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특별법 100일…여전히 울부짖는 사각지대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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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특별법 사각지대①]
신탁사기·불법건축물 세입자, 피해 인정돼도 지원책 활용 어려워
"특별법 사각지대 놓인 피해자 실태 전수 조사해 법 보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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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전세사기 특별법 100일…여전히 울부짖는 사각지대 피해자들
(계속)

8일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지 꼬박 100일이 됐지만, 특별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은 그나마 마련된 지원 대책의 도움조차 받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특히 부동산 신탁 사기나 불법건축물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특별법에서 정하는 피해자로 인정되더라도 이용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이 제한적이어서, 사기의 피해와 고통을 오롯이 홀로 감당하고 있다.

"우선 매수권이요?"  내쫓기는 '신탁 사기' 피해자


대구 북구의 한 다세대 빌라에 살던 30대 청년 정태운씨는 지난 3월 '집에서 나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장을 전달 받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는 '신탁 전세사기' 피해자였다.

태운씨 사연은 이렇다. 태운씨는 A법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사실 해당 주택은 B법인이 이미 A법인으로부터 신탁을 받아 소유권 관리 등을 해오던 주택이었다. 이 주택은 B법인의 동의 없이는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없지만, A법인은 B법인 모르게 정씨와 계약을 진행했다.

문제는 A법인이 4억원 가량의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체납 압류재산 공매절차를 밟자, B법인이 태운씨의 빌라를 팔기로 결정한 것이다.

태운씨는 한때 빌라가 팔리면 자신의 전세보증금 1억원 중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헛된 바람이었다. 애초 B법인이 동의하지 않은 임대차 계약은 무효이기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가 없었다.

태운씨처럼 하루아침에 '불법임차인'이 된 가구만 해당 빌라에 17세대. 이 가운데 7세대가 신혼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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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6월부터 시행된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은 이들에게 먼 얘기였다. 특별법에는 '대항력', 즉 법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 임차인의 권리를 갖춘 임차인만이 피해자로 인정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태운씨는 임대차 계약 자체가 무효이기 때문에 특별법에서 말하는 피해자가 아니므로, 특별법에서 정한 보호와 구제 정책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그나마 받을 수 있는 일부 지원은 새로 주택을 구입하거나 전세 계약을 맺을 때 비교적 저렴한 금리로 대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수준이다.

이마저도 6억원대 주택을 분양 받은 태운씨에겐 크게 도움 되지 않았다. 그는 "(특별법 지원 대책인) 특례보금자리론으로 5억원을 대출받아도 이자가 약 4%나 돼 1년에 2천만원의 이자를 내야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현재 집에) 내 돈으로 들어왔는데, 대출을 해서 나가라는 이 현실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운영위원장인 김태근 변호사는 "신탁 사기는 대한민국에서 꽤 오래된 유형의 전세사기"라며 "그동안 세입자를 대변해 주는 사람들이 없다 보니까 계약 잘못한 공인중개사에 손해배상 청구하는 게 전부였다. 지금도 (신탁사기 피해자가) 서울, 인천, 대구, 부산 등 전국에 100여 세대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담보신탁 주택에 대해서는 전세 계약을 못 하게 해야 한다"며 "후순위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신탁 사기 피해자들이 계속 쫓겨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피해주택을 우선 매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루 아침에 '불법' 낙인 찍힌 '근생' 피해자


서울 강서구의 7층짜리 빌라에 살고 있는 30대 이모씨는 올해 초 '전세사기' 뉴스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기부등본을 열람해 봤다. 임대차 계약 당시에는 없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가압류가 걸려있었다. 말로만 듣던 전세사기였다. 주택 500여 채를 소유하며, 보증금을 가로챈 임대인과 그의 가족은 이미 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씨를 더 절망스럽게 한 것은 그의 주택이 불법건축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씨의 주택은 '근린생활시설(근생)'로 규정된 건축물이었다. 근생은 주택가에서 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공급할 수 있는 시설로 지정된 곳으로, 주택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이씨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고,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을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특별법은 이씨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근생, 상업용 오피스텔 등 비주거용 주택에서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을 특별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대표적 사각지대 사례다.

"정부에서 (LH 공공매입 등) 근생 활용 방안은 없는 걸로 완전히 선을 그어버리니까 특별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근생은 구제할 길이 거의 없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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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와 같은 임대인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서모씨는 "나라에서는 처음에 (근생) 건축 승인만 해주고 사후 (불법건축물) 관리를 안 해서 결국 건축주만 돈 벌고 그 책임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겼다"고 지적했다. 4년간 1금융권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있었던 서씨는 지난해 11월 보증금을 증액해 재계약한 이후 갑자기 근생이라는 이유로 은행에서 대출 연장을 거절당해 처지가 더욱 곤란해졌다.

내년 2월이 계약 만기인 이씨는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대출 연장을 하고 그 집에 계속 살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은행마다, 지점마다, 행원마다 대출 취급이 달라지니까 일관성이 없다"고 토로했다.

근생 등 불법건축물에 사는 피해자들은 현재 집에서 계속 살기 위해 낙찰을 받기도 쉽지 않다. 불법건축물을 매입하기 위해선 이행강제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행강제금은 당사자가 불법건축물을 다시 원래 용도에 맞게 돌려놓도록 강제하기 위해 부과되는 일종의 과태료다. 이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 입장에서는 이런 비용까지 떠안기가 매우 부담될 수밖에 없다.

특별법 사각지대 피해자들 "실태 조사부터"

정부는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특별법을 오는 12월 개정·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정·보완에 앞서 전국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근 변호사는 "12월에 전세사기 피해 인정된 분들만 실태조사 결과라고 발표할 것 같다"며 "문제는 (제도로) 보호 받지 못하는 신탁 전세사기 피해자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해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특별법은 너무 미흡하다"며 "(근생 등이) 불법주택이라면 우선 매수권 행사해 봐야 이행강제금 등을 부담하게 돼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피해 구제'에 보다 초점을 맞춰 특별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 소장은 "특별법에 정책 가짓수는 많은데 정작 피해자들이 쓸 수 있는 게 없다"며 "피해자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사각지대가 일단 하나의 문제이고, 피해자로 인정이 돼도 대출 지원에 대한 이런저런 장벽들이 존재한다"며 보완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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