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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의 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향한 질문[노컷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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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야 할 일'(감독 박홍준)

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구조조정과 해고 등 노동문제를 다루는 미디어에서 주목했던 건 '해고 노동자'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초점을 옮겨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 노동자를 주목했다. 이를 통해 노사 갈등 아래 숨겨진 노노 갈등, 그 복잡한 노동자들의 현실과 내면,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모는 시스템을 되묻게 만든다.
 
한양중공업 4년 차 대리 강준희(장성범)는 인사팀 발령과 동시에 150명을 정리하라는 구조조정 지시를 받는다. 하고 싶지 않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일이라며 준희와 인사팀은 정리해고자를 선발하게 된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회사의 입맛대로 해고 대상자가 추려지면서, 준희는 해고자 명단에 존경하는 선배와 절친한 친구, 둘 중 한 명의 이름을 올려야만 한다.
 
명필름랩 6기 박홍준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해야 할 일'은 실제로 조선소 인사팀에서 근무하며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고의 과정'을 담아낸 리얼 현실 드라마다.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이 특별한 지점은 영화가 시선을 둔 방향이다. 보통 노동자나 노동문제, 특히 해고 노동자를 다루는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대상은 '해고 노동자'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해고 노동자가 아닌 같은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 노동자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
영화는 현실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여러 부당함을 '해고'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려나간다. 회사의 위기 앞에 노동자들은 먹고 산다는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기반이 흔들릴 위기에 처한다. 회사의 방침은 간결하다. 직원 수를 줄이라는 것, 즉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 간결하지 않은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서로 대립하게 된다. 해고해야 하는 자와 살아남아야 하는 자로 말이다. 문제는 이를 위해 같은 위치에 놓인 노동자끼리 대립해야 하고, 선을 그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인사팀 강준희 대리는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누구를 해고하고, 누구를 회사에 남길지 분류해야 한다. 그게 강 대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해고 위기에 놓인 노동자 관점에서 강 대리와 인사팀은 사측과 다를 바 없는 '악'이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자신이 속한 부서서의 '해야 할 일'을 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위기에서 언제나 가장 위험에 몰리는 건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노동자다. 책임져야 할 주체는 뒤로 빠져 있고,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들은 벼랑 끝에서 누군가를 정해 아래로 밀어야 하는 가혹한 선택에 놓인다. 영화에서도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회장님'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해고 기준도 같은 노동자가 정해야 한다.
 
해고되어야 할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로 나눠야 하는데, 과연 이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노동자를 쉽게 수치화하고 구분 짓는 사회, 먹고 살기 위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해고해야 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 수 없다.
 
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이처럼 영화는 해고 문제를 다루면서도 노사 갈등을 부각하지도 않고, 해고 노동자에만 무게를 두지 않는다. 또한 어느 한쪽을 매도하지도 않는다. 그저 가장 극심한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 부상할 수밖에 없는 직장 내 온갖 부당함과 차별들을 보여준다. 영화 속 해고의 판단 기준이 되는 학력, 성별, 직급, 업무, 연차 등 말이다.
 
어느 노동자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보지 않는 것처럼, 영화가 직시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반목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노동 환경과 시스템이다.
 
새해가 밝아도 여전히 불안정하고 희망적인 내일을 단언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엔딩처럼, 특정 노동자 혹은 사측을 단순하게 '악'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반복되는 갈등을 만드는 시스템의 폐해를 짚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거나 해야 할 일의 대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선이 진짜 가닿아야 할 곳, 진짜 해야 할 질문을 하기 위해 101분의 러닝타임 동안 노동자들의 내밀한 현실과 그 복잡성을 지켜봤다. 언제 또다시 해고의 칼바람이 불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과 어쩌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공존하는 엔딩은 그래서 중요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촛불시위와 구조조정을 대비해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부당함에 항거하는 촛불이, 한쪽에서는 부당함에 꺾여나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주인공의 마음은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촛불을 향하지만, 집회에 참여하지는 못한다. 회사 안에서도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한다는 부끄러움이 그를 더욱더 부끄럽게 만든다. 그런 강준희 대리와 연대할 수 있는 건 결국 우리, 즉 관객이다.

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
감독은 촛불과 노동자 사이 경계를 넘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이를 건널지 말지는 관객에게 달렸다. 영화의 엔딩이 희망적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극장 밖을 나가서 우리가 영화를 통해 만난 노동자들의 모습들을 곱씹어 보고, 지금의 노동 환경을 이야기해 봐야 한다.
 
이는 이어지지 않았던 재희의 일터와 촛불을 스크린 밖 관객들이 연결 짓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만의 사회 안에서 갈등하며 외롭게 투쟁해야 했던 재희와 노동자들 그리고 현실의 노동자들을 향한 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이 새해가 밝았음에도 여전히 암울한 재희의 회사를 올바르게 바꿀 수 있는 길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마치 현실의 한 장면을 떼어와 스크린 위에 덧댄 것처럼 사실적으로 존재한다. 특히 자신의 손으로 노동자의 생사를 결정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부담과 절망, 생존과 부끄러움 등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낸 장성범은 관객과 스크린 사이 거리를 좁혔다. 그의 열연은 '해야 할 일' 이후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전한다.
 
메가폰을 잡은 박홍준 감독은 '해야 할 일'을 통해 영화가 새로운 시각으로 노동 현실을 다룰 수 있음을 증명했다. 특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과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구석을 바라본 감독의 시각은 그가 다음에는 또 어떤 곳을 어떻게 바라볼지 기대하게 만든다.
 
101분 상영, 9월 2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해야 할 일' 포스터. 명필름 제공영화 '해야 할 일' 포스터.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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