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14일 오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누리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반쪽 광복절' 파동의 중심에 서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12일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건국절' 제정에 분명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건국절은 광복회 등 독립운동선양단체들이 김 관장의 '뉴라이트' 성향을 지적하며 가장 문제 삼는 부분이다.
김 관장은 정부‧여당이 건국절 제정을 추진하면 직을 걸고 반대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역사학자의 양심을 걸고 분명히 반대할 것"이라고도 했다. 정부‧여당도 이후 비슷한 입장을 취하며 보조를 맞췄다.
그렇다면 광복회 등으로선 광복절 경축식 불참 명분이 거의 사라지는 셈인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정부의) 공식적인 행동이 있어야 우리가 믿을 것 아닌가"라며 김 관장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뉴라이트 아니라고 하지만 역사관 '모호'…광복회 등 불신
광복회 등이 정부를 불신하는 데에는 김 관장의 다소 모호한 역사관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가 명시적으로 일제 식민지배를 옹호하거나 독립운동을 폄훼했다고 보긴 어렵다.
광복회가 내건 9대 뉴라이트 감별 기준도 그를 조금씩 비껴간다.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자'라는 기준에 저촉되는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김 관장의 발언 취지가 곡해됐을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그는 자신이 결코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강조했고, 뉴라이트 인사들도 그를 잘 모르는 눈치다.
하지만 객관적 시각으로도 여전히 찜찜함이 남는다. 대표적인 게 '건국절' 논란이다. 그의 저서 '끝나야 할 역사전쟁'을 보면 건국절 제정은 주장하지 않되 1948년 8월 15일 건국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광복절은 해방이 아니라, 독립의 완성을 뜻하는 건국절의 개념이다"(14쪽)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문에서는 … 중략 …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124쪽) "1948년 건국설은 … 중략 … 분명한 입지를 지닌다"(141쪽)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된 것이 맞다"(143쪽)
이는 한 마디로 '건국절은 반대하지만 건국일은 기려야 한다'는 식의 태도다. 정말로 건국절 제정에 반대한다면 이렇게까지 건국일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뭔가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는 "마치 중세교회가 지동설을 주장하는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서 화형에 처한 것처럼 (광복회 등이) 여론몰이를 통해 마녀사냥 하듯 인민재판을 벌이고 있다"고 항변했다.
갈릴레이는 위기를 모면한 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혼잣말을 남겼다. 김 관장이 억울함이 있다면 21세기 대명천지에 당당하게 얘기 못할 게 없다. 건국일이 언제인지 그렇게 따지면서 왜 정작 건국절 제정은 반대하는가? 김 관장이 답해야 할 부분이다.
신대륙에 나라 세운 미국과 비교?…우리는 빼앗긴 '주권' 되찾은 것
사실 건국절은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김 관장은 미국이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하고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건국을 완성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이렇게 13년의 건국 과정이 있었고, 우리는 1919년 임시정부 수립부터 1948년 정부 수립까지 29년의 과정이 있었다는 논리다.
하지만 신대륙 이주민이 토착민을 내쫓고 맨땅 위에 나라를 세운 미국과, 이미 수천년 간 국가를 이루고 살아온 우리가 같을 수 없다. 우리는 나라를 세운 게(건국) 아니라 일시 빼앗겼던 주권을 되찾은 것이다.
심지어 그런 미국에조차 건국절은 존재하지 않고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기릴 뿐이다. 김 관장은 미국은 독립선언 당시 이미 영토‧국민‧주권을 갖추고 있었기에 사실상 건국일로 볼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게 과연 타당한 논리인지는 상식선에서도 판단 가능할 것이다. 설령 그의 논리를 수용한다고 치더라도 13년에 이르는 미국의 건국 과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776년 독립선언을 '사실상 건국'으로 규정하면 1789년 '건국 완성'과 모순적 상황이 필연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왜 잊을만 하면 건국절 논란?…친일행위자 → 건국공로자 둔갑 의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류영주 기자
많은 국민들은 왜 잊을 만 하면 건국절 논란이 되풀이되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느 정도 답을 한 것 같다. 건국절 논란이 먹고 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언급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딱히 개념도 정립돼있지 않은 문제를 끄집어내어 공연히 국민 통합을 해치는 행태는 엄중히 다뤄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어 이번에는 누가 분란을 일으켰는지도 가려내야 한다.
사실 건국절의 예상 폐해는 이보다 훨씬 크다. 만약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 된다면 이승만 '건국 대통령' 주변에 몰렸던 다수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일거에 사면‧복권은 물론 심지어 건국 공로자로 추앙까지 받게 된다.
반대로 건국 전, 다시 말해 일제 치하에서 이뤄진 독립운동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과거사 반성과 사죄는커녕 우경화와 군사대국화로 치닫는 일본 보수우익이 무엇보다 좋아할 모습이다.
다행히 대통령실은 "정부나 대통령실에서 건국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고, 추진하려고 한 적도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이제 김 관장이 할 일은 윤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건국절 논란 불식에 앞장서는 것이다. 먼저 본인 스스로가 의문의 여지 없는 명확한 논리로 건국절 제정의 불가함을 적극 설파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