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주요 사건 수사의 적정성과 적법성을 심의하는 기구인 수사자문단을 폐지한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외부 의견을 듣겠다며 지난 2021년 6월 도입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허익범(사법연수원 13기) 전 특별검사가 지난해 6월 자문단장으로 위촉됐지만, 반 년 만에 기구 자체가 없어지게 됐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최근 '사건사무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규칙 제42조를 보면 "공수처는 수사, 공소의 제기와 유지 등에 대해 적정을 기하고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하여 수사심의위원회, 공소심의위원회, 수사자문단 등을 설치할 수 있다"고 나온다. 공수처는 해당 조항에서 '수사자문단'을 삭제하겠다며 폐지 방침을 밝혔다.
공수처 관계자는 "수사심의위와 수사자문단을 통폐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수사자문단은 공수처 수사에 관한 외부 전문가 의견을 듣고 자문을 구하기 위해 설치됐다. 그간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 수사의 적정성과 적법성, 구속영장 청구 등 강제수사 필요성, 인권친화적 수사와 과학 수사에 필요한 자문 사항을 심의해 왔다.
자문단은 단장을 포함해 15명 안팎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단장 임기는 2년으로 두 차례 연임할 수 있다. 박윤해(연수원 22기) 전 대구지검장이 첫 단장으로 임기를 마쳤고, 지난해 6월 허 전 특검이 2대 단장으로 위촉됐다. 허 전 특검은 2018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맡아 3년여의 수사 끝에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유죄 확정 판결을 끌어냈다.
허 전 특검은 자문단장 자리를 여러 번 고사했지만, 공수처 측의 간곡한 요청에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주변에 "가장 정치적인 사건을 비정치적으로 수사하는 것이 공수처의 역할"이라며 "공수처가 제 역할을 하도록 힘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반년 만에 자문단이 사라지는 것을 두고서도 "경험과 노하우, 지식 등 많은 도움을 주려는 의욕이 있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작더라도 가시적인 수사 성과를 내야 수사 자문의 의미가 있을텐데 그마저 없으니 자문단의 존재 가치, 필요가 없어보이는 것 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해 8월 '2022년도 결산 예비심사검토보고서'에서 두 기구(수사심의위와 자문단)가 "위원 자격, 구성, 회의 절차, 비공개 여부, 수당 지급 등 유사한 부분이 많은데 별도로 구성해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며 "회의 개최 실적이 저조해 통합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공수처는 지난해 수사심의위와 자문단을 15회씩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실제로는 각 3회에 그쳤다.
공수처 측은 국회의 이런 지적을 반영해 수사심의위와 자문단 통폐합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자문단장과 위원은 임명직이 아니라 위촉직이라 임기 문제 등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문단 위원들을 상대로 통폐합 과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