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 관련 청문회 현장 모습. 윤창원 기자채 상병 특검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의 '구명로비' 의혹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구명로비 의혹의 중심인 단체 대화방의 신빙성을 문제 삼고 있다.
'구명 로비' 의혹은 특검 전선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을 매개로 김건희 여사까지 넓어질 수 있는 연결 고리이기 때문에 여야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주제다. 현재까지는 임 전 사단장의 '로비'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국민의힘은 구명로비 의혹이 힘을 잃었다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제기된 의혹 만으로도 특검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맞서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확실한 근거 없이 김건희 여사까지 전선을 넓히려는 시도가 채 상병 특검의 본질을 흐리고, 실질적인 특검의 출범을 늦추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성한 의혹은 계속, 당사자들은 부인…권성동 "제보 공작"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 관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는 모습. 윤창원 기자이른바 '구명 로비' 의혹은 채 상병 사망 사고로 수사 대상에 오른 임성근 사단장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에게 접촉해 구명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김규현 변호사라는 인물이 이 전 대표와의 녹취록을 언론에 제보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해병대 출신 5명이 임성근 전 사단장과 골프 모임을 추진하기 위해 꾸린 단체대화방 멤버 중 한 명이다. 단체대화방에는 임 사단장은 들어있지 않지만, 이 전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단체대화방 멤버인 이 전 대표와의 통화 녹취를 근거로 이 전 대표가 "임 사단장이 사표를 낸다고 그래 가지고 'OO이'가 전화 왔더라. 그래서 내가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얘기를 하겠다'"라며 "내년쯤에 발표할 것이다. 해병대 별 4개 만들 것"이라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VIP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을 지칭하는 표현이기에, 임 전 사단장이 김건희 여사와 관계가 있는 이 전 대표에게 접촉해 자신을 지켜달라고 로비를 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외에도 김 변호사는 이 전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김 여사의 결혼을 "우리가 시켜준 것"이라고 말하는 등 친분을 과시한 것이나, 단톡방 멤버인 청와대 경호처 출신 송호종씨가 김용현 경호처장이 로비의 통로라는 취지로 언급했다고 공개하면서 의혹이 커졌다. 김 변호사는 1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도 올해 초 이 전 대표가 전화 상으로 "너는 성근이를 안 만났었냐?"라고 물었다며 "그때 골프를 치려고 했다가 무산이 돼 만난 적이 없다고 하니 '아, 너는 성근이를 만난 적이 없구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전 대표와 송씨 모두 김 변호사의 제보가 왜곡됐다며 전체를 공개해서 확인하자고 반박하고 있다. 또 임 전 사단장은 김건희 여사로 이어지는 핵심 통로인 이 전 대표를 전혀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임 전 사단장의 지난해 통화내역에는 단체대화방 멤버들과 통화한 내역도 없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채상병 사망사고 제보공작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이에 대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제보 자체가 '공작'이라는 역공을 펼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민주당 보좌진 출신이고, 송씨는 이재명 대표의 팬클럽 발기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구명 로비' 의혹은 민주당과 언론이 결탁한 '음모론'이라는 것이다.
권 의원은 이날은 또 다른 단체대화방 멤버 사업가 A씨가 김 변호사와 통화한 내용을 공개했는데, 통화 중 A씨가 "그 정도급이 아닌 거야.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라고 말한 것을 근거로 "단톡방 멤버들이 '구명 로비'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소위 해병대 단톡방에 참여한 인사들끼리 나눴던 허세나 술자리 방담 수준 대화를 대통령실의 '구명 로비'라는 거대한 음모로 확대한 장본인이 김 변호사"라며 "'구명 로비' 의혹은 아무 실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결정타 없던 청문회…與, 입증은 막았지만 여론 반전은 '역부족'
의혹은 무성하지만 당사자들은 전면 부인하고 있고, 제보자를 향해 공격이 펼쳐지는 상황은 진상이 드러나야 풀릴 문제다. 하지만 이날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중점적으로 다룬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청문회에서도 결정적인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임 전 사단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거짓 증언을 할 경우 처벌을 받겠다는 '증인 선서'를 했음에도 이 전 대표를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이를 반박할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새롭게 임 전 사단장이 지휘했던 지난해 해병대 훈련에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이 전 대표, 송 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고, 이 전 대표가 임 전 사단장 명의의 훈련 참관 초청장을 전달 받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임 전 사단장의 태도를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임 전 사단장과 이 전 대표가 직접 찍은 사진은 없었고, 자신의 명의로 나가는 모든 초청장을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는다는 취지로 해명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청문회를 거쳤음에도 '구명 로비' 의혹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에 힘을 싣는 양상이다. '구명 로비' 의혹은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과 정권 자체에 대한 탄핵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인데 일단 제동에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녹취에 이어 사진까지 나왔지만, 의혹이 결론에 이른 것은 하나도 없다"며 "억지로 '구명 로비'를 만들려는 것인데, 국민들로부터 전혀 공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남은 의혹은 여전하기에 특검 자체에 대한 여론은 뒤집기 힘들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구명 로비' 의혹은 주춤하게 만들었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7070 전화번호로 대표되는 대통령실 개입 의혹은 여전하고, 특검을 바라는 여론도 변함이 없다"며 "당 차원에서는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셈이고, 다른 한 편은 대통령실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언급했다.
'의혹 만으로도 충분' 전선 넓히는 野…특검 본질 희석 우려도
민주당은 '구명 로비 의혹'을 명쾌하게 밝히지는 못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양상이다. 드러난 의혹만으로도 채 상병 특검 필요성은 공감을 얻고 있고, 김건희 여사를 향한 특검까지 전선을 넓힐 수 있다는 취지다.
민주당의 공식 논평은 "(임 전 사단장이) 연락한 적 없다고 우겨도 점점 드러나는 정황은 이종호씨와 김건희 여사의 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노종면 원내대변인)"이다. 민주당 관계자도 "단체대화방이 존재하고, 관련자들이 통화했던 것도 사실이고, 정점에 김 여사가 있으니 어설프게 넘길 것이 아니라 특검으로 제대로 다룰 사안이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 청문회에서 정청래 위원장이 청문회 진행 방식과 관련해 국민의힘 간사인 유상범 의원(왼쪽),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승원 의원(가운데)과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반대로 일각에서는 김건희 여사까지 전선을 확대하려는 민주당의 강경한 전략 때문에 채 상병 특검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차원에서 밝히기 힘든 로비 의혹에 여권이 '공작' 프레임으로 결집하며 거부권 '무력화'를 위한 여당 내 이탈표 가능성을 낮춘다는 것이다.
제3지대 소속의 한 의원은 "민주당의 의도는 알겠지만, 채 상병 특검은 다른 정치적인 고려가 들어가면 순수성을 의심받게 되고, 국민적인 공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김 여사 문제 등 다른 것과 결부시키며 조건을 복잡하게 가져가면 안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