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8월 23일 김종필 국무총리와 유근창 원호처장, 안춘생 광복회장을 비롯한 30여 명의 애국지사들이 광복 30주년 맞아 무후선열제단 준공식에 참석했다. 'KTV 아카이브' 유튜브 캡처국방부가 육사 흉상 철거를 시작으로 홍범도 장군을 겨냥한 이념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반공 기치'를 내걸었던 박정희 정권기 장군의 위패가 국립묘지에 안치된 사실이 재조명받고 있다.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가 홍 장군을 두고 "공산당원이었던 사람"이라며 전력을 문제삼고 있는데 반해, 위패 안치 당시 제전에는 박정희 정부의 김종필 국무총리 등이 참석해 휘호를 새긴 비를 세우는 등 예우를 갖췄던 것이다.
8일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따르면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1975년 8월 13일자 신문에서 홍범도 등 선열들이 국립묘지(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위패 안치를 주도한 국가보훈부 전신 원호처는 광복 30주년을 앞두고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 위쪽(충열대 뒤쪽)에 '무후선열제단'을 준공, 후손이 없는 선열의 위패를 안치하고 위령제를 올렸다.
이날 제전에는 김종필 국무총리와 유근창 원호처장, 안춘생 광복회장을 비롯한 30여 명의 애국지사들이 참석했다. 제단 입구에는 김 총리의 '무후선열제단'의 휘호를 새긴 비를 세웠다. 후면에는 "국민 모두가 후손이외다. 우리들 제사받으옵소서"라고 쓰인 헌사비가 붙었다.
무후선열제단에 안치된 홍범도 장군 위패. 국립서울현충원 유튜브 캡처
당시 안치된 선열은 홍 장군과 유관순 열사, 오동진, 남상덕 등 유해와 묘소를 못찾은 인물들로 당시 후손등록이 없던 선열만 1차로 안치했다. 현재는 131위 순국선열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당시 이를 보도한 경향신문은 "구한말부터 8·15 해방까지 조국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치다 국내외에서 순국했으나 후손이 없고 묘소도 없는 선열들이 해방 30년만에 국립묘지에 안치됐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선열들이) 광복 30년만에 안식처를 찾았다"며 "파란만장했던 생애 못지않게 목숨을 잃은 뒤에도 쓸쓸히 조국의 산하를 떠들던 혼백들이 뒤늦게나마 영면할 안식처를 갖게된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외로운 혼백이 광복 30년만에 국립묘지에 안식처를 찾았다"면서 "원호처가 첫 위령제를 올려 조국과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고도 묘소조차 없던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기렸다"고 썼다.
이번 정부 들어 홍범도 장군에 대한 해석이 일부 달라진 것에 대해 홍범도기념사업회 오광영 이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홍범도의 공과는 이미 검증이 된 것으로 새삼스럽게 공산당 이력을 문제삼아서 욕보이는 것은 역사를 지우려는 세력들의 간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홍 장군은 지난 2021년 8월 18일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식에서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됨에 따라 위패는 '무후선열제단'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