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 씨가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사건 발생 3년 2개월 만이다. 극단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여자. 날카롭고 뾰족했던 나뭇가지. 이예람 중사의 그림이자 초기에 유족이 수사관들에게 건넨 증거. 3년이 지나 장례를 앞두고 관사 짐을 정리하다 이 스케치북이 발견됐다.
"깜짝 놀랐지. 짐 정리하다가 본 거야. 근데 이게 왜 유품 속에 있어? 엄마가 놀라서 공황 증세가 왔어요. 증거를 쓴다고 해놓고 그걸 다시 유족 대표가 안 보는 사이에 유품에 집어넣은 거예요. 소각할 테니까."
쾌활하고 밝고 활동적이며 추진력 있던 딸. 22살 이예람 중사가 고통스러운 생각에 자신의 심경을 그린 그림. 군은 유족이 찾아준 증거조차 수거하지 않았다. 특검조차 본 적이 없었다. 주완 씨는 법정에서 스케치북을 판사에게 흔들었다. 사진을 찍어서 증거로 제출하라고 했다. 딸의 스케치북 하나가 이 사건의 진행 상황을 함축하고 있었다.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 씨. 김현주 뉴미디어 크리에이터군은 사과했었다. 공군참모총장은 사의를 표명했었다. 군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땅을 치고 울면서 죄송하다고, 열심히 조사하겠다고 유족을 안심시켰었다. 유족들은 그런 군을 믿었다.
"군 검사에서 설렁설렁해서 군사 법정 2심까지 다 무죄가 됐어요. 대법원은 그 자료로만 봤을 때는 무죄예요. 제대로 수사 안 하니까 증거가 없으면 처벌할 수가 없잖아요. 다시 수사하라고 하겠습니까. 관계자들은 벌써 흩어졌어요. 도망갔다 이거죠."
주완 씨 앞을 버티고 서 있던 검은 장막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특검 2심 이제 희망적인 결과를 기다리며 분명히 진실은 밝혀지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1154일째. 약 3년 2개월 동안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1층에 주완 씨는 살고 있었다. 이예람 중사의 영정사진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 지도 3년이 넘었다.
"이 모양 그대로 저기 앉아서 이렇게 예람이를 쳐다보고 얘기도 하고 아침에 나가기 전에 어디 갔다 온다. 너도 갈래? 너는 여기 있어라. 또 아빠 왔다. 잘 있었어? 이렇게 소통하고…"
때로는 2층에서 때로는 3층에서 다른 고인의 유족을 스치기도 한다. 새벽 갑자기 쿵 소리가 나고 고통에 젖어서 울부짖는 소리가 주완 씨의 귓가를 맴돈다. 아들 딸들이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지 부모 마음은 같았다.
"그런 걸 보니까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죠. 남의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채상병, 수류탄 사고, 군기훈련 받던 훈련병… 정말 가슴이 아파요. 어떤 분은 또 외아들이야 그럼 내 마음이 찢어지는 거예요. 우리 예람이에게 가졌던 감정들이 또 나오는 거예요."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의 카카오톡 프로필.우리는 이예람 중사가 남긴 변화에 빚지며 살아가고 있다.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 군 성폭력 범죄, 사망하거나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입대 전 범죄는 민간 수사·사법기관에서 수사와 재판을 담당한다. 군 인권센터에 군인권보호관을 신설하며 인권 침해와 차별이 없는 군대의 토대를 만들었다. 성추행과 2차 가해를 당했지만 군 내부에서 조직적 은폐로 인해 유족들이 군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빨리 인지 즉시 경찰에 이첩해야죠. 인지함과 즉시 수사를 이첩을 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개정법에는 독립성이 분명히 있는 거고. 다른 사람들의 외압이 없어야 한단 말이에요. 군인권보호관이 누가 외압을 행사했는지 이 부분을 막아줘야 되는 거고. 이예람 중사의 명예를 찾기 위해 개정법이 분명히 만들어졌으면 그 법에 따라야죠. "
단장의 고통. 장례식장에서 어언 3년을 보내니 몸도 마음도 망가진 주완 씨는 장을 잘라내는 통증을 느끼면서도 딸 예람이가 받았을 고통, 배신감, 아픔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군은 그 틈을 파고들 거라는 것을. 자신과 아내가 아파 누우면 딸의 죽음을 밝힐 수 없기에 이제는 장례를 치르기로 결심했다.
"더 안 좋은 상황이 되면 예람이 진실 규명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정을 취하고 그 후에 바로 이제 특검 2심이 있습니다. 이제 정확하게 지켜보면서 방청하고 대법원까지 마무리되는 걸 봐야 합니다. 이후에도 미진한 것이 한두 가지겠습니까."
딸의 장례를 하루 앞두고. 김현주 뉴미디어 크리에이터자식을 잊을 수 있는 부모는 없다. 차디찬 영안실에 둔 딸을 이제 가슴에 묻는다. 딸이 하늘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기도를 올린다.
"예람아 우리 예람는 우리 영혼은 하늘나라의 하나님 품에 안겨서 편안함을 또 사랑을 받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고 있으리라. 이 아버지는 생각한다. 그리고 예람이가 육체 속에 있었을 때의 그 마지막 너의 영육을 하나님한테 이렇게 하늘나라로 또 보내줄게. 예람이가 살아 숨 쉬고 정의를 얘기하고 그 동기들이 어려운 거 다 해결해 줘가면서 했던 정의로운 그 선한 영향력 그 마음 아버지나 우리 국민 여러분은 잊지 않고 너를 영원히 기억할 거야. 아버지 또 그렇게 진실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할 거고 아버지가 언젠가 예람이한테 갈 때까지 최선을 다할게.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아버지 노력할게."
고 이예람 중사 가족 사진. 유족 제공
* 이예람 중사 사건은= 이예람 중사는 2021년 상관 장모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상급자들은 가해자를 감싸고 사건 은폐를 시도했고 군은 부실 수사를 했다. 전출된 부대에서도 2차 가해가 있었고 이 중사는 "조직이 나를 버렸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후 유족들이 책임자 처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각오에 나서며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과 관련한 특별검사'가 출범했다. 관련자들은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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