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수원대책위원회가 수원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박창주 기자"똑같이 전세사기를 당했는데 피해자를 구분하는 건 저희를 한번 더 죽이는 겁니다. 누구 좋으라고 대출 지원만 확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최근 눈덩이처럼 불어난 수원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구제 대책을 촉구하며 한 말이다.
13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수원대책위원회(대책위)는 수원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과 강서에 이어 수원에서도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가 본격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원지역 피해자들과 앞서 발생한 인천과 서울 강서지역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실태를 고발하며, 당국에 긴급대책 마련을 요구하려는 취지다.
먼저 대책위는 수원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파악한 예상 피해액수가 535억 8천만 원에 달한다며, 집계되지 않은 세대수를 고려하면 870억 원이 넘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날까지 경기남부경찰청에 접수된 피해액보다 네 배 이상 많은 규모다.
이 중 임대인 정모씨 부부와 관련한 법인이 소유한 건물은 모두 51개로, 3곳은 경매 예정이고 2곳은 압류 상태인 것으로 대책위 조사에서 집계됐다. 피해사실을 알려온 394세대의 예상피해금액은 475억여 원이지만, 총 세입세대가 671곳임을 감안하면 810억 원까지 늘 수 있다.
정씨 임대건물과 가까운 세류동 일대에서도 잇따라 피해 상황이 감지됐다. 이모씨가 소유한 건물들로 건물별 1명 이상의 전세만기가 도래했으나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액은 60억 원(38세대)이며, 임대인 이씨가 해외에 있어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 건물별 임대인에 대해 민·형사상 고소·고발 조치가 이뤄지면서, 피해자들은 법적 절차에 관한 모든 비용까지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불거진 전세 피해에 대해 정확한 공식 실태 조사조차 없어 기민하고 종합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는 게 대책위의 지적이다.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와 수원시가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해 전수조사부터 선행해야 한다는 것.
또 이들은 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의무를 관리·감독하는 주체가 지자체라는 점을 짚으며, 단속활동을 강화해줄 것을 요구했다.
지자체가 지원센터 등을 운영하기로 한 데 대해 반색하면서도, 은행 대환대출 등을 받고자 할 때 현장에서 혼선을 겪는 경우가 많은 만큼 금융사와의 상담연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기자회견 현장 모습. 박창주 기자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에 대해서도 목청을 높였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과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의 현실화 요구다.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대폭 낮춰달라는 게 핵심이다.
대책위는 "특별법이 피해자를 구분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많다"며 "똑같이 피해를 당했음에도 피해자 선별로 인해 국가가 피해자들을 한번 더 죽이는 행위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선구제 후회수' 방안 도입도 요구사항에 담겼다. "피해자들이 쫓겨나가지 않게 먼저 구제한 후 정부에서 나중에 회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달라"며, "LH에서 피해주택을 매입해 수익금을 피해자에게 먼저 돌려주고 나중에 회수하는 방안이 있다"는 것이다.
기존 주요 지원책들이 보증금에 대한 대출을 지원하거나 경매(공매)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등 빚으로 빚을 갚는 이른바 '돌려막기'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에서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인식 등으로 실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특별법에 따른 지원책을 이용하는 비율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네트워크가 8월 24일부터 9월 17일까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가구들(1579세대)을 조사한 결과, 특별법 시행 후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대책을 이용한 피해자는 17.5%에 그쳤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수원시의 한 전세 피해자는 "정부에게는 예산의 문제이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라며 "특별법을 조속히 개정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전날 발표된 국토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세 325만 2천여 가구 가운데 최대 49만 2천여 가구가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할 수 있는 '반환 지연 위험' 상태인 것으로 분석됐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대형 전세사기 사태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