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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허위신고로 용역비 받아가는데…한전 '나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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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감리업체들, '현장 상주 의무' 책임감리원 당사자도 모르게 용역 배치 허위신고
한국전기기술인협회 "배치신고와 다르면 계약 위반…명의도용 땐 형사고발 대상" 지적
전수점검에도 '허위신고' 잡아내지 못한 한전 "감리원 현장보고, 실시간 확인은 어려워"

연합뉴스연합뉴스
한국전력공사가 배전공사 감리 용역을 맡은 업체들을 허술히 관리 감독한 바람에 일부 업체들이 허위로 감리원 배치신고를 올리고 용역비를 가로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전공사'는 전주(전봇대)나 각종 전선·지지물 등 배전설비를 다루는 공사다. 한전은 배전공사에 연간 2조 5천억 원 이상을 발주하는데, 이 배전공사를 감리하는 용역비로만 연간 2천억 원을 쓴다. 문제는 일부 감리업체들이 신고한 것보다 상주감리원을 적게 배치하고 용역비를 가로챈다는 점이다.


당사자도 모르는 용역?…한전 신고일수보다 '100여 일 적게' 감리원 배치하는 업체들

민간 감리업체 소속 감리원 A씨는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정산하다 황당한 사실을 발견했다. 회사가 A씨도 모르게 한전에서 발주받은 용역에 A씨의 이름을 현장 상주 책임감리원으로 올리거나, A씨가 일하지 않은 날도 일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한전에 용역비를 청구한 정황을 찾아낸 것이다.

'책임감리원'은 현장에 상주하면서 공사 전반에 관한 감리업무를 총괄하고, '보조감리원'은 이를 보좌한다. 감리원들은 발주자인 한전 대신 설계도서대로 시공되는지 확인하고, 각종 기술지도도 펼친다.

또 공사현장에서 민원이나 시공·예산 관련 변경사항이 발생하면 한전에 보고해야 한다. 특히 인명손실·시설물의 안전에 위험이 예상될 경우 조치를 취한 후 즉시 한전에 보고하는 등 산업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지키는 역할도 맡는다.

문제는 A씨가 한전이 발주한 공사비 34억 원 규모의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배전공사에서 상주 책임감리원(특급)으로 2021년 1월 배치됐을 때다. 해당 공사의 감리비만 2억 3천만 원으로, 업체가 한전에 제출한 '감리원 배치(변경) 계획서'에는 A씨를 포함해 보조감리원(고급) 1명과 비상주감리원(특급) 1명 등 총 3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배전공사는 중지됐다가 재착공이 반복되는 일이 잦고, 소규모 배전공사는 2~3시간 만에 공사를 마치기도 한다. A씨가 해당 용역의 감리업무를 수행하는 기간에도 해당 공사는 수시로 작업 중지와 재착공을 반복했다.

A씨가 공사현장에 배치돼 현장 사진 등을 한전 모니터링시스템을 통해 전송한 일수는 2021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187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 A씨가 한전을 통해 확인한 결과, 업체는 '감리원 배치(변경) 계획 및 용역변경 확인서'에 총 298일 동안 A씨를 배치했다고 신고했다.

A씨가 실제 현장에 배치돼 감리업무를 한 날과 업체가 신고한 감리원 배치일수가 111일이나 차이 나는 것이다. 정작 A씨는 업체로부터는 실제 현장에서 감리업무를 본 187일 치만큼의 현장 출근수당만 받았다.

또 업체는 같은 기간 상주 보조감리원은 69일, 비상주감리원은 298일 배치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A씨는 "현장에서 보조감리원은 본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A씨는 뒤늦게 한국전기기술인협회 홈페이지로 '배치신고 현황'을 조회한 이유에 대해 "다들 업체를 믿고 일한다. 주변 감리원 대부분은 감리원 배치신고 현황 확인 방법 자체를 모른다"며 "감리원들이 배치 상황을 수시로 확인하지는 않기 때문에 감리회사가 이런 일을 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전기기술인협회에 공개된 제보자 A씨의 배치신고현황. 실제로 근무한 6일이 아닌 222일로 기록되어 있다. A씨 제공한국전기기술인협회에 공개된 제보자 A씨의 배치신고현황. 실제로 근무한 6일이 아닌 222일로 기록되어 있다. A씨 제공
A씨가 2019년 10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상주 책임감리원으로 배치됐던 경기 평택의 배전공사 상황은 더 심각했다. A씨는 업체로부터 장기간 공사가 중지됐다는 안내를 받고 전체 공사기간 중 단 6일만 현장에 배치됐고, 그만큼의 현장 출근수당만 받았다. 그러나 업체가 한전에 A씨를 해당 용역에 배치했다고 신고한 일수는 무려 222일, 216일이나 차이가 난다.

