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반헌법적 노조파괴 행위"를 향한 '검은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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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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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을 다니다보면 다양한 군상의 피고인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피고인이 어떻게 피해자의 삶을 무너뜨렸는지 그 내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어떤 피고인은 의도치 않은 과실로 피해자의 인생을 뒤흔들기도 하고, 또 어떤 피고인은 작심하고 피해자의 삶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운전 중 순간의 오판으로 사고를 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피고인이 있는가 하면,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무려 13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노무법인의 자문을 받고 범행을 저지른 기업도 있죠.(해당 기업 회장은 결국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 받았습니다.)
 
이번 법정B컷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수많은 노동자들의 근간을 뿌리 뽑으려 했던 한 기업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법정 안팎에서 드러난 이 기업의 '검은 노력'을 전해드립니다.
 

검찰은 SPC의 "체계적·조직적 범행"이라 규정했다

지난 18일, SPC 노조 파괴 의혹 첫 공판이 진행됐던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 이곳의 방청석은 민주노총 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이하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 수십 명을 비롯한 방청객들로, 피고인석은 무려 19명의 피고인들로 가득 찼습니다.
 
피고인이 많다 보니 재판이 시작된 후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하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습니다. 검찰 측의 모두발언을 앞두고 PPT를 띄울 화면이 나오지 않아 잠시 재판이 지연되기도 했고요.
 
그렇게 시간이 제법 소요된 뒤, 다시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모두발언에 앞서, 검사는 "앉아서 진행해도 되겠냐"며 재판장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모두발언에 시간이 꽤나 걸릴 거라는 걸 암시한 것이겠죠. 그렇게 검찰 측은 자리에 앉아 발언을 시작했고, 공소사실을 하나하나 나열해 나갔습니다.
 
시간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7년 8월 설립된 파리바게뜨지회는 SPC그룹의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및 카페기사 불법파견을 문제 삼으며 파리크라상 측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합니다. 고용노동부 또한 파리크라상에 직접고용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SPC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2018년 11개의 협력업체를 통합한 '피비파트너즈'(구 해피파트너즈)를 설립해 파리크라상 자회사로 두고, 그곳에 제빵기사를 고용합니다. '사회적 합의'도 체결합니다. 3년 내 제빵기사들에게 본사와 동일 수준의 복리후생과 임금을 약속한 거죠.
 
그러던 중 2019년 7월쯤, SPC의 작업이 시작됩니다. 파리바게뜨지회를 죽이고, 회사 친화적인 한국노총 소속 피비노조(이하 피비노조)를 띄우기 위한 공작 말이죠.
 
2024.6.18.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 'SPC 민주노총 노조 파괴 의혹' 공판 中
검사 : 2019년 7월 8일, 피비파트너즈에 과반수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 임모(파리바게뜨지회 지회장)씨가 근로자 대표로 선출된 게 그 계기가 됐습니다. 허영인 회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황재복 대표이사에게 '노사관리를 제대로 못한다'고 질책했습니다.
 
황재복은 노무법인으로부터 자문받은 내용을 토대로 피비노조를 과반수 노조로 만들겠다고 허영인에게 보고합니다. 허영인은 이를 승인하고, 허영인의 지시에 따라 황재복은 피비파트너즈 노무관리 정모 전무에게 피비노조 조합원 모집 작업을 지시합니다. (…) 사측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피비노조는 6주 만에 900여 명의 조합원 모집해 과반수 노조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허영인, 황재복 등의 순차적인 지시에 따른 사측의 조직적 개입이 피비노조를 과반수 노조로 만들고, 임모씨가 근로자대표 지위를 상실하는 결과를 만든 겁니다.

이후 2021년 1월이 됐습니다. SPC가 앞서 언급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기로 한 기간인 3년이 지난 거죠. 이에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이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항의하자, 2021년 2월부터 본격적인 파리바게뜨지회 파괴 공작이 시작됩니다.

2024.6.18.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 'SPC 민주노총 노조 파괴 의혹' 공판 中
검사 : 허영인은 파리바게뜨지회 활동이 SPC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다고 판단해, 파리바게뜨지회의 세력을 약화시켜야겠다고 마음 먹고, 황재복에게 파리바게뜨지회 숫자를 줄여서 시위를 하지 못하게 하라고 탈퇴 종용 작업을 지시합니다.
 
정모 전무 등은 그 무렵부터 전국 8개 사업부장들에게 탈퇴 작업을 지시했습니다. 
매월 목표 탈퇴 수치를 정해 실적을 보고 받았습니다.
 
허영인은 황재복에게 '
왜 이렇게 속도가 느리냐'면서 탈퇴 종용을 독촉하기도 했습니다. 수직적이고 조직적인 공모 아래, 전국 8개 사업부장들은 제빵기사들로 하여금 탈퇴하도록 했으며, 서로의 탈퇴실적을 공유했습니다. (…) 제빵 기사들에게 '탈퇴하라, (탈퇴하지 않으면) 진급에 제약이 있다'고 탈퇴를 종용했습니다.
 
