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MBC 이진숙 기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1990년 걸프 전과 2003년 이라크 전쟁에 특파된 '종군기자'라는 것이다.
대통령실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지명 사실을 알리면서 '최초의 여성 종군 기자' 였다는 걸 부각시켰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장관급 인선을 발표하면서, "이라크전 당시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로 활약하는 등 언론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도 지명 후 첫 인사말에서 이라크전 파견 때의 경험을 언급했다. 이 후보자는 "이라크 전쟁을 취재할 때 쿠르디스탄에 파견된 한국군 캠프에서 파병 부대원들이 아리랑TV를 보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한국의 방송 콘텐츠, K-콘텐츠는 이제 더이상 한국 내에서만 방송되지 않습니다. 전쟁터에서도 K-콘텐츠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콘텐츠라면 OTT를 통해서 전 세계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방송인들이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통신 산업은 이 콘텐츠를 전 세계로 실어나를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합니다."라고 밝힌 것이다.
이 후보자는 2023년 6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이진숙 하면 종군기자를 떠올립니다. 무려 20~30년 전의 타이틀인데요. 이 같은 사람들의 인식이 새로운 역할을 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 봅니까?'라는 질문에, "저는 '종군기자'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고 봐요. 제 정체성을 얘기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이 사람은 뭐든 할 수 있겠구나, 하지 않겠어요. 목숨까지 걸어봤는데, 제가 못 할 일이 있을까요?"라고 답했다.
이진숙 후보자의 이미지에서 '종군기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 후보자의 '종군기자' 이미지는 MBC 회사 내부보다는 대외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MBC 내부에서의 '이진숙 기자' 이미지는 어떨까?
MBC에서 기자로 출발해 30년 넘게 근무했으니 비슷한 시기에 보도본부 등에서 함께 근무한 전직 동료들에게 이진숙 기자는 어떤 이미지로 남아있을까?
첫 번째는 이진숙 기자도 노동조합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한 전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는 1992년 MBC 노동조합의 50일 파업 당시 1층 점거 농성과 단식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끝까지 버틴 최후의 3인에 포함됐다고 한다. 최후의 3인은, MBC 사장을 거쳐 국회의원과 강원도지사를 지낸 최문순 당시 기자, 정형일 전 보도본부장, 이진숙이었다는 것이다. 3명은 함께 버티다 투입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입사동기인 최승호 전 MBC 사장은 페이스북에 "이진숙 씨도 과거 노조활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으로 기억하는데요. 92년인가 MBC노조가 장기간 파업을 했는데 기자들 중 선봉대가 단식투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그도 단식을 한 것으로 압니다. 당시 MBC 로비 한 켠에서 힘 없지만 결의에 찬 눈빛으로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오르네요."라고 소회를 밝혔다.
두 번째는 원칙적이고 청렴했으며 정의감이 투철했다는 것이다.
이진숙 후보자가 MBC 워싱턴 특파원일 당시 지사장이면서 1진이 권재홍, 2진 이진숙, 3진 윤용철 기자였는데, 권재홍과 이진숙이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이유는 2진인 이진숙이 권재홍 지사장의 비리를 본사에 신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이진숙이 고발한 내용은 법인카드 사용 등 워싱턴지사 비용 사용의 불투명성에 대한 것으로 고발인인 자신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나름의 원칙과 청렴함, 정의감이 었었다는 것이다. 다만 사건 자체는 유야무야되었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권재홍, 이진숙 두 사람이 지금은 윤석열 정권에서 한 배를 타고 방송장악, MBC 장악에 힘을 합치고 있다. 권재홍 전 워싱턴지사장은 2024년 국회의원선거방송심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MBC 보도 징계에 앞장섰고, 이진숙 특파원은 MBC를 장악하라는 특명을 받고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됐다.
세 번째는 입사동기나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진숙 후보자는 1987년 5월 MBC에 입사한 뒤 문화과학부를 시작으로 국제부와 사회부 등을 거쳤다. 그러나 입사 동기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고, 보도국 내 친한 기자가 별로 없었다는 게 비슷한 시기 함께 근무한 MBC 출신 인사들의 전언이다.
최승호 전 MBC 사장도 "이진숙씨가 입사동기지만 직종(기자와 PD)이 달라서 밥 한번 같이 먹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네 번째는 이진숙 후보자는 '완장', 자리를 탐하는 완장체질이라는 분석이다.
이진숙 후보자의 보도국 1년 후배인 송요훈 전 MBC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젊은 기자이던 시절에, 이진숙씨 당신도 방송독립, 공정방송을 외쳤어요. 그때는 당신도 노조원이었어요. 그때의 MBC 노조와 지금의 노조는 다르지 않습니다. 달라진 건 당신이예요."라고 한 뒤, "아, 달라졌다는 말은 취소할게요. 당신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당신은 완장 체질이더군요. 완장 냄새를 맡으며 권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기회주의자."라고 직격했다.
