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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순 "하노이의 교훈은 한국도 당사자 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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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노딜 5년]
"하노이 노딜 5년, 한반도 정세에 파괴적 사건…마음이 아리다"
"北 비핵화 의지 없어서 결렬? 동의 못 해…美 강경파가 걸림돌"
김정은, 영변시설 폐기 등 비핵화 의지 거듭 밝혔지만 볼턴 등이 훼방
"오히려 미국이 일관성 없었고, 北 무시하는 강대국 멘털리티 너무 강했다"
"협상 타결됐다면 완전히 다른 세상 됐을 것…5년새 北 핵능력은 더 강화"
"文 정부, 노력했지만 중재자 역할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봉착"
"한반도 당사자 되려면 전작권 필수…군사주권은 외교·안보 협상에서 근본적"

백학순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 박종민 기자백학순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 박종민 기자
백학순 김대중학술원 원장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당시 세종연구소 소장으로서 현장에 있었다. 회담 실패를 뜻하는 '하노이 노딜' 5년째를 맞는 지금 백 원장은 깊은 회한을 나타내며 "마음이 아리다"고 했다.
 
희망이 가득했던 2018년 '한반도의 봄'이 하노이에서 파국을 맞자 비핵화 회의론이 다시 득세하며 한반도 정세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협상 결렬의 원인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볼턴 회고록 등을 통해 진실의 일면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제한된 여건 속에서나마 책임 소재를 객관적으로 가려내야 한다.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대책이 나온다. 한반도 지정학의 저주를 벗어나는 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당사자로서 자율성을 갖고 북핵 해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우리 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되찾는 것이라고 백 원장은 강조했다.
 
Q: 하노이 노딜 5주년을 맞는 소회는?
 
A: 당시 하노이에서의 실패, 기만과 배신에 대한 회한이 너무 크다 보니 되돌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한반도의 평화 대전환이 가능했던,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당분간은 올 것 같지 않은, 어찌 보면 그런 마지막 기회가 실패로 끝났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리다.
 
Q: 하노이 노딜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것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A: 한반도 정세에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친 파괴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한반도 평화 협상이 재개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고, 그때는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유언 같은 말씀을 주셨다. '역사는 확신을 가지고 보되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시간이 지나면, 지도자나 국제관계는 바뀌겠지만 (한반도)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국익을 확보할 수 없다.
 
Q: 협상 실패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A: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2018년 6월) 이후 변함이 없었다. 여러 번 미국 측에게 확약했다. 북한 입장에선 '21세기 생존과 발전 전략'을 이행하기 위해 2017년 '국가 핵무력 완성'을 통해 대미 전쟁억제력을 갖게 됐다면서, 이제 '사회주의 경제발전 총집중 노선'으로 전환하며 그것을 위한 '평화적 환경 조성'을 위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비핵화를 결정했던 것이다. 여태껏 북미협상은 그 내용이 항상 미국의 핵이 아닌 북한의 핵만을 없애는 회담이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방어적'인 북한은 자신의 안보가 보장되는 협상을 원했고,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상호 '신뢰구축'을 먼저 이루고 난 후 평화체제, 비핵화 등 본격적인 합의 '이행'에 나서자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협상의 걸림돌은 미국의 대북 강경 기득권 세력이었다. 그들은 싱가포르 회담 자체도 반대했고, 싱가포르 합의 이후에는 그것의 뒤집기를 시도했고, 결국 하노이에서 뒤집기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노이에 오기 전에 북한에게 최대치의 양보를 요구해 보고('리비아식' 해결) 북한이 거부하면 협상을 중단하고 '걸어 나가기'(walk away)를 이미 결정하고 회담에 나왔으며, 하노이에서 그것을 실행했다.
 
(편집자 주) 백 원장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최소 4차례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다. 2018년 9월 6일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보낸 친서에서 미국의 상응조치를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의 불가역적 폐쇄 용의를 밝혔고, 10월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2차 방북 때는 영변 폐기와 '그 이상'(more)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김 위원장의 특사 김영철이 2019년 1월 17~18일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결과 싱가포르 합의의 단계적‧동시행동적 이행에 양측이 공감대를 이뤘다. 김 위원장은 1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에 보낸 서한에서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 이 면담 결과는 국무부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2차 북미정상회담(하노이) 공동성명안과 1월 31일 스탠포드 대학 강연의 밑그림이 됐다. 
 
그러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비건의 하노이 북미공동성명안을 "마치 북한이 만든 초안 같았다"고 비난하며 대반격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3차례 사전브리핑에서 조금이라도 북한에게 양보하는 것은 트럼프의 대통령 재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회담장에서 걸어 나가기'를 집요하게 권고했고 결국 관철시켰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도 이미 2018년 7월 1차 방북 때 '선 비핵화'만을 요구하며 싱가포르 합의 뒤집기를 시도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 박종민 기자백학순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 박종민 기자
Q: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오히려 미국이 일관성이 없었다는 얘기인가?
 
