과의 대치로 전달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21일 법사위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는 김 여사와 모친 최은순 씨에게 동행명령장이 발부됐다. 김 여사와 최씨가 별도의 사유서 제출 없이 국감에 불출석했다는 것이 사유였다. 대통령 배우자에게 동행명령장이 발부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지만, 야당 법사위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행명령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3명의 법사위원은 이 동행명령장을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 관저를 찾았는데, 출입을 불허하는 경찰과 대치만 하다 돌아왔다.
24일에도 불출석과 동행명령장 발부가 되풀이됐다. 국토교통위원회는 대통령실 관저 증축 계약 과정에서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인테리어업체 21그램 김태영 대표 등에 대해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앞서 김 대표는 국정감사 첫날인 7일에도 국토위와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모두 불출석했다. 당시 행안위에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송달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불출석 사유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같은 날 교육위원회도 증인으로 채택되지만 출석하지 않은 한경국립대 설민신 교수와 한양학원 김종량 이사장에 대해 야당 단독으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두 사람은 김 여사의 학위논문 대필 의혹, 김 이사장은 교수 부정 채용 의혹과 관련해 각각 증인으로 채택됐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국감에 불출석한 증인 대통령실 최재혁 홍보기획비서관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등 2명에 대해 동행명령장 발부를 의결했다. 최 비서관은 김 여사의 KTV 국악 '황제관람' 의혹 관련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 회장은 김 여사 관련 의혹이 아닌, 체육회의 일감 몰아주기 관련 의혹으로 인해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국내 행사 참석을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전했다.
동행명령장 발부는 명령장 발부에도 불구하고 출석을 이끌어내지 못한 증인들이 대다수였다는 점에서, 이른바 '보여주기식 집행'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증인·의원 '욕설' 논란에 불출석에 고발조치까지…'D-' 국감
이런 와중에 과방위에서는 기관 증인이 '욕설'을 했음에도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국감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원장 직무대행은 정회 중 방송문화진흥회 직원이 혼절하는 일이 일어나자 이 모습을 지켜보던 중 "X발. 다 죽이네 죽여, X"라고 말했다.
이 모습을 본 민주당 의원들은 욕설을 했다고 비난하자 김 직무대행은 욕설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추후 해당 발언 음성이 담긴 동영상이 언론보도로 공개되면서 김 직무대행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김 직무대행이 "욕설이라고 지칭한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며 "부적절한 발언에 유감"이라고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민주당 소속인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김 직무대행에 대한 국회모욕죄에 따른 고발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안건은 찬성 12표, 반대 7표, 기권 1표로 의결됐다. 과방위는 야당 주도로 미국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한 YTN 김백 사장 등 증인 8명에 대해서도 고발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김 직무대행의 언행으로 빚어진 일이었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주당 김우영 의원은 김 직무대행의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인마 이 자식아", "법관 출신 주제에", "이 새X가"라고 고성을 질렀다.
이 같은 '무더기 증인채택→증인 대거 불출석→무더기 동행명령장 발부→여전한 증인 불출석'의 일련 과정과 욕설 논란 등으로 인해 국감의 의미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국민의힘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물리적으로는 의석수 부족이라는 수적 열세로 인해 표결에 참여해도 의사를 관철시키기 어려웠고, 퇴장을 통해 항의를 표시했더라도 국감에 불참할 수 없는 만큼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정무적으로도 민주당의 '증인 독주'를 막아낼 별다른 카드를 꺼내들지 못했다. 다수 상임위에서 민주당의 국감 행보가 '이재명 방탄'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이미 제기된 주장들과 내용이 같았다.
시민단체는 이번 국정감사가 2016년 이후 최악의 국감이라고 평가했다. 1998년 이후 매년 국감을 평가해 온 시민단체 '국정감사 NGO(비정부기구) 모니터단'은 지난 7일부터 18일까지의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국감에 대해 이들이 매긴 평점은 'D-'였다. 모니터단은 "국회의 감사 기능은 상실됐고 피감기관을 범죄인 취급한 정쟁 국감이었다"라며 "마치 특정 사안을 수사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였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