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불멸의 투귀' 옥한돌 작가와 노컷뉴스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때 웹툰 산업이 탄력을 받으면서 제작 스튜디오가 늘고 작가들의 연재 작품도 급증하면서 현재 과잉 공급 상태라고 봐요. 독자들도 다 모르는 엄청난 양의 작품들이 쏟아지면서 작가들끼리도 과잉 경쟁에 내몰려 힘들어하고 있어요. 작품이 주목받지 못하면 그 경쟁에서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거든요."
카카오웹툰에서 '불멸의 투귀'를 연재하고 있는 옥한돌 작가는 웹툰 생태계의 작품 과잉 공급으로 지속해서 성장이 필요한 작가들의 환경이 오히려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디지털 콘텐츠 소비가 급증하면서 웹툰 역시 날개를 달았다. 이 당시 중소 제작사와 플랫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몸집을 불려나가며 이른바 양산형 웹툰을 쏟아내던 상황이었다. 결국 생성형 AI(인공지능) 논란까지 터졌다. 작가들 사이에서는 주요 플랫폼들이 특정 작품만 밀어주거나 프로모션을 선택적으로 지원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옥 작가는 "플랫폼들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렇다고 강제적 수단을 사용하면 비난 받을 수 있기에 조심스럽죠. 근본적인 방법은 마감에 휘둘리는 작가들에게 일반 근로자들처럼 불이익이 없는 법정휴가 같은 제도를 정착시켜 작품 소비를 순환시키고 정기 휴재를 통해 마감에 쫓겨 불완전한 작품을 내는 악순환을 끊는 선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양적 세계관과 강렬한 액션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판타지 회귀물 만화 웹툰 '불멸의 귀투' 옥한돌 작가를 노컷뉴스 [만화인]이 만났다.
옥한돌 작가의 웹툰 '불멸의 투귀' 갈무리옥한돌 작가 "웹툰 업계, 부풀린 몸집 감당하기 어려워져"
▶2014년 '포갓레인저', 2016년 '싸움귀'에 이어 연재 중인 '불멸의 투귀'는 동양적 세계관에 기반한 권선징악의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액션이 돋보이는 스토리다. 어떻게 구상했나?
= 한국적 정서를 가진 판타지물을 하고 싶었어요. 불교신자는 아닌데, 한국적인 소재를 찾다 보니 도교와 불교가 연결되어 있고 탱화에 등장하거나 사찰 입구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에 존재하는 수미산의 네 방위를 수호하는 천부의 존재 사천왕(四天王)의 강렬한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어요. 소재를 연구하다 보니 단순히 믿음보다 자아성찰과 깨달음, 스스로를 다스리는 과정도 흥미로웠죠. 세계를 지배하려는 신선들과 그를 막으려는 사방신과 그 대행자들을 다룬 '포갓레인저'부터 비슷한 세계관이 연결되는 작품들입니다.
▶만화계에 입문한 계기는?= 고향이 경남 의령인데 시내에 나가려면 하루에 몇 차례 운행하지 않는 버스를 타고 1시간은 걸릴 정도로 깡촌에 살았어요. 친구들이 없어 혼자서 산 타고 다니며 놀았는데, 가끔 사촌 형들이 다 보고 보내준 만화를 보는 것이 낙이었어요. 만화가라는 직업을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알았고, 그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만화라는 걸 알았죠. 시골이라 문화적으로나 정보 면에서 부족하다 보니 성인이 될 때까지 만화가가 되려면 문하생이 되어야 하는 줄만 알고 방법은 몰랐죠. 2009년 즈음 그림을 좀 더 배우고 싶어 뒤늦게 지역 미술학원에 다녔는데 학원장님이 만화가가 되려면 여기 있지 말고 서울 쪽으로 가서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라고 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만화와 웹툰이라는 걸 접하게 됐죠.
