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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볼래]다크 투어…'타인의 고통'에 대한 방관과 공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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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er Side of Travel' 교보문고 갈무리 'The Darker Side of Travel' 교보문고 갈무리 
관광이나 휴양 목적이 아닌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찾아 떠나는 순례객들이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대량학살, 인종청소, 전쟁과 기아, 질병, 각종 재난 현장 등 역사적 공간과 비교적 드러나지 않은 역사 뒤편에 자리한 슬픔의 공간을 찾는 여행, 바로 '다크 투어'(Dark Tourism)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의 폴란드어)에 세운 정치범 수용소다. 전쟁이 극에 치달으며 유대인 대학살 시설로 사용된 대표적인 제노사이드 현장이다.

1986년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쪽, 벨라루스 접경 지역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기 원자로 폭발사고 현장, 2011년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뒤 이은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현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 현장, 세계 최초로 핵폭탄이 사용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캄보디아 프놈펜 킬링필드 현장인 청아익,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의 장소 기소지·냐마타·무람비·비세로 등 이제는 기록으로만 남은 현장은 역사적 비극과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호기심을 쫓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미국인들 중에는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피격 장소를 찾아 저격 사건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경우도 있다.  


1945년 1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 갈무리1945년 1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 갈무리​​
우리에겐 삶의 흔적을 더듬고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교훈적 의미의 '답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찾는 수요가 높아지며 해외에서는 관광 상품과 연계된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곳을 찾는 '다크 투어'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 중 하나가 '판문점'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자 70년 넘게 휴전 상태인 한반도에서 민간인이 남북 대치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한 마니아가 개설한 다크투어닷컴 사이트에는 117개국 약 1천 곳 중 한국의 유일한 다크 투어 장소로 DMZ 판문점이 소개돼 있다.

'다크 투어'의 개념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칼레도니언대학교 관광학 교수인 존 레넌(J. John Lennon)과 말콤 폴리(Malcolm Foley)의 1996년 논문 'JFK와 다크 투어: 암살의 매력'(JFK and Dark Tourism: a fascination with assassination)에 처음 등장한다.

존 레넌 교수는 다크 투어가 1815년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현장에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유럽 패권의 명운을 건 세기의 전투를 마차에서 관람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투는 엘바섬에서 탈출해 재집권에 성공한 나폴레옹이 정예 프랑스군을 총동원해 영국·프로이센 연합군과 대전을 벌인 사건이다. 패배한 나폴레옹의 시대가 몰락하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유럽에 '백년평화'가 이어진다.

존 레넌 교수는 중세 길거리에서 처해진 교수형이나 로마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상품으로 이용했던 사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여행의 어두운 면'(The Darker Side of Travel), '다크 투어: 에세이'(Dark Tourist: Essays) '여행의 어두운 면'(The Darker Side of Travel), '다크 투어: 에세이'(Dark Tourist: Essays)
역사적 현장 답사를 통한 공감대를 넘어 흥미 위주로 관광 상품화된 다크 투어가 역사 왜곡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 역사적 서사를 적당히 버무린 '공포 체험'으로 변질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 2018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다크투어리스트: 어둠을 찾아가는 사람들'에서는 섬뜩하고 기묘한 사건 현장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으면서 관광 상품화 된 다크 투어를 다루기도 했다.  

하산티카 시리세나(Hasanthika Sirisena) 미국 버몬트 예술대학(Vermont College of Fine Arts) 문예창작과 교수는 그의 저서 '다크 투어: 에세이'(Dark Tourist: Essays)를 통해 다크 투어에 대한 잘못된 태도가 역사 인식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비판한다.

일반적으로 다크 투어는 전쟁이나 테러, 재난 등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찾아 반성과 교훈을 얻는 테마 여행을 일컫는다. 하지만 영국 센트럴랭커셔대학교 관광학과 교수 리차드 샤플리리(Richard Sharpley)와 필립 스톤(Philip R. Stone)은 공동 저서 '여행의 어두운 면'(The Darker Side of Travel)에서 다크 투어를 '죽음, 고통, 섬뜩해 보이는 장소로 여행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이 같은 현장에 여행객들이 몰리는 현상을 두고 샤플리와 스톤 교수는 "단순히 병적 호기심 또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에서 느끼는 기쁨)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며 본능적인 생존 감각에 이끌리거나 자신만의 새로운 모험 서사를 만들고 싶은 욕망, 관음증적 충동, 슬픔이라는 심리적 영향 역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디즈니월드나 라스베이거스는 관광객의 편의와 즐거움을 위해 설계된 데 반해 다크 투어 여행지는 죽음, 슬픔, 재난, 학살 등의 실제 현장에 들어감으로써 관찰자이자 증인이 되는 특수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시리세나 교수는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지적한다. 수동적 방관자로 역사를 볼 것인가에 대한 다그침이다.


