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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 그리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불편한 진실[책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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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이미지 제공 스마트이미지 제공경제 불황이 지속되고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올해 밸런타인데이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코코아) 수확이 감소해 가격이 급등했다는 뉴스도 쏟아진다. 세계적인 초콜릿 제조지로 꼽히는 스위스를 비롯해 글로벌제과 업계의 초콜릿 공장들 역시 수익 감소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초콜릿 이벤트로 잘 알려진 밸런타인데이는 3세기 고대 로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로마제국 군인들은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허락이 있어야 결혼할 수 있었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데 따른 사기 저하와 탈영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를 안타까워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발렌티누스 신부가 법을 어기고 이들의 성혼 주례를 섰다가 발각돼 몰매형을 받고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이를 기리기 위해 생긴 것이 '성 발렌티노 축일'(밸런타인데이)이다.  

이를 두고 발렌티누스 신부가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과 기업의 상술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논쟁으로 이어졌다. 학계에서는 부분적인 기록이나 구전에 의해 당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합쳐졌을 것으로 본다.

사실 밸런타인데이와 초콜릿은 하등 관계가 없다. 그런데 1861년 영국 초콜릿 제조 회사 캐드버리사의 리처드 캐드버리가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선물하는 광고를 기획하면서 당시 가족이나 연인, 이웃과 선물을 주고 받던 문화에 초콜릿을 좀 더 각인시키는 효과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카카오 열매를 가공해 만든 초콜릿 원료의 명칭인 코코아로도 불렸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에 대한 기록은 성 발렌티노 축일이 만들어졌을 시기인 4세기 고대 마야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야인들은 지금의 달콤한 초콜릿과는 다른, 원액에 가까운 쓴 물을 마셨다. '신들의 열매'라 부르며 왕족과 제사장에게만 제공된 이 음료는 카카오를 수확해 발효와 건조 과정을 거친 뒤 물이나 고춧가루 등 향신료를 섞어 마셨다. 초콜릿은 '쓴 물'이라는 뜻의 '초코라틀'에서 따왔다.

1519년 에스파냐에 의해 정복당한 아즈텍을 통해 이 초코라틀이 '초콜라테'라는 이름으로 에스파냐와 유럽으로 전해졌고 쓴 맛을 완화하기 위해 설탕을 더하자 왕족과 귀족들로부터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아침식사로 커피나 초콜릿을 마셨다고 한다.

17세기 유럽으로 확산된 초콜릿은 다양한 제조법이 개발되면서 달고 진한 음료로 전파됐다. 이와 함께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다양한 유럽 국가에서 초콜릿 등 제과 제조업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원료가 가미된 초콜릿이 만들어져 홍차 이상으로 가진 자들의 귀한 음료로 각광받는다. 19세기가 돼서야 지금의 초코바 형태로 만들어져 꿈과 희망, 달콤한 낭만을 입혀 전 세계로 대중화 된다.

코트디부아르 신프라에서 농부가 말리고 있는 카카오 열매. 연합뉴스 코트디부아르 신프라에서 농부가 말리고 있는 카카오 열매. 연합뉴스 우리에게 초콜릿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대표적인 매체로 영국 소설가 로알드 달이 1964년 발표한 아동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이 있다. 이 소설에는 초콜릿 폭포수와 초콜릿 강이 흐르는 환상적인 공장이 등장한다. 제멋대로인 4명의 아이들과 주인공 찰리가 천재 과자 발명가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갈 수 있는 행운의 황금 티켓에 당첨돼 공장을 견학 할 기회를 얻으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그린 스테디셀러다.

그로테스크한 연출로 유명한 팀 버튼이 감독을 맡고 조니 뎁이 윌리 웡카를 연기한 동명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으로도 유명한 이 원작 소설은 대도시 변두리 가난한 판잣집에 양가의 두 할아버지 할머니, 치약 공장에서 치약 튜브 뚜껑을 끼우는 일을 하는 노동자인 아버지와 집에서 뒷바라지하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꼬마 찰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60년대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거치며 미국,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의 '누가 더 잘 사나' 체제 경쟁이 본격화된 시기다. 전 세계의 공장은 쉼 없이 돌아갔고 한국도 산업화 시대를 맞고 있었다.

