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추경호 경제부총리에 이어 소비자단체들까지 원재료 가격이 크게 하락했음에도 가공식품 가격을 내리지 않는 식품업계의 행태를 지적하고 나섰다.
핵심 원재료 가격이 내렸으면, 공산품 가격도 내려가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전문가들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본질적인 목표와 사실상의 과점 시장 체제를 그 요인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원재료가 상승할 땐 재빠르게 가격 인상, 원재료가 하락할 땐 나몰라라 요지부동"이라며 "원재료가 하락도 소비자가에 빠르게 적용해야 한다"며 밀을 주 원재료로 하는 식품업계들을 비판했다. 단체는 올해 1분기 소맥 1kg 가격은 551억원으로 전분기 631원 대비 12.7% 하락했다며 지난해 국제 곡물 가격 인상을 이유로 일제히 가격을 올린 업체들이 가격 인하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적정하게 가격을 내리든지 해서 대응해달라'는 공개 지적까지 포함해 라면업계가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양상이다.
업계는 가격 인하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체감되는 수준의 인하가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한 번 오른 가격이 내릴 여지가 생기더라도 내려가지 않는 현상은 가공식품을 포함한 공산품 분야에서 빈번한 일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하방경직성이 강하다'고 표현하고, 하방경직성이 생기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먼저, 이윤 극대화라는 기업의 본질적 목표가 가격 인하 결정을 가로막고 있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을 바꾸는 행위 자체도 비용이 드는 일"이라며 "소비자가격을 올리는 쪽이라면 그래도 비용을 감수하고 돈을 더 벌 수 있지만, 낮추는 쪽은 변경 비용에 수익까지 줄어드니 훨씬 더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원부자재 비용, 물류·에너지 비용, 인건비 등을 고려해 새롭게 가격을 책정하는 일부터 각 납품 채널과의 장기간 협상과정 등 가격 변경 자체도 비용이 소모되는 일이기 때문에 가격 인하에는 적극적으로 나설 동기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잘 작동되지 않는 사실상의 과점 체제가 하방경직성을 더 강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대 경제학부 이정희 교수는 "상위 업체들의 일정한 점유율이 큰 변동 없이 굳어진 가공식품 업계에서는 가격을 인하해서 효과를 보기 어려운 구조"라며 "개별 상품 단가도 낮기 때문에 특정 업체가 가격을 내렸다고 해서 점유율을 늘리기도 힘들어 결국 수익을 높이기 위해 각 업체들이 가격을 높이는 쪽으로만 움직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제조 원가가 떨어지면, 가격을 낮춰 자사 제품에 대한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킬 법하지만, 이러한 전략이 실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이다. 가격을 10% 인하했다고 해도 경쟁 상품 대비 100원 안팎의 차이 밖에 나지 않는 특성 상 소비자들이 기존과 다른 선택을 할 이유가 적다. 특히, '대박' 신제품이 나오지 않는 이상 개별 브랜드나 상품에 대한 선호도는 굳건해 각 업체의 점유율도 큰 폭으로 변하지 않는다.
또 일상생활과 밀접한 탓에 가격이 올랐다고 수요가 크게 줄지도 않는다. 이에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시장 선도 업체가 다양한 요인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업체들도 가격을 따라 올리고, 인하 요인이 나타났을 때에는 함께 외면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이 사실상 대체할 상품 없이 얽매여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로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충격이 온 상황이므로, 기업들도 소비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의 인상 요인은 반영해야겠지만, 그것을 과대하게 활용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