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오는 6일부터 24년 상반기(24년 6월말)까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에 대한 공매도 전면 금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제공금융당국이 6일부터 내년 6월까지 공매도를 금지하고 전면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최근 글로벌 IB에서 관행화된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되면서 제도 개선 목소리가 정치권과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빗발치자 금융당국이 조치에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공언한 제도 개선의 성과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당국,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금지…"韓 자본시장 중장기적인 발전 위해"
연합뉴스금융위원회는 5일 임시금융위원회를 열고 오는 6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및 코넥스시장 상장 주권 등 국내 전체 증시에 대해 공매도를 금지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다만 시장조성자‧유동성공급자 등에 대해서는 시장 안정을 훼손할 염려가 없다고 보고 예외적으로 차입공매도를 허용키로 했다.
기관투자자들의 '관행적인 불법행위'가 대한민국의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강조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매도 제도 개선이) 금융당국의 법적 의무이자 대한민국의 자본시장을 중장기적으로 발전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공매도 금지 기간 시장 전문가 및 유관기관과 협의를 거쳐 전향적인 공매도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 조속히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그간 대주 상환기간 연장, 담보비율 인하 등의 제도개선 노력에 따라 대차와 대주 서비스 간 차입조건의 차이는 상당히 해소됐으나, 여전히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개인-기관 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고 봤다. 따라서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을 검토한다.
무차입 공매도 방지를 위한 대안도 강구한다. 최근 적발 사례를 통해 드러난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불법 공매도 실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시장전문가 및 이해관계자들로부터 폭 넓은 의견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거칠 계획이다. 글로벌 IB에 대한 전수조사와 적극적인 형사고발을 통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융감독원은 6일 20여 명의 인력으로 공매도 특별조사단을 출범할 예정"이라면서 "현재에도 일부 글로벌 IB에 대해서는 조사를 진행 중이며 특별조사단에서는 공매도 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약 10여 개의 글로벌 IB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금융당국이 민심을 받아들인데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수십년동안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주가조작 등 후진적 요소가 많았던 점 등 공매도 금지를 위한 충분한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조치가 나온 것으로 본다. 금지한데서 그치지 않고 금지 기간 안에 제대로 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개인투자자들이 불법 공매도 등으로 주식시장 자체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시적으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고 제도적 개선을 모색하는 것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3년만에 한시적 공매도 금지 '초강수'…배경은?
공매도는 주가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 판 뒤 가격이 내려가면 싼 값에 사들여 빌린 주식을 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남기는 투자 기법이다.
앞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8개월, 2009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3개월, 2020년 코로나19 당시 6개월동안 공매도 금지 조치가 단행됐다. 다만 금융당국은 2021년 5월 3일부터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지수 구성 종목에만 공매도를 허용하도록 점차 완화했다. 이번 전면 금지 조치로 사실상 전면 재개는 4년 이상 밀리게 됐다.
위급한 금융위기 상황에서 시행되던 공매도 금지 카드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최근 글로벌IB에서 관행화된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된 것을 계기로 근본적인 제도 개선 목소리가 정치권과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빗발친데 따른 것이다.
그간 당국은 공매도 전면 재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우리나라 공매도 규제가 해외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기 위해선 공매도 중지가 아닌 전면 재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국 대규모 불법 공매도 사건 발생을 계기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불법 공매도 사건은 그간 공매도가 외국인 및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 사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5만명 이상의 개인투자자들이 국회 청원을 통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등 분노한 '개미'들의 목소리도 힘을 실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총선을 앞두고 전면금지 드라이브를 걸며 이같은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당국도 최근 입장에 변화를 보였다. 앞서 지난달 27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 당시 공매도 일시 전면중단이 필요하다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원점에서 필요한 모든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이번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오는 6일부터 24년 상반기(24년 6월말)까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에 대한 공매도 전면 금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제공.증권가, 전문가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제도개선 성과에 달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한국 증시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는 외국인의 이탈을 부르는 등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찬성하지만 공매도의 긍정적인 기능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내년 상반기까지 전면 금지하는 안이 반드시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라며 정부의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가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과 역행하는 조치라는 우려도 나온다. MSCI가 지난 6월 발표한 2023년 연례 시장 분류 결과에서 한국 증시는 18개 항목 중 6개 항목에서 '개선 필요' 평가를 받으며 선진 지수 편입이 최종 불발됐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공매도도 외국인 비중이 높은 매매 방식 중 하나인데 외국인은 양방향으로 자유로운 거래에 가중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며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려면 자유로운 매매 관련 조건이 까다로운데 외국인 참여도를 높이는 쪽과는 거리가 있고 외국인 수급이 들어오는 시기가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가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이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김 위원장은 "개인 투자자들이 요청하는 대로 (공매도 관련 제도 개선을) 다 해드렸다"고 말했다. 공매도 담보 비율과 만기 등으로 개인 투자자들이 기관과 외국인보다 불리하다는 지적에 김 위원장은 "국제적으로 (세 투자 주체를 동일하게) 하는 곳은 없고 현실적으로 똑같이 하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그랬던 김 위원장이 한 달만에 나서 공매도 전격 금지를 발표한 것은 결국 총선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압박때문이란 지적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공매도 한시적 금지는 다른 나라의 사례에 비춰봤을때도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6개월 정도 금지한다면 납득할만한 이유가 더 필요하다. 제도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멈출 수 밖에 없다는 타당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제도개선'과 '공매도 금지'가 함께 가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는 예측 가능하고 연속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제도가 갑자기 바뀌고 단절되면 충격이 될 수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한국 시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시장의 신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