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재승인 의혹으로 기소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기일에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임기 두 달을 남겨놨던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면직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한 전 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고 점수 조작을 알면서도 관련한 경위 파악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 면직의 주된 이유였습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방송 공정성 침해라는 주장과 대통령 인사권이라는 주장이 맞붙었습니다.
한 전 위원장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이유로 들면서 면직 정지 신청을 냈습니다. 본안사건 결론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릴 텐데, 그동안 방송 공정성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는 거죠.
하지만 한 전 위원장이 내세운 '긴급성'에 대한 법원의 시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법원은 왜 이번 면직 처분으로 한 전 위원장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것은 인정하면서도, 면직 처분 집행을 막지 않은 걸까요?
윤석열은 살리고 한상혁 발목 잡은 잔여임기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강동혁 부장판사)는 우선 대통령의 면직 처분으로 한 전 위원장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점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면직되는 경우 신청인의 명예에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될 것이며, 2년간 변호사로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될 우려가 있는데, 이는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손해"라고 했죠.
그러면서도 "신청인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공공복리' 양자를 비교해 전자를 희생하더라도 후자를 옹호할 필요가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언급합니다.
법원은 이번 면직 처분으로 결과적으로 한 전 위원장의 명예가 훼손되고 변호사로서 일할 수 없게 된 상황인 것은 맞지만, 훼손된 공공복리의 정도가 더 크기 때문에 면직 처분에 대해 일시적으로나마 집행 정지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2023.6.23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방통위원장 면직 처분 집행정지 결정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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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TV조선 재심사 과정에서 특정사업자에게 불이익하고 편향된 결과가 초래된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재승인 심사 업무를 담당한 방통위 공무원 등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신청인(한상혁)도 심사 과정에서의 위법 행위로 인해 기소됨에 따라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였다. (중략) …신청인이 잔여 임기 동안 직무를 수행한다면 방통위 심의·의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뿐만 아니라 공무 집행의 공정성과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해될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할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고, 이 사건 처분의 효력을 유지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은 위 면직 처분으로 인해 신청인 개인이 입게 되는 손해보다 크다. 신청인의 잔여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만족적인 성질을 가지는 이 사건 효력 정지로 말미암아 이 사건 처분이 그 위법 여부에 관한 본안 판단 이전에 이미 무의미하게 될 수도 있다. |
한 전 위원장이 TV조선 재심사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본안소송 결론은 그의 잔여임기, 즉 두 달이 지난 다음에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결정이 나온 시점에서는 약 한 달 정도 임기가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면직 처분의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한 전 위원장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본안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 전 위원장으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점을 꼬집은 겁니다.
보통 집행정지 신청은 대부분 본안소송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받아들여져서 면직 대상자는 잔여임기를 채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전 위원장은 애꿎게도 임기를 대부분 채운 터라 오히려 신청이 기각된 거죠.
이쯤에서 검찰총장 시절 임기를 8개월 남기고 '2개월 정직'이라는 징계를 받았다가 법원이 집행정지를 받아들여 직무에 복귀한 윤석열 대통령 케이스가 스치면서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이 본안소송도 8개월 만에 끝날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윤 대통령은 총장 임기를 지켰습니다.
2020. 12. 1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 검찰총장 직무정지 명령 집행정지 신청 결정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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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검찰총장의 직무 집행정지가 지속될 경우 임기 만료 시까지 직무에서 배제되어 사실상 검찰총장을 해임하는 것과 같은 결과에 이르는데, 이는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 단임으로 정한 검찰청법 등 관련 법령의 취지를 몰각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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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법원은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총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봤고, 2023년 법원 역시 방통위의 사회적 신뢰와 공공성·공정성·독립성 자체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은 총장 임기를 보장받았고 한 전 위원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됐죠. 검찰의 독립성과 방송 독립성. 결론이 달라질 만큼 전자의 독립성이 후자보다 더 중요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윤 대통령은 정직이었고 한 전 위원장은 면직에 기소까지 된 판국이니, 단순 비교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다소 고개가 갸우뚱해진 부분이었습니다.
대통령은 부당하게 방통위원장을 잘랐을까
법원은 본질적인 부분에서도 한 전 위원장 주장의 핵심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한 전 위원장의 유·무죄 여부는 본안소송에서 다툴 부분이지만, "본안소송에서 충분히 심리해야 한다"고 전제를 붙인 뒤 그의 잘잘못을 어느 정도 따지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고요.
일단 한 전 위원장에 대한 비위 행위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절차를 위반해 가며 자기 사람을 심사위원 자리에 앉힌 것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점수조작 인식·은폐 지시 △재승인 유효기간을 임의로 단축 △허위 보도자료 배포입니다.
법원은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면서도 두 번째와 네 번째 비위 행위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명확하게 시시비비를 가렸습니다. 바로 "일부 비위 행위에 관한 처분 사유 부분이 일응 소명되어 실체적 정당성을 갖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죠.