송 전 기자는 "어떤 이들은 당신을 '종군 여기자'로 기억하기도 하겠지만, 나는 압니다. 그건 허명이라는 걸. 당신은 늘 그렇게 주목받고 싶어 했고, 자리 탐이 유난했지요. 그런 당신을 이명박 정권이 완장으로 유인했지요."라면서, "그때부터의 이진숙은 기자 이진숙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냥개가 되어 공정방송을 부정하고 MBC 파괴 공작에 앞장섰으니까요. MBC 기자회가 당신을 제명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지요. 같은 기자로 불리는 게 치욕이었으니까요."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섯 번째 이진숙 후보자는 MBC 기자회로부터 제명당한 최초의 기자라는 사실이다.
2012년 3월 19일 MBC 기자회는 긴급기자총회를 1987년 이후 입사한 24기 이하 기자 121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15, 반대 6표로 이진숙 홍보국장과 문철호 전 보도국장에 대한 제명 건을 가결했다. MBC기자회에서 기자가 제명된 첫 사례가 된 것이다.
MBC 기자회가 이진숙 당시 홍보국장을 제명한 이유는 '그가 한 때 기자였는지를 의심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기자회는 "그 자신이 MBC 기자회의 회원이면서 기자회 제작거부의 대표성을 끊임없이 공격했고, 정치적 의도와 배후가 있다는 날조된 주장을 흘렸다"면서, "파업을 전후해 숱한 언론 브리핑을 통해 파업과 제작거부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왜곡했다"고 제명 이유를 밝혔다.
특히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김재철 지키기의 최선봉에 섰으며, 회사 특보를 통해 후배인 박성호와 이용마를 해고의 길로 몰아넣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MBC 밖에서 본 이진숙 후보자의 이미지와 MBC 내부에서 바라본 이미지는 상반되는 것이다.
연합뉴스
MBC 구성원이거나 구성원이었던 사람들과 이진숙 후보자간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건 MBC가 이른바 '노영방송'이냐 아니냐 하는 점이다.
이진숙 후보자는 지명 인사말에서 "오늘 저는 이 시점에서 공영방송, 공영언론이 노동 권력, 노동단체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영방송, 공영언론의 다수 구성원이 민노총의 조직원입니다. 정치 권력, 상업 권력의 압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먼저 그 공영방송들이 노동 권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독립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MBC가 민노총의 조종을 받는 '노영방송'이라는 건 국민의힘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온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으로 활동하고 국회 과방위 여당간사였던 박성중 전 의원은 "MBC는 완전히 민노총에 의해서 운영되는 노영방송"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박 의원은 그 근거로 "지금 MBC에 100여 명이 넘는 부장급 이상이 있습니다마는 민노총 출신 아닌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면서, 지금 보도국은 전부 그쪽 출신입니다. 지금 사장, 부사장, 본부장 전부 그렇습니다." 라고 말했다, (2022년 11월 8일 YTN라디오 인터뷰)
그러나 최승호 전 MBC 사장은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민주노총 조직원이라는 주장은 어폐가 있습니다. 언론노조는 언론,출판 등 125개 기업별 노조를 하나로 뭉친 산별노조입니다. 예를 들면 SBS노조도 가입돼 있고, 아마 기자들 대부분이 소속돼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이 'SBS기자들이 민주노총 조직원'이라는 말은 하지 않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민주노총은 개별 언론인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언론사 노동조합은 일종의 유니온숍(일종의 자동적인 노조가입)으로 입사와 함께 노조에 가입하게 된다. 그 이후 보직부장 이상 간부가 될 경우 노조에서 탈퇴하는 구조다. KBS와 MBC 등은 제2, 제3 노조가 있지만 단일노조일 경우 유니온숍이 적용돼 자동가입이 되는 것이다. 이걸 '민노총 조직원'이 되는 것이고, '노영방송'의 근거라고 내세우는 건 스스로 무지를 드러내는 것과 다를바 없다.
최 전 사장은 "이진숙 후보자가 김재철 사장 시절 주요 보직간부가 됐을 때, 과거 노조 경력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그 때 노조는 순수했는데 지금 노조는 아니다'라는 식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노조가 변한 것은 없습니다. 이진숙 씨가 변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진숙 후보자가 순조롭게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당은 이 후보자 지명을 두고 "방송 장악을 이어 나가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청문회를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의 벽을 넘어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되더라도 앞 길이 순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스스로 지명 인사말에서 밝혔듯이 이 후보자는 MBC 등 임기가 도래한 공영방송 이사진을 새롭게 구성하고, MBC의 경영진을 교체하는 임무를 띤 '원포인트 릴리프'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야당에서는 2인체제의 방통위가 중요한 의결을 할 경우 계속해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소속의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기형적인 2인체제로 운영되면서 이동관 전 위원장은 3개월, 김홍일 전 위원장은 6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진숙 후보자는 몇개월을 버틸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5인 체제의 방통위를 독임제처럼 2인 체제로 계속 끌고 가려하는 한 3년 임기인 방통위원장은 최단기 수명이라는 오명을 벗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이나 방통위 주변의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