A씨는 "책임감리원은 중복 배치가 안 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나는 다른 현장에 가서 일할 수도 없었다"며 "나한테는 (현장 출근수당 없이) 기본급으로 때우면서, 한전에는 배치일수를 채웠다고 신고해 용역비를 받아 갔다. 이건 도둑질이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예 업체가 배치 사실 자체를 알리지 않고 A씨를 상주 책임감리원으로 배치했다고 신고한 사례도 2019년부터 올해까지만 총 3건 있었다. A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0일·10일·7일 어치의 소규모 공사들에 상주 책임감리원으로 배치 신고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런 사례는 서울·경남 등 다른 지역에서 한전 감리용역을 발주받은 업체에서도 발견됐다.

서울지역 감리업체에 소속된 감리원 B씨도 들어본 적도 없는 용역에 자신이 상주 보조·책임감리원으로 배치신고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B씨는 2018년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10억 3천만 원 규모 배전공사에서 상주 보조감리원으로 40여 일간 배치됐다고 신고됐다. 감리 용역비만 8800만 원에 달하는데, 정작 B씨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또 서울 서초구 배전공사에도 상주 책임감리원으로 9일 배치신고 되는 등 낯선 용역에 이름이 올랐다.

경남지역 감리업체에 소속된 감리원 C씨도 2017년에만 낯선 용역 5건에 상주 책임감리원으로 신고됐다. 대부분 2천만 원~4천만 원 규모 배전공사에 600만 원~800만 원 규모 감리용역의 상주 책임감리원으로 배치신고돼 있었지만, 업체로부터 '현장에 나가 감리업무를 하라'는 통보는 받지도 못했다.

이에 대해 감리원 배치 신고기관인 한국전기기술인협회 관계자는 "관련 법령 등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책임감리원은 현장에 상주하면서 해당 공사 전반에 관한 책임을 수행하는 자로 본다"며 "감리원 투입 계획에 대해서는 발주자인 한전이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감리업체가 감리원을 배치하겠다고 신고해 놓고 배치하지 않았다면 발주자인 한전과의 계약 이행을 위반한 행위"라며 "예를 들어 배치신고된 책임감리원 성명을 이용해 다른 사람이 감리 업무를 수행했다면 행정처분 대상을 넘어 형사고발을 통해 책임감리원 배치가 적절히 이뤄졌는지 사법기관에서 확인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전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감리원 현장보고…실시간 확인은 어려워"

더 황당한 일은 한전이 이 사실을 신고 받고도 '확인할 길이 없다'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A씨는 위와 같은 업체의 배치일수 허위 신고 사실을 지난 8월 한전의 각 지역본부 등에 알리고 관리·감독을 요구했다.

제보자 A씨가 감리원 배치 허위신고에 대해 한전에 질의한 내용. A씨 제공제보자 A씨가 감리원 배치 허위신고에 대해 한전에 질의한 내용. A씨 제공
그러나 한전 서용인지사는 한 달 후 "현장 시공이 완료돼 실배치 유무는 감리회사를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함"이라고 답하며 책임을 감리업체로 넘겼다. 심지어 그 근거로 애초 업체가 허위로 신고했던 '책임 감리원 변경 공문', '책임 감리원 배치확인서' 등을 그대로 첨부해 보낼 뿐이었다.

한전 경기본부 배전공사관리부 담당자는 "기록이 누락된 부분이 확인돼 한국전기기술인협회와 해당 감리회사에 벌점 제재 사실을 통보했다"며 "감리회사 쪽에서 이의가 없으면 그대로 수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치신고 일수가 216일이 차이 나도록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했는데 벌점만 주고 끝나느냐"는 A씨의 질문에 이 담당자는 "책임감리원이 실제로 용역을 수행했는지 (한전 업무담당자가) 숙제 검사하듯 매일매일 확인하는 건 아니다"라며 "공사가 다 끝난 상황에서는 현장에서 감리일보를 실제로 작성했는지 여부를 증빙할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한전의 '2023년도 배전공사 감리용역 협력회사 업무처리 기준'에 따르면 현장 배치된 감리원은 현장에 있는지, 업무를 수행했는지 여부를 확인받도록 '공사현장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시공 전후 공사현장 상태를 각각 촬영한 사진을 한전에 전송해야 한다. 이때 한전은 감리원에게 추가 촬영·전송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리원이 사진을 촬영해 전송하면 한전 담당자가 실시간으로 이를 확인하지 못해 시스템상 '자동승인' 처리되는 일이 빈번하다.

한전 관계자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실시간으로 매일 현장 작업을 확인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며 "사후 점검을 통해 감리업체 제출 서류와 작업 현장이 달랐던 부분을 지적해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앞서 한전은 올해 초 처음으로 전국의 배전공사 감리현장에 대한 전수점검을 실시해 감리원 배치 부적정 업체 38곳을 적발한 바 있다. 작업 전 감리업체가 제출한 감리원 배치 계획서와 실제 현장에서 감리원이 한전 모니터링 시스템에 전송한 사진이 불일치한 경우를 일일이 확인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한전은 이번 전수점검에서조차 A씨와 같이 감리원 배치신고일수보다 적게 배치한 사례는 한 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감리원을 실제로 배치해 감리업무를 했는지는 서류로 확인한다"며 "서류상 문제가 없으면 정상적으로 감리 업무를 하고 있다고 보고 대가를 지급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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