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여야 원내대표들과 회동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우 의장,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윤창원 기자의료공백 사태가 7개월째 접어들면서 응급실·중증환자 치료 환경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 주도로 추진중인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이 의료계의 불참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추석 전 출범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국 대학들의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9일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가 이미 전형 절차에 들어간 2025학년도 입시까지 백지화하는 것을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가 불참할 경우 여야 정치권과 정부가 먼저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9일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료계가 참여하도록 노력하기로 하고 설득과 기다림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양당 원내대표들은 협의체를 통해 의료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가 2026학년도 뿐 아니라 2025학년도 의대 증원계획까지 백지화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입시제도에서 또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전국 의과대학 모집에서 전체 정원의 67% 이상을 수시로 뽑도록 돼 있고 원서접수도 이미 시작된 만큼 현 단계에서 내년도 모집 정원에 손대는 것은 무리라는 게 교육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모든 정책추진은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 만일 대학입시를 두 달 앞두고 입학전형이 뒤바뀐다면 이 또한 정부의 입시정책을 믿고 진로를 결정한 수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대혼란에 빠뜨리는 후폭풍을 낳을 게 뻔하다. 집행정지가처분신청과 손해배상소송 사태는 또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연합뉴스의사협회는 이날 대국민호소문을 통해 의대증원 백지화가 전공의 복귀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며 의대정원을 논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학년은 2027학년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점을 한참 뒤로 미루면서 협상 테이블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자세로 보기 어렵다. 응급실 파행으로 국민들 사이에선 '추석 연휴에 절대 아프면 안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한다.
물론 사태를 키운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역의료 붕괴와 일부 진료과목 기피현상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의료개혁 취지는 옳았으나 방법이 서툴렀다. 의대정원 증원의 폭과 의료패키지 정책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설득했다면 의료계의 반발이 이렇게 거세지는 않았을 지 모른다. 의사출신 정치인이자 행정가인 신상진 성남시장은 9일 "의료현장이 생각보다 복잡한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복지부나 대통령실의 전문관료가 모두 경제관료인데 보건의료 현장에 대한 이해가 갖춰진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역의료의 붕괴를 막고 필수의료를 살려서 온 국민이 골고루 의료혜택을 보도록 하는게 의료개혁 방향이어야 한다. 의대정원 증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정치권이 협상테이블을 마련한 만큼 정부는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고 의료계도 국민 건강권을 위한다는 자세로 협상에 동참해서 다수가 공감할 합리적 해법을 찾는데 힘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