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 황진환 기자최근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심각한 교권침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초등교사 사망 사건의 경우, 고인이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있다.
이 같은 교권 붕괴의 이면(裡面)에는 폭언이나 갑질,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로부터 교사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교장·교감의 방관이나 묵인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을 맡았던 서모(38)씨는 한 학생을 타이르며 '체험학습 계획서'를 충실하게 작성해 오도록 했다. 하지만 학부모는 서씨에게 아주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내가 너 어떻게 하나 보자'라고 폭언을 하고 나서 바로 교감에게 전화를 했다.
이후 교감은 '학부모에게 무조건 사과할 것'을 서씨에게 요구했다. 서씨는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교감은 '그래도 어머님이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으니 일단 죄송하다고 사과 전화부터 하도록 했다"고 회상했다. 서씨는 본인은 물론 주변 동료 교사들이 이 같은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다가 결국 지난해 교직을 떠났다.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담임 교사인 한모(30대)씨는 지난해 학교 폭력·금품 갈취를 일삼던 학생에 대한 학교 측의 솜방망이 처벌에 스트레스를 받아 병가 중이다.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렸지만, 교장·교감은 오히려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고 한다. 체크리스트 점수에 따르면 '학급 교체' 사안인데, 점수를 낮춰 '출석 정지'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폭력·금품 갈취' 학생, 솜방망이 처벌…'학급 교체 요구' 묵살 당해
황진환 기자
이후 학부모는 교육청에 '수업권 침해'라며 '민원'을 넣었고, 한씨는 이 학생을 가르칠 수 없다며 분리조치를 요구했으나 교장은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선생님이 맡아야지 어떡하느냐'며 받아주지 않았다. 한씨는 이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현재는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고 병가 중이다.
숙명여대 교육학부 송기창 명예교수는 "교장·교감 입장에서는 교사와 학부모의 문제인데 교사 입장에 섰다가 나중에 소송의 대상이 되고 상급기관 민원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개입을 안 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소재 모 교교 교사는 "교감이나 교장은 일이 터지는 경우 '명확하게 누가 잘못했다'라고 결정이 잘 안 나는 상황에서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오기 때문에 개입하기를 굉장히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까 모든 사건들을 덮으려고 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교장·교감이 학급 질서 유지 책임을 지고, 거의 대부분의 교육 활동 방해 행위에 대한 제재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전혀 행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건 덮기'에 급급한 학교…'학부모 갑질' 이어지는 악순환
결국 사건이 발생해도 학교에서 이를 덮기에 급급하다보니 '학부모 갑질'이 계속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광주교대 교육학과 박남기 교수는 "현재는 어떤 부당한 행위를 해도 학교가 대응을 하지 않고, 참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점점 과도한 민원이나 과도한 행동들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기창 명예교수는 "교사들의 교권뿐만 아니라 교장과 교감 등 관리자들의 리더십이나 통제력, 행정권이 회복돼야 학교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송경원 정의당 교육분야 정책위원은 "지금은 교사가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달라고 해도 교장·교감이 그냥 적당히 넘어가자는 분위기도 있다고 들었다"며 "교사가 요청하면 교권보호위원회를 곧바로 열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면,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교육부, 교권침해 교원 요청시 '학교교권보호위원회' 개최 의무화
이제서야 교육부는 교권을 침해당한 교사가 요청하면 교권보호위원회를 반드시 개최하도록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시행령 제15조 4항에는 학교교권보호위원회는 '학교장 또는 재적 위원 4분의 1이상'이 요청하는 경우나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소집하도록 돼 있다.
교권보호위원회는 교원의 교육활동과 관련된 분쟁의 조정 등을 위해 초·중·고교 설치돼 있지만 교권 침해 교사의 요청에도 잘 열리지 않는 등 제 기능을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