2023. 6. 23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방통위원장 면직 처분 집행정지 결정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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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한상혁은 TV조선이 재승인 요건을 충족하는 점수를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뒤 과락 발생을 보고 받았다면 평가 점수가 사후 수정된 것을 인지했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그런데도 신청인(한상혁)은 사실관계 및 경위 조사하려는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중략)
오히려 과락이 발생한 심사 결과를 전제로 TV조선에 대한 청문 절차를 진행하도록 지시하고, 방통위 전체회의에 유효기간 3년의 조건부 재승인 안건을 상정하도록 지시… (중략) 형사 범죄 성립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방송 중립성 공정성 수호할 중대한 책무를 맡은 방통위원장으로서 그 직무를 방임하고 소속 직원에 대한 지휘·감독 의무 방기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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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무죄추정의 원칙과 방통위법을 어겨가면서 면직을 재가했다는 한 전 위원장의 주장 역시 '완패'라고 할 정도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2023. 6. 23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방통위원장 면직 처분 집행정지 결정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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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피신청인(대통령)은 감사원의 감사 자료, 검찰의 공소장 및 그외 청문 절차에서 제출된 여러 증거 자료와 청문 주재자와 신청인 대리인 간 문답 내용을 기초로 신청인(한상혁)에 대한 이 사건 처분을 했다. 그리고 피신청인이 여러 사정을 살펴, 신청인이 방통위법에 따른 직무상 의무 등을 위반한 점 등이 인정돼 면직 사유가 있다고 본 이상 같은 비위 행위로 공소제기된 관련 형사 사건이 아직 유죄로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면직 처분을 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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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이 뿐만 아닙니다. '방통위원장은 오직 국회 탄핵소추만으로 탄핵될 수 있다'는 한 전 위원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윤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부분은 법원이 '기타 사유'로 봤지만, 실제 심문 때에는 양측이 상당 시간을 들여 공방을 벌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2023. 6. 12 방통위원장 면직 처분 집행정지 신청 심문기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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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국회탄핵 소추 이외에는 방통위원장에게 직무배제할 수 없다, 즉 직무상 위반 이유를 처벌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피신청인(대통령)의 입장은 어떤가요.
대통령 측 변호인: 방통위법은 상임위원에 대해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위원을 위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위원의 임기, 신분 보장, 겸직 유지, 결격 사유 등에 대해 정하고 있을 뿐 위원장에 대한 신분 보장 규정은 없습니다. 위원장도 방통위법에서 정한 면직 처분의 대상이 되는 근거입니다. …(중략)
만일 신청인(한상혁)의 주장대로 해석한다면 위원장의 겸직 금지, 결격 사유 등 위원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정을 적용할 수 없게 되어 입법의 공백이 발생합니다.
재판부: 피신청인의 의견은 '위원장에게는 위원장 업무의 중요성에 비춰 별도로 탄핵소추가 추가된 것 뿐이다. 따라서 탄핵소추의 방법으로만 위원장의 직무를 배제할 수 있다는 신청인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는 거죠?
대통령 측 변호인: 하나 더 추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임명대상자에 대해 (임명권자가) 징계를 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탄핵소추 외에 징계권이 없다는 것은 헌법에 반하는 말입니다.
한상혁 측 변호인: 방송은 언론출판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것으로, 방통위는 그만큼 중요한 지위를 갖고 또 방통위원장이나 위원에 대해 상당한 신분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방통위법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중략)
신청인이 볼 때 지금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임기가 보장되어 있는 위원장의 직무를 박탈하게 될 경우 언론의 자유나 독립성에서 심각한 훼손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는 방통위법을 보면 위원장에 대해서는 6조 5항에서 탄핵소추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방통위원장의 면직에 있어 신중하게 처리하라는 차원에서, 위원장은 탄핵에 의해서만 (면직될 수 있다). 다만 피신청인 측에서 면직사유로 들고 있는것처럼 8조3호를 위원장도 위원의 일부이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하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8조1항의 규정에 비춰 법률위반의 정도가 상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범죄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게 과연 범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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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법을 구체적으로 뜯어보겠습니다. 이 법 제8조 1항은 '위원은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의사에 반하여 면직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법률에 따른 직무상 의무 위반이 규정돼 있고요. 같은법 제6조 5항은 '국회는 위원장이 그 직무를 집행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에는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법원의 해석은 어땠을까요? 얼핏 보면 한 전 위원장의 주장이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2023. 6. 23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방통위원장 면직 처분 집행정지 결정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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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방통위법은 방통위원장에 대해 국회가 탄핵소추할 수 있는 권한을 별도로 부여하고 있으나, 이는 행정부 수반에 의한 통제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국회에 의한 통제가 가능하도록 병행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일 뿐 신청인(한상혁) 주장과 같이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는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만이 가능하고 피신청인에 의한 면직이 불가능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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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환 기자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케이스를 생각해 볼까요? 국회에서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가결됐지만 윤 대통령이 이를 거부했죠. 그래서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내고 가결시킵니다. 행정부 수반에 의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국회가 권한 행사에 나선 거라고 볼 수 있죠. 방통위원장도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면직을 부당한 이유로 재가하지 않았다면, 그때 국회가 탄핵을 소추할 수 있다는 뜻으로 법원은 해석한 겁니다.
본안소송은 이제 막 시작한 만큼 예단은 금물이지만, 면직 처분의 적법성을 따져본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을 보면 한 전 위원장이 직무상 의무를 저버린 부분이 없지 않아 보이긴 합니다. 대통령 측 변호인 말대로 임명권자가 임명대상자를 면직하는 것은 인사권의 일부인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처분이 대통령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만으로 보이지 않는 까닭은 왜 일까요? 방송 중립성과 독립성을 어겼다는 이유로 한 전 위원장은 면직됐습니다. 그런데 방송 장악과 언론 통제의 상징으로 비판을 받아온 이동관 전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이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문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