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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서 '간첩' 몰린 한국인…'北 선교' 와중 무슨 일 있었나[안보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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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 방송 : CBS 라디오 <박지환의 뉴스톡 530>
■ 채널 : 표준FM 98.1 (17:30~18:00)
■ 진행 : 박지환 앵커
■ 패널 : 김형준 기자


[앵커]
올해 초 러시아에서 우리 국민이 이른바 '간첩 혐의'로 체포돼 구금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한러관계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국방, 외교, 통일 분야를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김형준 기자와 함께 '안보열전' 코너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김 기자, 멀리 러시아까지 연결해 취재하느라 고생이 많은데 먼저 전반적인 상황을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기자]
이 사건은 사흘 전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의 보도로 처음 알려졌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선교사 백모씨이고요, 체포된 시점은 올해 1월입니다.

문제는 혐의인데, 수사당국이 백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했다고 합니다. 국내 방첩을 담당하는 연방보안국(FSB)이 블라디보스톡에서 백씨를 체포했고 현재 모스크바로 이송돼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구금돼 있다는 게 타스통신 보도 내용입니다.

[앵커]
이런 상황이 흔한 일은 아니었죠?

[기자]
흔한 일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간첩 혐의로 체포 구금까지 된 건 아예 처음 있는 일입니다. 물론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체포되면 무슨 일이든 간에 외교부가 원래 영사조력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이런 식으로 체포 구금된 건 처음이예요.

때문에 그러잖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냉각된 한러관계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백씨가 진짜로 국가기밀을 수집한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가 뒤집어 씌운 것인지는 현 시점에서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앵커]
그 부분이 사실 핵심이 될 것 같은데, 백 선교사는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었나요?

[기자]
저희도 취재하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또 많이 고민한 뒤에 보도한다는 점을 미리 알려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백 선교사는 지구촌사랑의쌀나눔재단이라는 단체에서 블라디보스톡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 충남 한 교회에서 북한 선교를 담당하고 있고요.

다만 두 곳 모두 백 선교사의 해외 활동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기는 했습니다. 직책을 맡은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식량이나 선교비를 요청하면 그걸 지원했을 뿐이라고요.

[앵커]
백 선교사가 북한이탈주민을 돕는다고도 알려져 있는데요.

[기자]
그렇게 전해지지만 명확하게 확인되진 않는 상황인데, 다만 원래 선교와 탈북민 돕기가 경계가 좀 모호합니다. 예를 들어 국내 교회들도 선교와 저소득층 돕기를 함께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입수한 백 선교사의 사진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입수한 백 선교사의 사진취재 과정에서 백 선교사 지인을 접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입수한 백 선교사님의 사진을 지금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100% 정확하진 않지만 어떤 일이 있었을 수 있는지 실마리 정도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번 직접 들어보시죠.
"짐작이 되는 게, 드라마 같은 것이 담겨 있는 USB를 갖다가, 직접 주지는 않고 브로커를 통해 주는데 그 브로커가, 가운데서 뭐, 돈 받고 뭘 하든 간에 장난을 친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짐작하냐면 북한 선교의 흐름을 알기 때문에. 그 친구는 분명 북한 선교를 하러 갔었고 그렇다면 그것밖에 없어요."

타스통신 보도를 보면 백 선교사는 '벨르이 카멘'이라는 러시아 여행사 대표이기도 하다는데요, 러시아어로 '하얀 돌'이란 뜻입니다. 한자로 백석(白石)이죠. 재무재표를 보면 직원은 3명, 지난해 약 450만 루블 즉 6500만원 정도 손실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 지인은 여행사에 대해서도 장기 체류 비자를 받기 위한 방법이라면서 연락할 때도 백 사장이라고 에둘러 불렀다고 전해 왔습니다.

실제로 북한 선교는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중국 동북 3성 같은 경우 외국 선교사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거나 심하면 북한 정보기관에 납치되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그런 위험한 상황 속에서 일이 틀어졌다는, 하나의 가능성이죠.

실제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나라 정보기관들이 블라디보스톡 일대에서 활동하거든요.

주오사카 총영사를 지냈던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는 "USB 같은 것을 국가정보원과의 연계로 문제삼았을 수 있고, 또 본인들도 신변 안전을 위해서 활동을 어느 정도 정보기관에 알리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평소라면 넘어갔을 수도 있는 일인데 뭔가 틀어졌다는 얘기죠.

이것만 있는 건 아니고 몇 가지 방법이 더 있다고 하는데 민감성 때문에 제가 여기서 다 말씀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앵커]
아직은 가능성의 영역이겠지만, 앞으로 한러관계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기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고요, 이 사건 자체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빠진 한러관계의 영향도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막연히 추측으로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취재를 해 보니 중국과 러시아는 탈북민 문제를 다룰 때조차도 태도가 많이 달랐었대요.

아시다시피 중국 공안에 잡히면 대부분 북송됩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우리 쪽에 비교적 협조를 많이 해 왔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이 조사받은 사례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추방 정도로 조용히 물밑에서 마무리했다고 하고요. 이번엔 뭔가 일이 틀어졌단 거죠.

외교부 당국자는 오늘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백 선교사 체포 직후부터 해당 사안을 인지했고, 러시아 정부로부터 유선과 서면을 통해 연락 받은 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간 질질 끌다가 알려주고 이런 건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해도, 전쟁 이후 한러관계가 아무리 나빠졌다지만 러시아는 '한국이 비우호국 중에서 가장 우호국이다', 이런 입장을 대사가 공개적으로 표명해 오기도 했는데 궁금증이 커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주러시아 대사관 경제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를 지냈던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은 "전에는 한러관계가 좋았으니 협조를 잘 해줬는데 더 이상 그렇게 하기가 어렵고, 북한의 눈치도 봐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앞으로 상황은 어떻게 펼쳐질까요?

[기자]
쉽게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어제(13일) 이도훈 주러시아대사가 러시아 외무부를 찾아 지난 달 우리나라를 찾기도 했던 안드레이 루덴코 차관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고요.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한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으며 영사 접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영사를 아직 만나지 못했단 뜻이 됩니다.

또 백 선교사를 블라디보스톡 지부장으로 임명한 지구촌사랑의쌀나눔재단 측도 구명 탄원서를 모아 외교부와 러시아 대사관 측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이선구 재단 이사장입니다.
"오랫동안 선교하셨던 선한 분이고 목사님이신데, 러시아에서 블라디보스톡 저희 지부장으로서 다양한 노동자들, 소외계층 분들을 포용해서 그분들에게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아프면 치료해 드리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선교하는 목사지, 목사님에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기밀을 뭘 했다 이러는 것은 오해고요. 그건 잘못된 것이고."

이 자리를 빌어 하나 말씀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평소 한국 언론보도를 매우 꼼꼼하게 지켜보고 또 이용하기도 한다네요. 대사관에선 보통 영자신문을 많이 읽긴 하지만, 저희 같은 우리말 매체들도 자세하게 모니터합니다.

국내 여론과 따로 가는 외교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을지 매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한러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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