허영인의 지시로 시작된 
탈퇴작업은 전방위적으로 진행됐습니다. 한번 뿌리 내린 파리바게뜨지회에 대한 적대의식은 장기화됐고, 파리바게뜨지회 소속 제빵기사 573명을 대상으로 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결국 노조 파괴 공작 약 5개월만에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수는 750여 명에서 200여 명으로 급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파리바게뜨지회 소속 조합원들은 승진평가 중 정성평가에서 D등급을 받아 승진 대상에서 배제되기도 했습니다. 대신, 파리바게뜨지회를 탈퇴한 이들은 높은 정성평가 점수를 부여 받아 승진을 하기도 합니다. 탈퇴의 대가를 받은 거죠.
 
뿐만 아니라 SPC는 언론과 국회 대응에도 피비노조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2021년 4월부터 파리바게뜨지회가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SPC에 대한 집회와 시위 등을 이어가자, SPC는 이에 대한 회사의 입장을 직접 설명하는 대신, 피비노조를 통해 사측의 입장을 '강하게 전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노노(勞勞)갈등'까지 야기했다는 게 검찰 측 주장입니다.
 
이처럼 1시간 가까이 이들의 공소사실을 나열하던 검사는 다음과 같이 SPC의 노조 파괴 공작을 결론지었습니다.

2024.6.18.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 'SPC 민주노총 노조 파괴 의혹' 공판 中
검사 : 체계적, 조직적으로 벌어진 범행입니다. (회사 친화적인) 피비노조 조합원 모집 작업을 지시했고, 파리바게뜨지회 탈퇴 종용을 지시했으며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피비노조를 활용해 '노노 갈등' 프레임을 기획하고 언론, 국회 대응까지 지시했습니다. 대담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됐습니다. 노동자들 편가르기를 하고, 이를 교묘히 조작해 여과없이 활용했습니다. 이는 반헌법적 노조파괴 행위이자 중범죄입니다.

검찰 측 발언이 끝나자 방청석에서는 박수 갈채가 쏟아졌습니다. SPC의 민낯이 낱낱이 파헤쳐진 것에 대한 통쾌함의 박수였겠죠.
 

수사 중에도, 재판 중에도 '검은 노력'은 계속됐다

서울 양재동 SPC 본사. 박종민 기자서울 양재동 SPC 본사. 박종민 기자
SPC의 또다른 만행도 드러났습니다. 그룹 총수가 연루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에 대한 수사 기밀을 뇌물을 주고 빼돌린 사실이 적발된 겁니다. 전사적인 노조 파괴 작업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듯 합니다.

수사 기밀을 빼내는 데 핵심 역할을 한 백모 전무는 노조 파괴 의혹 사건 피고인이기도 합니다. 지난 21일 열린 'SPC 수사기밀 누설' 재판으로 가보겠습니다.
 
2024.06.21.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SPC 수사기밀 누설' 결심공판 中
검사 : SPC 수사담당자인 김모씨가 백모 SPC 전무 등 SPC 그룹 측에 허영인 회장 등이 연루된 사건의 수사 정보를 유출하고 그 대가로 뇌물을 수수했습니다. (김씨는) 배당 상황부터 내부 동향, 검토 의견, 압수수색 영장 발부 경위 등 수사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뇌물을 수수했습니다.
 
백모 전무는 김모씨로부터 받은 수사기밀을 경영진에 보고하면서 그룹차원에서 뇌물을 공여하고, 그룹 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중대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백모 전무는 
검찰 수사관을 매개로 국가 공권력을 매수해 형사사법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합니다.

 
60여 차례에 걸쳐 수사기밀을 건네받은 SPC. 수사 중에도 반성은 없었던 겁니다. 이에 검찰은 백 전무에 대해 징역 3년을, 검찰 수사관 김모씨에게는 징역 5년 및 벌금 2000만원, 약 620만원의 추징금을 구형했습니다.
 
검찰이 구형하자, 그제서야 뒤늦은 반성이 시작된 걸까요. 백 전무는 새빨개진 얼굴로 오열하며 겨우 말을 이어갔습니다.
2024.06.21.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SPC 수사기밀 누설' 결심공판 中
백모 전무 : 50여년 동안 살면서 지금 제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고, 원망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모든 사람들한테. 아흑…진짜로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됐습니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이상입니다.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백 전무의 눈물은 쉬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백 전무가 법정 밖으로 나간 후에도 그의 울음소리가 법정 안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그 눈물을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수사 중에도 왜 반성 따윈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찰나, 누군가 서둘러 다가왔습니다. 다름 아닌 SPC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명함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구형한 게 기사 밸류(가치)가 있나요? (언론사) 내부 시스템이 있어도 취재기자가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면 그래도 들어주지 않나요? 백 전무님 저렇게 오열하시는데…"
 
잠시나마 들었던 안타까운 감정은 이내 차갑게 식었습니다. 아직도 SPC의 '검은 노력'은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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