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동화면세점 인근 세종대로에서 대한의사협회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전국의사총궐기대회에서 의대생들이 의대 정원 증원을 규탄하며 퍼포먼스하고 있다. 연합뉴스시베리아 한파 속에서 삭발을 하고 의사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도 벌였지만, 정작 싸늘한 건 의협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해 대한의사협회는 17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첫 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이자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최소 11년에서 14년 이후 배출될 의사증원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14만 의사들은 유감과 분노의 뜻을 강력하게 표명한다"고 밝혔다.
만일 정부가 협의 없이 확대 정책을 강행할 경우 강력한 '최후의 수단'도 고려하겠다며 파업 가능성도 언급했다.
연대사에 나선 의사 단체들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의사를 만나기 어려우냐"며 "인구감소로 대한민국이 곧 소멸한다는 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하는 정부가 참으로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홍순원 한국여자의사회 차기 회장도 "의사는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한다고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기초 교육부터 임상까지 인프라가 확충되지 않으면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집회에 참석한 조선대 의대생 5명은 무대에 올라 의사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과 길광채 광주 서구의사회장의 릴레이 삭발식도 이어졌다.
'의대증원X'라고 써진 검은색 마스크를 쓴 참석자들은 "의대증원 졸속확대 의료체계 붕괴된다"는 구호를 외치며 연단에 선 집행부에게 연신 환호를 보냈다.
주최측 추산 참석자 8천여명은 총궐기 대회 후 대한문부터 서울역까지 1차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이필수 회장은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하며 대통령에게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재고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정부는 필수·지역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오는 2025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전국 의과대학교를 대항을 권역별 간담회를 진행중이며, 의대별로 제출된 증원 수요조사가 타당한 지 검증하고 있다.
의협은 정부가 의대증원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건 지난 2020년 9.4 의정합의를 파기한 것 이라며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재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석해 의대정원 확대와 수가 개선 등 현안 논의와 별개로 14만 회원을 대상으로 17일까지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하는 등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이는 투 트랙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안'에서 '밖'에서 입지 좁아진 의협 파업 투표 결과도 '비공개'
17일 오전 서울 국회 앞에서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이 의사 집단 진료거부 관련 여론 조사 및 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하지만 안팎의 싸늘한 '여론'은 의협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요소다.
먼저 최대집 전 의협회장을 둘러싼 내홍이다. 지난 3일 최 전 회장은 의협 범대위 투쟁위원장으로 복귀를 알렸다. 2020년 당시 의료계 총파업을 이끌었던 그는 "이번 투쟁은 범사회단체와 함께 더 큰 파급력을 보여줄 것"이라며 투쟁 동력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이필수 회장과 함께 삭발식까지 진행한 그는 취임 일주일만에 갑자기 사퇴했다.
의협 내부에서 최 전 회장을 투쟁위원장으로 내세운 데 대한 우려가 큰 점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 전 회장이 '장담'한 것과 달리 총파업 투쟁 동력이 크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의협은 17일 마감된 총파업 돌입 찬반 투표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투표율이 저조하거나 압도적 찬성이 나오지 않을 경우 대정부 투쟁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비공개를 선택했다는 평가다.
의협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싸늘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89.3%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정 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1천명 이상이 47.4%였다. 28.7%는 2천명 이상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100명 이상 1천명 미만으로 늘려야 한다는 응답은 32.7%였으며 현행 유지는 16.0%였다.
또한 응답자의 87.3%가 의대 정원 확대 결정권이 일반 국민(51.5%)과 보건복지부(35.8%)에 있다고 답했다. 의협에 있다는 응답은 10.5%였다(모름·무응답 2.1%).
의사 총파업(집단진료거부)에 대해서는 85.6%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금 의대 정원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생색내기 수준의 '찔금 확대'로는 필수·지역·공공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다"며 "의대 정원은 최소 1천명 이상 대폭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협에 "몽니 부리기를 중단해야 한다"며 "절대다수 국민 요구를 수용해 의대 정원 확대 방침으로 빨리 선회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편 정부는 17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비상대응반 회의를 열고 의협 총궐기 등 보건의료계 상황을 확인하고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가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열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하는 총파업을 언급한 점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의료계‧수요자‧환자단체‧전문가 등과 의대정원 확대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세로 끝까지 대화할 것"이라면서도 "의협의 불법적인 집단진료거부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