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만분의 일초' 체험 꿈꾼 김성환 감독의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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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분의 일초' 김성환 감독

영화 '만분의 일초' 김성환 감독.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만분의 일초' 김성환 감독.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스포일러 주의
 
'만분'(滿分). 영화의 제목인 '만분의 일초' 속 '만분'은 '만분'(萬分·만으로 나눔)이 아니라 '만분'(滿分·수행으로 부처의 지위에 이르는 일)이다. 영화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복잡다단한 내면을 가진 재우(주종혁)가 숨막히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낸다. 그 짧은 순간이 바로 '만분(滿分)의 일초(一秒)'다.
 
0%의 확률을 깨뜨릴 0.0001%, 그 찰나를 향해 검을 겨누는 '검도'라는 무예이자 스포츠를 소재로 한 '만분의 일초'는 스포츠 영화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중심에 단단히 자리 잡은 건 '심리 드라마'다. 마지막에 재우가 맞이하게 되는 찰나의 순간을 향하는 영화는 긴장감과 묵직함으로 올곧게 나아간다.
 
그러나 김성환 감독은 보통의 심리 드라마와 달리 영화를 보는 동안은 관객들이 오롯이 '체험'하길 바랐다.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보다는 오히려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낸 채 영화를 체험하고, 영화가 끝난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찾아올 감정을 만나길 바랐다. 그가 어떻게 해서 '만분의 일초'를 시작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만분의 일초' 시작이 된 '오른손'

 
'만분의 일초'는 검도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재우가 태수(문진승)를 만나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과정을 포착한다. 영화 속 검도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재우의 내면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김성환 감독은 오래전부터 '검도'라는 소재에 매력을 느꼈다. 기합 소리 등은 물론 죽도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칼로 대화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는 "재즈 뮤지션들이 솔로를 주고받듯이 말로 못하는 영역을 칼로 대화하고 공유한다는 게 되게 영화적이었다"며 "'검도'가 그릇이라면 여기에 담을 만한 이야기가 뭐가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릇과 이야기, 그리고 좋은 엔딩을 찾던 김 감독에게 '오른손 엔딩'은 찰나의 발견처럼 다가왔다. '만분의 일초'처럼 말이다. 그는 "동생과 검도가 왜 좋은지 이야기하다가 오른손이 웅크리고 있다가, 마치 꽃봉오리가 오랫동안 계절을 버티다가 개화하듯이 펼쳐지는 이미지가 무심결에 나왔다"며 "벼락 맞은 것처럼 검도에 담을 이야기를 찾은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운명처럼 다가온 영화의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도 좋았다. 그는 "수학 공식처럼 되게 정갈하고 단순한데,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며 "만분의 일초처럼 이성과 감성이 개입 못하는 짧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이기에 사고가 됐건 기적이 됐건 의지 이전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울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반대로 웅크린 내용을 역추적해서 지금의 '만분의 일초'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이야기를 만든 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영화가 어떻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는 '감상'하는 영화가 아니라 '체험'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또한 재우의 이야기가 '성장담'이 아닌 '도약담'이 되길 원했다.
 
김 감독은 "늘 그런 영화, 그러니까 '그래비티' '매드맥스' '포드 V 페라리' 같은 영화를 좋아했고, 나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영화를 다 보고 재우의 삶을 이해했다는 감상평을 남기는 게 아니라, 다 보고 난 뒤 마지막에 가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개화되고 자유로운 느낌을 받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극장에 와서 체험하시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만분의 일초'는 김 감독이 매력을 느꼈던 검도의 특성처럼 대사보다는 눈빛과 표정, 몸짓 등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는 이러한 방식을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사랑해'를 말로 뱉으면 끝나는데, 떨어진 물건을 줍기 위해 머리를 숙일 때 모서리를 감싸준다는 건 되게 시적이잖아요. 영화는 어떻게 보면 산문보다 운문에 가까워요. 은유와 이미지, 구도, 사운드, 음악 등 모든 장치가 일상에서 말하는 언어잖아요. 한글은 다 기호예요. 전 음악을 들으면 저절로 그림이 펼쳐지듯이 기호의 세계를 넘어서는 영역에 가닿고 싶죠. 그래서 다양한 장치를 최대한 많이 활용하려 했어요."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재우와 태수를 만난 순간

 
영화는 대사보다 다른 방식으로 복잡한 내면과 감정을 표현해야 했기에 배우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자신이 가진 실력을 100% 발휘할 수 없을 만큼, 어린 시절 인생을 뒤흔든 사건으로 인해 자신을 가둬버린 인물 재우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권모술수'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주종혁이 연기했다.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검도를 시작해 국가대표 유력 후보 자리까지 올라온 능력자이지만, 재우를 만난 후 잊고 살았던 과거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태수는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달이 뜨는 강' '모범가족' 등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문진승이 맡았다.
 