중학교 때까지는 부모님이 만화 보는 것을 걱정하셨는데,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서는 별 말씀이 없었어요. 그 때 컴퓨터 학원 다니는 게 유행이었는데, 덕분에 컴퓨터나 포토샵, 소프트웨어 툴 등을 쉽게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웹툰에 쉽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웹툰 '불멸의 투귀' 옥한돌 작가와 노컷뉴스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첫 데뷔가 2014년이다. 2013년 대학만화 최강자전에 8강까지 진출한 뒤, 레진코믹스를 통해 데뷔를 했지만 3년 가까이 장기 휴재를 했다. 이유가 있었나?= 대학만화 최강자전에서 반응이 괜찮아서 네이버 베스트도전에도 연재를 시작했는데, 레진코믹스에서 연재 제의가 왔어요. 2014년 5월 18일부터 '포갓레인저' 연재를 시작했는데, 6개월즈음 지나자 갑자기 몸에 이상이 왔어요.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그림을 그리니 혈액순환도 안 좋았던 것 같고 근육도 빠지면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어요. 2부까지 완결하고 휴재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계약갱신 기간이 다가온 거죠. 딱히 마찰은 없었는데 계약 내용이 다분히 일방적이어서 문제가 있다 항의를 했는데,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계약 문제에 항의한 작가들은 프로모션을 모두 뺐더라구요. 안타까운 부분이죠.
▶계약이 불공정했던 것인가?= 사실 계약 내용이 불공정했다기보다 작가들을 모아놓고 계약 관련 설명회라도 해달라는 요구를 했어요. 어떤 부분이 계약에 반영되고 수익분배는 어떤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 등을 설명해주면 납득할 수 있잖아요. 플랫폼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개별 계약 형태로 진행하려 했던거죠. 인기 있는 작가에게는 다른 조건의 계약서를 주는 등 기준이라는 게 없었죠. 그래서 저 나름대로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계약기간 만료를 기다리려고 장기 휴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후에 다른 플랫폼에 투고해서 3부·4부까지 '포갓레인저'를 완결했죠. 그땐 정말 열심히 그렸어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웹툰 업계의 일부 잘못된 관행에 저항을 한 것 아닌가?= 그때 작가들이 그 문제로 많이 모였죠. 그래서 함께 정보도 공유하고 함께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려고 했는데, 작가들에 대한 회유가 있었는지 한 명씩, 두 명씩 계속 빠져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남은 작가들 이야기해 보니까 서로 업체 프로모션에서 배제된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죠. 그래서 여기 플랫폼과 작업을 지속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계약 기간이 끝날 즈음 제 작품을 들고 투고를 했고, 카카오웹툰에서 마무리 연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보니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것 같다. 집사 생활은 어떤가?= 함께 지낸 지 10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친구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데려왔는데, 얼마 전에 한 마리가 죽고 두 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어요. 시골에서 살았다 보니까 애완동물의 개념이 없었어요. 가축이었던 거죠. 그런데 함께 살다 보니까 왜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제 생활에 의지가 되어주죠. 특히 코로나19 때는 사람들을 못 만나니까 뭔가 온기가 필요하잖아요. 제가 낯을 좀 가리는데, 청강문화산업대에 강의를 몇 년 나갔었을 때도 연재 마감에 쫓기고 하다 보니 구성원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했어요. 돌이켜보면 아쉽죠. 몇 년 전부터는 더 친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가들은 대부분 혼자서 일하잖아요. 사람은 온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올해 웹툰 시장 이용자 수가 감소하는 등 다소 주춤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떻게 보나?= 지금 웹툰 시장은 과부하되어 있다고 봐요. 코로나19 팬데믹 때 웹툰을 보는 독자들이 증가하면서 작품들이 쏟아졌어요. 그렇다 보니 팬데믹 이후에 마구 부풀린 몸집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고 봐요. 우후죽순 생겨났던 크고 작은 회사들 중에 문닫는 곳들도 부쩍 많아졌고, 작품 수가 많다보니 작가들 사이에서는 소위 인기 있는 특정 작품만 밀어준다는 말이 나올 정도에요. 물론 플랫폼들이 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는 아니겠죠. 그런 상황이다 보니 독자들에게 다양한 작품들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네이버나 카카오에서 인공지능(AI)을 이용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내놓는 이유겠죠.
웹툰 '불멸의 투귀' 옥한돌 작가와 노컷뉴스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이런 상황에 작가들 입장에서도 여러 고민 점이 있을 것 같다.= 작가들 입장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작품에도 골고루 프로모션을 진행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잘 노출되고 좋은 피드백을 받고 안정적인 수익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똑같죠. 무엇보다 마감에 작품 구상에 매일 쫓기는 작가들에게 충분한 휴식이 보장됐으면 합니다. 대형 플랫폼의 경우는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편인데, 휴재를 강제하거나 말리지는 않아요.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신 쉬면 유료 회차가 하나 없어진다거나 하면서 수익에 영향을 주는 페널티 같은 게 있는거죠. 사실 쉬지 말라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직장인들은 법정 유급 휴가를 사용할 수 있잖아요. 작가들 입장에서는 건강 문제도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분업화가 되는 웹툰 스튜디오들의 작품과 개인 작가들이 경쟁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독자분들에게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패널티 없는 안정적인 쉼 제도, 휴가제가 도입됐으면 합니다.