A: 미국의 협상 과정 전체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의 말과 주장, 입장에 일관성이 없었다. 싱가포르와 하노이를 비교해 보면 완전히 달랐다. 특히,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이행과정에서 미국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예컨대, 국무부와 NSC 등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주었다. 국무부 소속인 비건의 스탠포드대 강연 후인 2월 22일(하노이 회담 5일 전) 앤드류 김(전 CIA 한국미션센터장)이 CIA에서 나온 후 처음으로 미 스탠포드대에서 공개강연을 했는데, 제가 마침 그 자리에 있었고, 하노이 회담 전망을 질문했는데 예상보다 '더 생산적'일(more productive) 것이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는 2월 12일부터 볼턴이 트럼프를 상대로 3회의 특별 브리핑을 통해 뒤집기에 이미 성공한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협상에서 '원 팀'이냐 아니냐는 (상대방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차이다. 
 
Q: 하노이 노딜에 미국의 책임도 큰 것 같다. 
 
A: 미국의 책임이 매우 크다. 미국 강경파들은 북한이 영구히 폐기하겠다는 영변 핵시설이 북한 전체 핵능력의 10%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의심이 가는 다른 5개 시설까지 모두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김정은은 '현재의 북미관계의 신뢰수준'을 고려할 때, 영변핵시설 영구 폐기는 북한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양보라면서 영변의 영구적 폐기가 얼마나 의미심장한 결정인지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 매달리다시피 했다. 사실 북한이 '영변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단지 경제·통상 분야에서 '대북재제의 부분해제'를 요구한 것은 그전의 '비핵화 대 (군사·안보, 정치·외교, 경제·통상 분야 등에서의) 적대시정책 폐기' 요구에 비해 매우 큰 양보를 한 것이다. 핵협상의 역사를 아는 전문가들 입장에선 등가성 측면에서 북한에 불리한 비대칭적인 양보였다. 김정은은 '경제 살리기'를 위주로 자신의 시대를 개막하기 위해 매우 큰 위험 감수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에게 조금이라도 양보하는 것은 트럼프의 대통령 재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이미 결론을 내리고 하노이에 갔었고,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알면서 핵과 생화학 무기, 미사일 등 모든 것의 폐기를 요구하는 '리비아식' 해법을 요구했다. 보다 근본적으로 볼 때, 미국은 북한을 주고받기의 대상이자 평화공존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정책적 결단이 없었다. 미국은 힘으로 무엇이든지 성취해 낼 수 있다는 강대국 멘털리티를 갖고 있는 데다 북한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Q: 만일 하노이 회담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A: 매우 다른 세상이 됐을 것이다. 북한이 하노이에서 영변 폐기는 물론 핵실험 중단과 ICBM 엔진 폐기를 필요하면 문서로 확약하겠다고 했으니 이것들도 다 받아냈을 것이다. 하노이에서 미국이 북한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결과적으로 북한은 미국에 딱 물린 셈이 되었을 것이다. 문제해결의 향후 과정이 미국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됐을 것이다. 미국은 거기서부터 시간을 갖고 핵문제, 미사일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행과정에서 항상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쯤이면 6.25전쟁 종전, 평화체제 수립, 비핵화, 북미관계정상화, 경제협력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졌을 것이다. 거의 지난 25년 동안 북한의 비핵화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대북정책은 하노이 실패와 더불어 완벽하게 실패했다.
 
(편집자 주)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그 몇 달 뒤인 2019년 9월 볼턴이 하노이에서 '리비아식 해법'을 밀어붙임으로써 훼방꾼 역할을 했다고 비난하며 전격 해임했다. 반대로 북한의 김여정은 이듬해 7월 담화에서 하노이 회담 때 위험천만한 '일대 모험'을 했다며 다시는 그런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협상이 타결됐더라면 미국은 제재완화 시늉만 하면서 북한 핵 중추를 마비시켜 놓고 전체 핵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회담 결렬 직후 북한의 최선희가 "(미국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나 같다"고 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 박종민 기자백학순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 박종민 기자
Q: 당시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 역할은 어떻게 평가하나?
 

A: 한반도 평화대전환을 위해 진정성 있게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다고 본다. 처음에는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운전자 역할을 천명했고, 또 북미 양국의 부탁으로 그러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북미 양자회담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우리가 배제되면서 중재자로 밀려났다. 우리의 운명을 가름하는 '전쟁과 평화'의 협상에서 우리가 배제된 상태에서 북미양국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예컨대, 싱가포르에서 트럼프가 우리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북한에게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약속한 것은 당시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다. 저는 문재인 정부가 구조적으로 우리가 협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대책으로서 '우리가 참여하지 않은 회담에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 등 우리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논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북미 양국에게 반복적으로 강하게 천명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2018~2019년 당시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제가 주장했던 생각이 난다.


Q: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한반도 문제'의 해결 협상에서 핵심 내용은 어떻게 6.25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할 것인가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이다. 그러한 문제를 협상하는 싱가포르, 하노이에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배제된 것은 기본적으로 북미 양국이 우리 군대에 대한 전작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우리를 참여시키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군사주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외교·안보 협상에서 너무나도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가 우리 군에 대한 전작권을 환수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언제든지 그러한 참담한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향후 언젠가 한반도 평화 대전환을 위한 회담에 대비하여 지금이라도 조속히 이 전작권 환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핵심 국익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외교를 하느냐는 문제는 결국 자주성과 국제성을 어떻게 스마트하게 조합하여 핵심 문제를 해결하느냐는 전략적 능력의 문제이다. 우리는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우리의 주인의식을 확실히 함과 동시에 미국 등 국제사회의 협력의 중요성과 그것을 얻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방향으로 명확한 비전, 이익, 목표를 갖고 전략적 능력을 갖춘 '준비된' 지도자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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