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과 딸 다혜 씨 모습. 연합뉴스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를 고리로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피의자'로 입건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지난 6월 문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정숙 여사의 이른바 '타지마할 의혹'에 대해서는 공식 대응을 자제하던 당 지도부가 이번에는 전면 대응에 나섰다.
최근 비명(비이재명)계가 친명(친이재명)계를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독자 행보에 나서는 등 양측 간 미묘한 갈등이 있던 상황에서, 이번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당내 공식기구를 출범하는가 하면, 위원장도 친명계 핵심인사가 맡았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둘러싼 대응으로 당이 '단일대오'를 이루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된다.
李 지시로 대응 위원회 구성…위원장에 친명 핵심인사 배치
민주당은 4일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내 '전 정권 정치탄압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친명계 3선 김영진 의원을 인선했다. 한민수 대변인은 이러한 조치가 이재명 대표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취재진에 전했다. 적극 대응에 대한 이 대표의 의지가 드러난 셈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지도부 외에 친명·비명을 가리지 않고 비판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정청래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강도 높게 성토했다. 정 위원장은 "윤석열 검찰 정권의 정치 보복 수사라고 하는데 문 전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무슨 불이익을 줬느냐"며 "나는 배은망덕 수사이자 패륜 수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은망덕'은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발탁됐던 점을 가리킨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던 윤건영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와 데자뷔(기시감)가 느껴진다"며 "다시는 노 전 대통령 때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다혜씨의 제주도 주택 압수수색에 대해 "언론들이 이 주택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검찰의 언론 플레이는 전임 대통령에 대한 악의적 정치 탄압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친명·비명 화해무드 기대감 반면 "일시적 단일대오" 전망도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배우자 김정숙 씨. 연합뉴스민주당의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 6월 문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정숙 여사의 2018년 인도 타지마할 방문을 둘러싸고 여당이 의혹을 제기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에는 당 지도부가 공식 대응에 나서지 않은 채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의원들만 목소리를 냈던 반면, 이번에는 지도부가 나서서 대책위를 만드는 등 전면에 나섰다.
이 대표를 비롯한 친명 지도부의 이 같은 행보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최근 친명계와 비명계 간 갈등이 불거져 왔다는 점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김부겸 전 총리는 이 대표를 향해 "언제까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대한민국 공동체를 책임지겠다고 할 것인가"라며 유연성을 주문했었다. 8·18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김두관 후보는 이 대표에 대해 '일극(一極)'등의 표현을 써 가며 날선 비판을 여러 차례 가했었다. 이 대표가 주도한 지난 4·10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비명계 전직 의원들은 '초일회'라는 모임을 결성해 독자적인 움직임에 나서고 있으며, 친문(친문재인)계 적자(嫡子)로 불리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복권되자 향후 당내 비명계가 움직이는데 있어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옛 주류를 비호하려는 이 대표의 이번 행보가 계파 간 갈등을 줄이는 역할을 하면서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체제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는 오는 8일 양산 평산마을을 찾아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할 예정이다. 당초 당 대표 연임 직후인 지난달 22일로 잡혔던 일정인데, 이 대표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연기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번 수사에 대한 대화가 오갈 수밖에 없고, 이 대표로서는 문 전 대통령을 돕겠다는 메시지를 낼 것이기에 화해 무드는 더욱 무르익을 전망이다.
다만 이번 사안이 김 여사 사건 때와 달리 전직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기 때문에 진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사법 리스크'에 해당하며, 그런 만큼 당 지도부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친명계 의원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김정숙 여사 건은 그 자체가 말이 되지 않고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봤지만, 이번에는 검찰이 정말 뭔가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문 전 대통령의 문제에는 친명·비명 구별 없이 모두 대응하는 것이다. 친명·비명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단일대오를 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계파 간 문제가 아닌, 전당적 차원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시각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사안과 관련한 논란이 잦아들면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주의 붕괴라는 사안에 당이 적극 대응함으로써 분열적 요소가 있다면 잦아들고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도 "도둑이 들면 이를 퇴치하기 위해서 온 가족이 힘을 합치고, 도둑을 잡고 나면 평상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파를 초월한 단일대로가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깔려 있는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