두 배우가 각각 재우와 태수에 적역이었는지 묻자 김 감독은, 그 이유를 답하기 전에 캐스팅 비하인드 한 가지를 들려줬다. 눈빛이 중요한 영화인 만큼 머릿속으로 그린 재우와 태수의 눈빛과 분위기를 완성해 줄 배우가 필요했다. 결국 자신이 직접 그린 몽타주가 결정적인 힌트가 돼 주종혁과 문진승을 찾을 수 있었다.
 
김성환 감독이 직접 그린 영화 '만분의 일초' 속 재우 몽타주. 김성환 감독 제공김성환 감독이 직접 그린 영화 '만분의 일초' 속 재우 몽타주. 김성환 감독 제공어렵사리 찾게 된 주종혁과 문진승은 감독이 그렸던 이미지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재우와 태수를 완성해 줬다.
 
그는 주종혁에 관해 "원하던 이미지와 매우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그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확인하니 주인공 '김재우'임을 확신하게 됐다"며 "검도 호면의 철망 사이로 보이는 눈만으로도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배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문진승에 관해서도 "재우가 불 같은 마음을 숨기고 얼음 같은 포커페이스를 연기해야만 했다면 황태수는 얼음 같은 성격을 지녔음에도 재우에게만은 따뜻한 친절을 보이는 구도를 생각했었다"며 "문진승 배우는 존재감 가득한 눈빛과 차분한 카리스마가 공존해 태수 역할에 안성맞춤이었다"고 극찬했다.

영화 '만분의 일초' 김성환 감독.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만분의 일초' 김성환 감독.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순간의 체험이 따뜻함이 됐으면 한다는 목표

 
'만분의 일초'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한 영화다. 그런 만큼 감독에게도 영화의 엔딩은 소중하고 애정이 가는 장면이다. 내내 힘이 들어간 채 제대로 펴지 못했던 재우의 오른손은 마지막에 이르러 감독의 말마따나 개화하듯이 펼쳐진다. 그 순간을 두고 김 감독은 "절대 오른손을 놓는다는 걸 생각해 보지 않았던 재우가 승부의 가장 치열한 순간 마치 재채기처럼 손을 놓는다"고 표현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쉽사리 놓을 수 없었던 오른손을 놓음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작은 틈을 내고, 승리까지 거머쥘 수 있었던 건 결국 재우가 그 순간을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순간이 재채기처럼 우연처럼 다가왔고, 재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힘을 빼고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모든 것을 얻고 받아들인 것이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눈 오는 장면을 선택한 것도 재우가 오른손을 놓게 됐다는 게 핵심이었어요. 거기까지 하고 났을 때 재우가 너무 안쓰러웠거든요. 그래도 한 번쯤은 아버지가 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꿈에서도 늘 우는 아버지만 나오는데 만져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처음 장면에서 비가 오는데, 그걸 치환해서 눈으로 했어요. 재우에게 닿을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렇기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뻗은 재우의 손 위로 눈 한 송이가 살포시 내려앉는 장면에 공을 들였다. 재우의 성장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 앞을 가로막은 커다란 트라우마를 넘어 도약했기에 '수고했다'고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는 "정말 재우처럼 비극을 겪은 사람도 마지막에는 밝아지고 차원을 초월하는 순간을 전하고 싶었다. 일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부조리와 이해 안 되는 답답함을 겪나"라며 "영화 제목이 '만분의 일초'인데 만분의 일초, 그 한순간 '후련함'이라는 영화적 체험이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김 감독이 '만분의 일초' 이후에도 만들어 가고 싶은 영화 역시 이러한 영화다. 그는 "보고 나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정화되고 후련해지고, 잠깐 낯선 자유가 느껴지는 그런 영화로 가닿았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 같다"며 "내가 내 감정의 주인이 되는 순간,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거리를 둘 수 있는 선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게 목표"라고 밝혔다.
 
"'매트릭스'는 어려운 이야기를 너무나도 쉽고 재밌게 만들었기에 위대한 거 같아요. 뉴턴이 복잡한 자연의 물리법칙을 'F=ma'(힘=질량×가속도/뉴턴의 두 번째 운동법칙을 나타내는 공식으로써 가속도의 법칙이라고도 불린다)로 정리한 것처럼 그런 단순한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어떤 영화가 되든 체험할 수 있고, 그 체험 후 밝아질 수 있는 영화요. 생각 많고 고통스러운 일상이더라도 제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는 잠시 숨을 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정말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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