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부터 신임 방문규 산업부 장관,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한국전력 사장 등 에너지 컨트롤타워를 전격 교체하며 정책 대전환을 예고했다. 신임 방문규 산업부 장관과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200조 부채' 위기에 직면한 한전 정상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제유가 급등 사태를 계기로 최근 글로벌 에너지 위기 조짐이 재차 일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 대책을 담당하는 수장들이 교체됐다. 윤 대통령은 19일 4선의 김 전 의원을 한전 신임 사장으로 임명했다. 한전 62년 역사상 첫 정치인 출신 사장으로 전날 임시 주주총회와 산업부 장관 제청 후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이다.
지난 13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방 장관은 오는 20일 임명된다. 국회 청문회 이후에도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해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까지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 후 답이 없자, 임명 강행에 나선 것이다.
수출 증대와 원전 육성, 에너지 정책전환 등 막중한 임무들이 있지만, 방 장관과 김 사장 앞에 놓인 당면 과제는 '한전 정상화'다.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발생하면서 석유와 LNG(액화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인해 한전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전력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석유와 석탄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고스란히 한전의 손실로 이어졌다. 도매시장의 전력 가격은 원자재와 어느 정도 연동돼 등락을 반복하지만, 소매 전기요금 결정권은 사실상 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에 원가 폭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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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년 동안 적자만 30조 원을 초과한 한전의 누적 적자는 약 47조 원에 육박한 상태다. 지난 6월 말 기준 총부채는 약 201조 원으로, 올해는 적자 폭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시작된 에너지 대란이 잠잠해지면서 올해 3분기엔 반짝 '역마진 구조'에서 탈피하기도 했지만, 유가 급등으로 인해 재차 적자 늪에 빠진 모양새다.
문제는 존립 위기에 몰린 한전을 살리기 위한 뾰족한 묘수가 보이지 않는단 점이다.
전기요금은 지난해부터 약 40%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마진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일각에선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대로 연내 kwh(킬로와트시)당 51.6원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이라 여당 내에선 물가상승을 우려한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13일 청문회에서 방 장관은 한전 적자와 관련해 "전기요금 조정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면서도 요금 인상 전에 한전의 재무개선이 우선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한전 정상화를 위해 정부가 직접 재정 투입을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수출 부진 등으로 인해 올해 국세수입 부족분이 약 59조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정 투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황진환 기자한전채 발행 역시 이미 한도에 육박하면서 국회에서 '발행한도 증액' 법 개정 없이는 어려운 상태다. 지난해 말 여야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 5배까지로 증액하기로 법을 개정한 바 있다. 지난 7월 말 기준 발행 잔액이 약 79조 원에 육박하기 때문에 추가로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2024년 3월 한전 주주총회 이후 발행 잔액이 발행 한도를 넘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여론 악화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하거나 여야 협치를 통해 채권 발행 한도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결단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한전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인 출신인 김 사장이 수장으로 온 데 대해 기대를 거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그냥 평상시였다면 한전 사장 자리에 정부 부처나 학계 등에서 와도 크게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한전이 위기라는 점을 명확히 진단하고 정무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도 "지금은 전문가 또는 정치인 등 출신에 상관없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