시공주니어 제공 시공주니어 제공 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모두가 가고 싶어 안달하는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달콤한 행복을 주는 영역으로 그려진다. 공장 견학에 당첨된, 탐욕과 교만이 가득한 4명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줄줄이 탈락하고 선하고 욕심이 없는 찰리가 공장을 운영할 웡카의 후계자가 된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 스토리다.

조금 더 들여다 보자. 평생 먹을 초콜릿과 사탕, 특별선물을 받을 수 있고, 달콤한 욕망이 가득한 초콜릿 공장에 갈 수 있는 황금 티켓을 구하기 위해 너도 나도 웡카 초콜릿을 구매하게 된다. 웡카의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마케팅, 황금 티켓을 찾은 찰리의 행색을 무시하는 비아냥과 돈을 줄 테니 서로 자신에게 넘기라는 어른들의 탐욕, 1년에 한 번 자신의 생일에만 가족들이 모은 돈으로 초콜릿을 살 수 있는 찰리의 빈곤한 모습, 웡카 공장의 제조 비밀을 훔치려는 경쟁사들의 스파이 행각과 이로인해 집단 해고된 초콜릿 공장의 노동자들의 이야기에서 자본주의의 작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때로는 친화적으로 로알드 달 취향의 블랙 코미디를 곳곳에 섞어 그려낸다.

저자 로알드 달이 영국 랩터 사립학교에 다녔을 때 초콜릿 제조 회사 캐드버리사가 이 학교 학생들에게 1년에 한 번씩 초콜릿을 보냈다고 한다. 마케팅의 영향이었는지 그는 초콜릿 마니아가 됐는데, 1930~1937년 사이 초콜릿이 가장 혁신적이며 다양하게 변화하고 발전한 음식이라고 예찬하며 초콜릿의 역사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또 다른 책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2016, 샌들코어)은 세계화가 가져온 전례 없는 풍요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다. 초콜릿, 스마트폰, 팜유, 의류, 커피, 새우, 담배, 목화 등 우리가 사용하는 8가지 물건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한계를 짚어낸다.

전 세계 카카오의 70%가 코트디부아르와 가나 등 서남아프리카에서 생산된다. 공정무역의 일환으로 전 세계 커피 농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를 이끌어냈지만 카카오 농장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이는 여전히 165만여 명에 달한다.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서 노동자들 대신 초콜릿을 만드는, 원시인에 가까운 난쟁이 원주민 움파룸파 족이 등장한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카카오를 영원히 먹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호두까기 방을 제외한 모든 공정에서 쉼 없이 노동력을 제공한다. 심지어 새로 개발하는 제과제품의 임상실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웡카는 움파룸파 족을 아끼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샌들코어 제공 샌들코어 제공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은 아동 노동 현장은 착취의 극단적 형상이라 비판한다. 최약자이자 값싼 노동력인 아이들이 브로커의 말에 속아 인신매매로 팔려가 카카오 농장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꼬집는다. 우리가 초콜릿이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 지갑을 여는 사이 에스파냐가 아즈텍의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이들에게 행했던 폭력과 착취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음을 일깨운다.

이와 함께 생산자가 운영하는 초콜릿 회사를 세운 쿠아파 코쿠 협동조합, 윤리적인 해리포터 초콜릿을 만들어 낸 해리포터 연합, 블러드 콜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인 도드-프랭크 법, 공정한 스마트폰을 만드는 페어 폰, 자신의 땅을 지켜나가는 콜링우드 만 사람들, 윤리적 음료를 제공하는 자차 씨 부부, 서명으로 기업을 변화시키는 시민단체 아바즈, 빈민가를 일으켜 세운 랙스쿠리치스, 공정무역 목화로 지폐를 만드는 네덜란드 등 다양한 사례도 소개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로알드 달 지음|시공주니어|260쪽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공윤희·윤예림 지음|샌들코어|272쪽

■초콜릿 이야기 이국적인 유혹의 역사
정한진 지음|살림출판사|94쪽

■신들의 열매 초콜릿
소피 도브잔스키 코 외 지음|서성철 옮김|지호|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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