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채모 상병 순직사건 조사와 관련해 항명죄로 입건된 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관련 음성파일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군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이로써 양측 주장이 맞서며 지지부진했던 수사 답보 상황이 깨지면서 군검찰의 기소 여부에도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 해병수사단장, 음성파일 증거와 함께 수사팀 교체 등 정식 요청
박 대령 측 법률대리인은 지난 25일 국방부에 제출한 수사지휘요청서에서 수사팀 교체와 별건수사 중지 등을 공식 요청했다.
여기서 핵심은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이 지휘하는 군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다. 박 대령은 이미 국방부 검찰단의 공정성을 문제제기하며 군수사심의위원회 개최를 요구한 바 있다.
이번 수사지휘 요청이 그때와 다른 것은 음성파일 증거가 있다는 점이다. 박 대령 측은 지난 22일 보직해임 무효 소송을 다루는 수원지방법원에 관련 파일 2개를 제출했다.
류영주 기자
여기에는 △국방부 검찰단이 해병대 경찰 이첩서류를 회수한 것에 대해 경북경찰청 관계자도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도 박 대령의 조치가 적법했다고 인정한 정황이 담긴 통화 내용이 담겨있다.
이들 통화가 이뤄진 시점은 지난달 2일이다. 박 대령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기록을 경찰에 이첩했다가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보직해임되고, 이첩서류는 군검찰이 되찾아갔으며, 해병 사령관은 4시간 가까이 군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하나 같이 유례를 찾기 힘든 비상한 일들이 한꺼번에 줄이어 발생한 운명의 날이었다.
따라서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각각의 경위 파악이 필요했지만 객관적 증거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제 의문의 실마리가 풀리게 됐다.
"군기 문란"이라던 해병사령관, 과거 통화에선 "공정, 원칙대로 했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연합뉴스우선 눈에 띄는 것은 김 사령관과 해병대 수사단 A중수대장 간의 통화 내용이다.
지난달 2일 밤 이뤄진 이 통화에서 김 사령관은 "어차피 우리는 진실되게 (조치)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어"라거나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박 대령이)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거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야" 등의 말을 했다.
김 사령관이 이번 사태 초기에 행한 '오염되지 않은 발언'은 이처럼 박 대령을 사실상 두둔하는 것이었지만, 이후 지난달 25일 국회 답변에선 "군의 엄정한 지휘와 명령체계를 위반하는 군 기강 문란 사건"이라 말이 바뀌었다.
그러나 김 사령관의 국회 답변은 박 대령이 하루 2차례 보직해임 된 기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김 사령관은 지난달 2일 오전 박 대령을 보직해임 했지만 참모장 건의를 받고 보류했고 이후 다시 보직해임 조치를 내렸다.
이는 김 사령관이 당시 박 대령에게 "앞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마음 굳게 먹어라"는 취지의 위로를 한 사실과 떼어내 설명할 수 없다.
김 사령관으로서도 무고한 부하를 처벌한 것에 인간적 연민을 드러낸 것이다. 그가 "(박 대령 등이) 진정으로 원칙과, 공정하고 원칙대로 이렇게 다 했으니까 기다려보자"고 말한 대목이 그것이다.
이첩서류 회수 미스테리도 음성파일에 단서…군검찰 타격 예상
군 검찰이 같은 국가기관인 경찰에 이미 넘어간 서류를 별 근거도 없이 회수해간 미스테리도 이번 음성파일이 해결에 유력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서류를 잠시 이첩 받았다 회수 당한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해병대 수사단의 울분에 찬 항의에 거의 유구무언이었다.
박 대령 측 김정민 변호사는 경찰 관계자의 요청에 따라 언론 공개는 자제하면서도 "이첩 기록(서류)이 탈취되는 과정이 얼마나 황당했는지가 다 드러나고 있다"고 통화 분위기를 전했다.
어쩌면 영원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을지 모를 증거 녹취가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건의 실체는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이로써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 측 주장대로 수사의 공정성에 크던 작던 타격이 불가피하고, 녹음파일이 제출된 민간법원의 판단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