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황진환 기자국민의힘이 7월에 전당대회를 실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출마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권 접수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당대표가 되더라도 '무한' 거부권 정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거야(巨野)가 192석을 점유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 등 핵심 상임위원장직을 독차지한 데다가 18개 상임위 모두에서 과반을 점하고 있다. 민주당은 당장 6월 임시국회 안에 각종 특검법과 쟁점이 존재하는 중점 처리 법안들을 단독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과 용산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외에 뾰족한 대응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한동훈 체제'를 가정하면 '민주당 단독 통과 →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 국회 재표결'이 '무한 반복'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대통령실의 입장을 뒷받침할 것인지, 민생 관련 법안 등을 위해 야당과의 협치에 나설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셈이다.
집권 여당의 수장으로서 국정 운영에 책임이 있는 만큼 무작정 야당에 반대만 하기에는 '발목 잡는 여당' 프레임에 빠질 수 있다. 반면 야당 주장을 수용할 경우 '배신자'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다. 딜레마적인 형국이 펼쳐지는 것이다.
'무한 거부권' 전망…'발목 잡는 여당' 우려도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왼쪽)와 참석한 의원들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11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비상 의원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폭거에 의해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했다"며 "저희들은 인정하기 어렵고 거기서 진행되는 일정에 관해서도 전혀 동참하거나 협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상임위 보이콧 방침을 재강조한 셈이다.
이날 국민의힘 의총에서는 야당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온건론'보다는 야당의 단독 처리 법안에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또한 여야 합의에 의한 법안이 아닐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강경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여당 입장에서 계속해서 야당에 반대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반야(反野)' 전략만으로는 현재의 지지율 유지조차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민주당이 상임위를 독식했던 21대 국회 전반기의 경우 여야가 반대였기 때문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서 국회를 보이콧하더라도 책임에서 일부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민생을 챙겨야 하는 여당 입장이다.
추 원내대표 역시 이를 의식한 듯 "국민들이 정말 기다리고 계신다.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민생을 우리가 제대로 챙겨야 한다"며 "우리가 유능하게 일을 제대로 하는 의원들, 그런 국민의힘이 되어야 한다는데 총의를 다하자고 의식을 같이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 여당 의원도 "우리가 야당도 아니고 마냥 거부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대만 할 경우 자칫 '발목 잡는 여당' 프레임에 갇힐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반면 야당 입장에 찬성할 경우 '배신자 프레임'에 몰릴 수 있다. 특히 민주당에서 '채 상병 특검법'과 함께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김건희 여사 일가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에도 특검을 강행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라, 이에 '조건부 수용론' 등을 꺼낼 경우 여권 내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與대표, '채상병 특검' 재의결 첫 시험대…찬성시 '배신자' 낙인
지난달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재의결 안건으로 상정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이 부결되자 방청석에서 일어나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연합뉴스이 같은 여당의 '딜레마'는 차기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 대표가 당면할 핵심 과제로 꼽힌다. 첫 번째 시험대는 '채 상병 특검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선 현재 6월 임시국회 안에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직까지 차지한 만큼 야권 단독으로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데는 별다른 시일이 소요되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본회의 직전 최종 관문인 법사위에는 정원 18명 중 10명이 민주당 의원들로 채워졌고, 비교섭단체 몫 1명엔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이 배치됐다. 법사위에서 국민의힘 주도로 소수당의 다수당 독주 제어 수단인 안건조정위원회가 열리더라도, 민주당과 혁신당이 연대하면 무력화할 수 있는 셈이다.
앞서 21대 국회 전반기의 경우, 18개 상임위원장직을 독차지한 민주당이 임대차 3법 등 부동산 관련 법안들을 관련 상임위부터 본회의까지 통과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사흘이었다. 법사위와 본회의를 같은 날 연다면 법안 발의부터 통과까지 최대 '이틀'까지도 단축 가능하다.
6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통과할 경우, 정부에선 15일 안에 이를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7월 국회에서 재표결 될 가능성이 높은데,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 시기와 맞물린다. 원내 상황이긴 하지만, 주요 현안의 경우 당대표가 전면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차기 당대표의 첫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 전 위원장은 전당대회 출마를 전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일 이재명 대표의 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가 징역 9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은 직후 8일부터 10일까지 내리 3일 동안 이 대표를 저격했다. 특히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명시한 '헌법 84조'를 들어 '대선 당선 뒤에도 재판이 가능하고 유죄면 당선 무효'라는 주장을 펴 "한동훈이 이재명의 대항마로 나서려 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