아울러 휴재하거나 작품에서 상식 이상의 공격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작가들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심한 상황들도 있거든요. 플랫폼에서 작가들의 정신적인 고통을 덜 받게 적극 나서줬으면 합니다. 인격살인 수준도 있는데 이것을 작품 마감하기 바쁜 작가들이 일일이 캡처하고 정리해서 수사기관에 제출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거든요. 어떤 작가분들은 부대 비용을 낼 테니 플랫랫폼에서 대리해 달라고 하소연 할 정돕니다. 웹툰 산업이 K-콘텐츠를 대표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작가 매니지먼트 측면에서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죠. 개선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품들이 많이 쏟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는 이야기인데?= 최근에는 웹툰 스튜디오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작가분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분업화가 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 입장에서는 작화에만 신경 쓰면 되거든요. 또, 협업이라는 특징 때문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생기죠. 반면 개인 작가 입장에서는 스토리 구상은 물론 일정 기간 연재물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해요. 마감에 쫓기니 그럴 틈이 부족하다 보면 작업 방식이 주먹구구식이 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작가로서도 불만족스럽고 힘든거죠. 일부 작가분들이 자신의 수익을 쪼개서 서브 작가나 스토리 자문을 구하는 이유도 비슷해요. 웹툰이 과잉인 시대에서 작가들은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옥 작가는 작품에 대한 구상을 어떻게 마련하나?= 팟캐스트나 유튜브에서 인문학 콘텐츠를 많이 접하는 편이에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그 중심에 제가 있다는 거에요. 지난 시간을 반추하면서 뭘 잘 못하고 뭘 놓쳤나 깨달으면서 스토리를 구상해요. 어떻게 보면 불교적 사상과 맞닿아 있는 방식으로 작품을 어떻게 끌어갈까 풀어가는 중입니다.
▶현재 카카오웹툰에서 '불멸의 투귀'를 연재하고 있는데, 작품에서 주려는 철학적 메시지는?= 명징한 선과 악의 구도 외에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 있는데요, '불멸의 투귀'는 전작인 '싸움귀'와 비슷한 세계관입니다. 아수라는 싸움만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싸움에 집착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사실 외로워요. 상호작용할 상대가 없습니다. 아귀라는 귀신이 지옥에서 나와 물어 뜯기만 하죠. 아수라가 세상에 나와보니까 사람도 있고 상대가 있으니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싸움으로 그것을 표현합니다. 단순히 공격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있다는 것, 타인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자기 행동이 나오고 의식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극단적 상호작용이긴 하지만 아수라는 싸움을 하지 않으면 자기 존재가 부정돼요. 무존재가 되는 거죠. 즉,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어요. 앞으로는 기억과 사랑이라는 부분까지 확장해가고자 합니다.
웹툰 '불멸의 투귀' 옥한돌 작가와 노컷뉴스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차기작에 대한 구상이 있나?
= 아마도 학원 회귀물이 될 것 같은데, 비슷한 세계관을 이어갈 수 있는 소재로 연구 중이에요. 니체의 사상 중 '영혼회귀'라는 것이 있는데, 동일한 것이 동일한 모습으로 영원히 반복해서 되돌아온다는 사상이에요. 이 것을 모티브로 현대물로 학교라는 공간에서 버무려 볼 생각입니다.
▶웹툰 작가들 역시 창작과 마감, 생존이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을 텐데, 10년 차 작가로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생각·마음·몸 3가지 근육을 키웠으면 합니다. 데뷔 초기에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진 이후로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기 시작했어요. 몸 근육을 키워야 제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느꼈죠. 점진적 과부하는 불편함을 이겨내는 것과 같아요. 생각도 과잉이 되고 싫고 불편한 이야기를 피하지 않고 생각하고 곱씹는 것도 과부하라고 생각해요. 운동하시는 분들이 이야기하는 게 있어요. '운동할 때 편하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면서 스트레스가 없으면 그것도 성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림 그리는 것도 너무 쉽고 어렵지 않다면 역시 성장이 아닌 거죠. 멈춘 거죠. 자신이 하는 일에서 점진적 과부하를 느끼고 점점 더 그 무게를 늘려 나간다면 분명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옥한돌 작가의 웹툰 '불멸의 투귀' 캐릭터와 싸인. 옥한돌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