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담임교사가 수업 중 장난을 친 학생의 이름을 '레드카드' 명단에 올리고 청소를 시켰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석 달 가까이 담임 교체를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은 교권침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최근 서울 서이초등학교 사건 이후 교권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한 학부모의 무분별한 개입에 제동을 건 판결로 풀이된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4일 학부모 A씨가 자녀가 다닌 초등학교의 교장을 상대로 교권보호위원회 조치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사건에 대한 상고심에서 학부모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우선 "적법한 자격을 갖춘 교사가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이 존재하는 영역인 학생에 대한 교육 과정에서 한 판단과 교육활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돼야 한다"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나 학생 또는 그 보호자 등이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부모 등 보호자는 자녀나 아동의 교육에 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교원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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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담임교사의 교육방법이 부적절해 교체를 희망한다는 의견도 부모가 인사권자인 학교장 등에게 제시할 수 있는 의견에 해당한다고는 인정했다. 단, 교육방법 등의 문제로 해결할 수 있다면 먼저 그 방안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학부모가 정당한 사유나 절차에 따르지 않은 채 반복적으로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방안을 시도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그런 문제로 담임교사에게 온전한 직무수행을 기대할 수 없는 비상적인 상황에 한해 보충적으로 허용된다"며 "이번 사건에서 A씨의 지속적인 담임교체 요구는 교육활동 침해행위인 '반복적인 부당한 간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전북의 한 초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 B씨는 2021년 4월 수업 중 한 학생이 생수병으로 장난을 치자 학생 이름을 칠판 레드카드 옆에 붙이고 방과 후 14분간 청소를 하게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학생의 부모는 학교에 찾아와 항의하고 교감과 면담했다. A씨는 쓰레기를 줍게 한 행위가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며 담임교체를 요구했다. 또 다음 날부터 사흘간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교사 B씨는 A씨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스트레스로 인한 기억상실 증세 등으로 응급실에 입원해 약 일주일간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았다.
A씨의 지속적인 민원 제기에 B씨는 우울증세를 호소하며 5월 18일부터 방학 전인 7월 16일까지 병가를 냈고, A씨를 상대방으로 '교육활동 침해 사안 신고서'도 제출했다. 이 기간에도 A씨의 담임 교체 요구는 계속됐다.
이에 학교는 7월 15일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A씨의 행위를 교권침해로 판단한 뒤 '교육활동 침해행위인 반복적 부당한 간섭을 중단하도록 권고한다'는 조치결과 통지서를 A씨에게 보냈다. A씨는 학교의 처분에 반발해 소송을 냈다.
1, 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A씨의 행위는 담임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로서 교권침해"라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반면 2심은 "담임교사가 훈육에 따르지 않는 아동의 이름을 친구들에게 공개해 창피를 줌으로써 따돌림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강제로 청소 노동까지 부과하는 것은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침해행위"라며 "이런 행위는 교육현장에서 허용되거나 계속 묵인돼선 안 된다"고 판단하며 1심 판단을 뒤집고 A씨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이를 다시 판단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모 등 보호자는 교육에 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이런 의견은 존중받아야 하나 교원의 전문성과 교원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의견제시가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반복적으로 부당한 간섭 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는 한계가 있음을 처음으로 판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