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서울 산과 하천 지역에서 주로 출몰하던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서울 도심으로 확산하면서 시민들의 민원이 급증했다. 하지만 러브버그 방역 지침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아 지방자치단체들은 민원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시는 익충인 러브버그는 물리적 방제를 통해 방역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2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서울시의회에선 '러브버그를 해충으로 지정해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조례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올해 러브버그 민원, 이미 작년 추월…"기온 올라간 탓"
서울 관악구에 사는 인요한(30)씨는 자신의 주거지에서 '러브버그'를 마주친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작년에는 러브버그를 집 근처에서 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어디서나 많이 보이는 것 같다"며 "길을 걸을 때마다 옷에 달라붙는 러브버그를 떨쳐내느라 불편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지난해보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까지 서울시에 접수된 러브버그 관련 민원 건수(9274건)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접수된 민원 건수(5600건)를 이미 앞질렀다.
올해는 '러브버그'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서울 강서구, 구로구, 양천구에서도 관련 민원이 다수 접수됐다. 서울 은평구, 서대문구 등 일부 지역으로 집중됐던 러브버그 관련 민원이 서울 전역으로 확산한 것이다.
러브버그 민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평년보다 따뜻해진 기온 탓으로 추정된다. 기온이 올라가면 러브버그 등 곤충들의 개체 수가 늘고, 출몰 시기는 앞당겨진다. 실제로 올해 서울에 러브버그가 출몰한 시기는 6월 초순쯤으로 지난해보다 약 일주일 정도 빨랐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박선재 연구관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작년 겨울 평균 기온과 올해 봄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면서 러브버그들이 일찍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겨울철에 기온이 내려가야 러브버그들이 동사하는 등 개체 수가 조절될 수 있는데, 작년 겨울 기온이 (러브버그들이) 동사하는 기준점 이하로 내려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해충 아닌 익충' 러브버그…방역 기준 없어 지자체 혼란
러브버그 방제작업. 연합뉴스이런 확산세와 민원의 폭발적 증가에도 서울시는 '러브버그는 감염병을 옮기지 않고 익충으로 분류된다'는 이유로 끈끈이 트랩 설치, 살수 등 '물리적 방제'를 권고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러브버그를 죽이기 위해 살충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다른 생태종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러브버그 확산세가 심각하다면 지자체가 자체 판단해 살충제 등을 뿌리는 화학적 방제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러브버그에 대해 서울시는 지자체에 화학적 방제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고, 현행법상 방역을 할 수 있다는 명확한 근거도 없어 방역 현장은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감염병예방법은 감염병을 옮기는 쥐와 위생해충, 동물 등에 대해서만 구제(驅除) 작업, 예방 조치 등을 의무 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러브버그 등 해충이 아닌 곤충에 대해서는 방역 기준이 따로 없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별도 방역 대책은 수립하지 않고, 서울시에서 내려온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며 "민원 신고가 접수됐을 때마다 방제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도 "감염병을 유발하는 해충이 아니므로 매뉴얼이 없고, 주민 불편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살충 소독은 하지 말라고 하는 입장인데, 서울시는 민원 상황에 따라서 제한적으로 (살충 소독을)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며 "바퀴벌레, 모기 등 해충에 대한 소독 요청도 늘어나다 보니 러브버그 민원을 일일이 대응할 수 없어서 '러브버그는 해충이 아니다'라는 일반적인 안내 만 드리고 있다"고 답했다.
러브버그 해충으로 분류되나?…서울시의회, 조례 정비 움직임
이런 주먹구구식 행정을 개선하기 위해 서울시 안에서도 관련 조례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영희 의원(국민의힘)은 오는 9월 정례 회의를 통해 러브버그를 해충으로 포함하는 방향으로 관련 조례를 정비해나갈 계획이다.
윤 의원은 CBS노컷뉴스 통화에서 "러브버그가 질병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관리할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며 "질병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시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때는 개체 수를 조정하는 정도로 (화학적) 방제를 할 수 있도록 입법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