그린비·아트로드 제공그린비·아트로드 제공
다크 투어 개념이 정립된 이후 관련 서적도 국내에 꾸준히 출간 됐다. 근현대사의 질곡이 깊고 길었던 한국사에서 다크 투어는 교훈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국가의 역사에 있어 전쟁과 재난, 정치와 이념적 탄압과 학살, 고통과 슬픔, 국가적 분단까지 다크 투어의 모든 장르를 가진 몇 안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닐까.

김여정의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는 한국전쟁 당시 목포형무소에서 실종된 오빠를 애타게 찾던 할머니를 떠나보낸 후, 할머니가 살아생전 내내 그리워하던 오빠의 존재를 찾아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 저자의 특별한 여행기록이다.

깔끔한 아파트 단지로 변한 목포형무소의 자리, 시민공원이 된 희생자들의 묘지 등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학살의 장소를 마주한 저자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의 학살 현장을 직접 찾아나선다.  

잊혀진 목포형무소의 민간인 학살 현장을 더듬어가는 것을 시작으로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1948년 말레이시아 바탕칼리 학살, 1947년 타이완 2·28사건을 돌아 제주 4·3사건의 현장으로 돌아온다. 저자는 할머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날 속에 여전히 살고 있을 '학살 피해 유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다빈의 '소설과 함께 떠나는 다크투어'는 일제강점기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까지 비극적인 우리 역사를 그려낸 21편의 소설과 함께 다크 투어를 떠나는 여행기다.

개항기 화평동과 선상파시(어선 위에서 열리는 수산물시장)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북성포구에서 현덕의 '남생이'를 만나보고, 만석동에서는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배경지가 어떻게 변모됐고, 아직 쪽방촌에서 살 수밖에 없는 가난의 대물림에 대해 생각해본다. 강경애의 '인간문제'의 현장인 동일방직에서 인간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오정희의 '중국인거리' 속 풍경이 남아 있는 차이나타운에서는 양공주로 살아야만 했던 여성의 삶을 마주한다.

이처럼 이 책은 개항의 물결 따라 인천, 고립된 섬의 운명 제주, 거친 삶의 파도 부산, 격변의 도시 서울을 그 시대를 그려낸 소설과 함께 근현대사를 관통한 민도의 척박한 삶, 고통의 삶,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삶까지 길어 올린다.


어떤책 제공 어떤책 제공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의 저자 양재화 작가는 "타인의 고통이 떠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2005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캄보디아, 칠레, 아르헨티나, 대한민국 제주, 아르메니아를 여행하며 많게는 150만 명이 희생된 제노사이드 현장과 관련 박물관을 방문한 저자는 많은 시간과 경비를 인류의 어두운 역사를 마주하는 데 들인 이유를 짚어낸다.

책은 '제노사이드'라는 인류의 어두운 역사를 다루지만, 작가는 여행에 머물지 않고 관련 자료들을 성실히 찾고 본 것들의 의미를 되새겼다. 해외 논문과 웹사이트, 정부 보고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저작물, 문학작품 등 긴 각주와 참고도서 목록까지 정리돼 있어 독자로 하여금 함께 탐구할 여지를 제공한다.

제노사이드 현장을 찾아 떠나고 또 떠난 저자가 12년의 여행, 6년의 집필기간이 걸린 이유를 고스란히 담았다. 다크 투어가 모험이나 샤덴프로이데 관광이 아닌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여행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책머리를 통해 "내가 국내외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억압과 비인권적 행위에 분노하고 가슴 아파한다면, 이는 많은 부분 다크투어가 가르쳐 준 것들 덕분이다. 공감도 학습이 필요한 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훌륭한 선생"이라고 말한다.

다크 투어의 본질에 다가선 저자는 우리 사회에 부족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 여행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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