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김대식관에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 상병의 빈소가 차려졌다. 사진은 이날 유족들의 동의로 공개된 채 상병의 영정사진. 연합뉴스 경찰이 고(故) 채모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 자료를 해병대 수사단장으로부터 넘겨 받은 뒤 사본을 제작하고도, 이를 국방부에 돌려주면서 사본까지 모두 파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18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이 경북경찰청에게 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경북경찰청은 국방부로부터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 자료를 지난 2일 오전 10시 30분쯤 확보했다.
징계위원회 출석하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
같은 날 오후 1시 50분쯤, 국방부 측에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지시로 전달된 자료를 회수하겠다며 경북경찰청에 연락했다. 당시 국방부는 '군기 위반' 등의 이유로 사건 접수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조사 자료를 반환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경북경찰청은 자료들을 돌려주면서, 해당 자료를 건네받을 때 복사해 제작했던 사본도 파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 전 단장이 전달한) 사건이 아직 접수되기 전 단계였기 때문에 회수를 요청해서 돌려주고 사본은 파기한 것"이라며 "접수가 됐다면 다른 근거가 필요한데, 사건이 접수되지 않았기에 불법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경찰은 조사 자료를 건네받고도 '형사사법 정보시스템'(KICS.킥스)에 곧바로 입력하지 않았다. 경찰의 사건 접수 여부는 킥스에 사건과 조사 내용 등을 입력하고 사건 번호를 부여 받는 것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해당 자료는 경찰에 접수되지도 않은 자료가 된 셈이다.
문제는 애초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 주체가 경찰이라는 점이다. 군인 사망 사건의 경우, 모든 재판은 군 재판이 아닌 민간에서 재판을 하기 때문에 수사의 주체 역시 경찰이다.
김대기 기자 경찰이 국방부에 자료를 돌려준 바로 다음날인 지난 3일부터 군에서 수사 자료를 회수하고, 박 전 단장을 해임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와 함께 '군이 조직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은폐한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박 전 단장이 방송에 출연해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하면서 이른바 '항명 논란'까지 일었다.
수사 주체인 경찰이 아직까지도 수사에 착수하지 못한 채 진상 은폐 의혹부터 불거지는 상황, 국방부에 자료를 돌려주고 사본까지 파기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안일한 대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해당 자료 사본까지 파기했다는 것은 수사를 스스로 손 놓겠다는 뜻"이라며 "사고 발생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이라도 경찰은 사건을 다시 이첩받는 등 수사가 더는 지연되지 않도록 필요한 노력들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