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외야수 황성빈. 이우섭 기자현재까지 2024시즌 프로야구 최고의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꼽으라면 단연 '황성빈 챌린지'일 것이다.
시즌 초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1루에 출루한 롯데 황성빈(26)이 상대 투수 양현종을 상대로 한 반복적인 스킵 동작이 야구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일각에선 상대를 자극, 도발하는 비매너 행위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로 인해 황성빈에겐 '얄미운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히고 말았다. 그러나 황재균(kt 위즈), 김태군(KIA), 구자욱(삼성 라이온즈) 등이 경기 중 이 동작을 따라 하면서 KBO 리그 선수들 내 이 동작이 유행처럼 번졌다.
'밈의 주인공' 황성빈이 팀의 연패 사슬을 끊어내는 데 앞장섰다. 황성빈은 1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리그' LG 트윈스와 3연전 마지막 경기에 2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건 지난 4일 한화 이글스전 이후 11경기 만이다.
롯데는 이날 전까지 8연패 수렁에 빠지며 힘겨운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었다. 이에 사령탑 김태형 감독은 타순에 큰 변화를 줬고, 선택을 받은 선수는 황성빈이었다. 김 감독은 경기 전 "워낙 타격감이 좋지 않은 선수가 많다. 황성빈도 한 번 써봐야 한다"며 기용 이유를 설명했다.
오랜만에 선발 출전임에도 황성빈은 기죽지 않았다. 황성빈은 "첫 선발(한화전)에 나갔을 때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 이후 타석에서 제가 어떻게 했는지를 봤고, 그에 맞게 코치님과 얘기를 하면서 준비했다"고 그간의 과정을 되짚었다.
이어 "솔직히 야구를 하면서 백업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황성빈은 "제가 올 시즌 후보로 시작을 했지만 코치님들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다"고도 덧붙였다.
연합뉴스마음을 단단히 먹은 황성빈은 첫 타석부터 김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1회초 1사 상황, 상대 선발 케이시 켈리와 9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우전 안타를 기록해 낸 것.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신의 최장점인 빠른 발을 이용해 LG 수비진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후속 빅터 레이예스의 타석 당시 2루 베이스를 훔쳤다. 진가는 계속 발휘됐다. 레이예스의 내야 안타가 나왔는데, 2루에 있던 황성빈은 쏜살같이 달려 3루를 찍고 홈으로 파고들어 점수를 냈다.
보통 빠른 발이 아니라면 내기 힘든 득점이었다. 황성빈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그저 주루 코치님 사인을 보고 뛰었을 뿐"이라며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솔직히 상대 2루수가 볼을 잡았는지, 못 잡았는지 보지도 못하고 그냥 뛰기만 했다"며 "이건 코치님의 몫"이라고 공을 돌렸다.
황성빈의 활약은 이어졌다. 3회초 두 번째 타석에서도 켈리의 7구째 커터를 타격해 우전 안타를 생산한 것이다. 1루로 출루한 뒤엔 폭 넓은 리드로 상대 투수의 신경을 건드렸고, 결국 견제 송구 실책까지 유발해 2루에 안착하기도 했다.
이날 황성빈은 5타수 2안타 2득점의 활약을 펼쳤다. 올 시즌 출전 이후 가장 좋은 경기력이었다. 황성빈은 "저희 경기를 돌아보면 점수를 먼저 주고 따라가다가 끝난 경기가 많았다"며 "그래서 초반에 더 집중해서 출루하려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티빙 중계 화면 캡처상대 심기를 건드리는 플레이로 이번 시즌 초반부터 자신에게 깊게 박혀버린 '얄미운 이미지'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그런 것들을 신경 쓰면 준비한 것을 아예 못 한다"는 것이다.
황성빈은 "제가 '열심히 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명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게 상대 팀에서 불편하다고 해도 최대한 신경 안 쓰려 한다. 팀 선배들도 제가 하고 싶은 야구를 많이 밀어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상대 팀에서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쓰이게 할 수 있다"며 "그걸 이용하려고 한다"고도 첨언했다.
끝으로 연패 탈출에 대한 행복한 마음을 드러냈다. 황성빈은 "연패 기간이 길어졌다는 게 힘들었다. 오랜만에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연패를 끊을 수 있어서 기분이 많이 좋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