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잭서포트(하중분산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91개 단지 중 철근이 누락된 15개 아파트 단지를 공개했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이 아파트는 무량판 방식 기둥 302개 중 126개에서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드러났다. 남양주=박종민 기자정부가 무량판 공법으로 지어진 민간 아파트에 대한 전수조사에 본격 착수했다.
이른바 '순살 아파트' 사태와 관련한 국민 우려를 불식시키고 안전도 담보하겠다는 것이지만, 실효성 있는 후속대책 은 물론 조사의 정확성마저 담보하기 쉽지 않아 산 넘어 산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자체·전문기관과 공조체계 강화한 국토부…금주 내 현장조사 개시
국토부교통부는 8일 아파트 전수조사 관련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전문기관 간 협력회의를 열고 공조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전날인 7일 조사 개시를 선언한 무량판 구조 민간 아파트 점검에 필요한 역할을 분담, 보다 철저한 조사를 강조했다.
준공이 된 아파트의 경우 지자체는 구조계산서, 설계도면 등을 확보해 점검기관에게 제공하고, 국토안전관리원은 설계도서 검토, 현장조사 입회, 점검결과보고서 검증 등을 책임지며 안전진단기관과 함께 점검에 나선다.
국토부는 이날 회의 결과를 반영해 이번 주 안에 무량판 구조 민간아파트 안점점검에 착수하고, 매주 진행상황 점검회의를 해 점검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빠듯한 시간…50여일 만에 293개 단지 조사 마쳐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앞줄 가운데)이 6일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 양주회천 A15 아파트 주차장에서 보강공사 상황을 점검한 뒤 간담회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부의 적극적인 해결의지에도 불구하고 안전 우려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우선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빠듯하다.
국토부가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곳은 2017년 이후 준공이 마무리된 188개 단지와 공사 중인 단지 105개 등 293개 단지다.
이미 준공된 단지의 경우 구조계산서와 설계도면을 우선 확보해 살핀 후 건물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비파괴 검사를 통해 철근 설치가 제대로 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국토부의 조사 완료 시점은 다음 달인 9월말이다.
당장 조사를 시작하더라도 남아 있는 시간은 50여일에 불과하다.
국토부가 지하주차장 등 공용부분 뿐 아니라 주거동까지 빠짐없이 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면서도, 모든 기둥 대신 단지별로 철근 누락에 취약한 10개 내외의 기둥만을 추려서 우선 점검하는 것은 이같은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마저도 기간 내에 제대로 조사해내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인천 검단 LH 아파트 주차장 붕괴 참사 이후 실시된 전국 LH 아파트 91개 단지 전수조사가 5월 초에 시작돼 7월말에야 끝난 점을 고려할 때, 300개에 육박하는 단지에 대한 조사를 두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내에 결함 없이 마무리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입주민 반대·보강 어려움 등 난제 떠안은 주거동 조사
또 하나의 과제는 주거동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에 대한 조사다.
293개 단지 중 105개 단지가 주거동에도 무량판 공법을 적용했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59개 단지는 이미 입주를 마쳤다.
때문에 주거 공간 안에 위치한 기둥 상태를 점검하려면 주민동의가 필수적인데 난항이 예상된다.
'순살 아파트'로 낙인 찍힐 것이 두려워 원천적으로 조사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벽식 구조와 무량판 구조가 혼합된 단지의 경우에는 현장점검을 하지 않고, 설계도상 보강 철근이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단지에 대해서는 세대 내부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용 공간만 점검하더라도 입주민 동의를 구하기로 한 데다, 보강 철근이 필요한 구조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단지에 대해서는 세대 내 점검을 피할 수 없다.
주민 반대에 부딪힐 경우 외부에서 점검할 수 있는 기둥들을 최대한 살펴보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지만, 이 경우 부실시공 여부를 제대로 점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공공 주택과 달리 건설·설계사와 입주민 입장 첨예 가능성에 피해 보상도 난관
8일 오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송파구 위례23단지 지하주차장의 철근 탐사기 확인 작업 모습. 연합뉴스주거동 점검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해도, 부실시공이 확인될 경우 후폭풍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지하주차장의 경우 기둥 부근에 철근이나 철판 등으로 강도를 높이거나, 아예 기둥을 추가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용에 큰 무리가 없이 보강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
반면 실내의 경우에는 보강 작업을 할 경우 주거 공간 일부가 희생돼야 하다 보니 보강을 원하지 않는 입주민과 보강을 원하는 입주민 간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피해보상 과정이 공공아파트와 다르게 진행되는 점도 우려의 지점이다.
LH 아파트의 경우 정부가 책임을 지고 기존에 거주하던 입주자까지 계약해지를 허용하고 위약금도 면제해주겠다고 밝혔지만,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건설사와 설계사 등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입주민과 법적 분쟁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어 추가적인 혼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붕괴 사건이 발생한 단지의 경우에는 부실시공이 있었지만, 무량판 구조 자체는 문제가 없고 더군다나 주거동의 경우에는 설계와 시공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전수조사에 투입할 인력의 수급을 비롯해 각 단지별로 상이할 현장 상황, 정부와 업계, 입주민의 입장 등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