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 credit Kaupo Kikkas. 빈체로 제공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27·줄리아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가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처음 공연한다.
오는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에서 리사이틀(독주회)를 여는 구스비는 19일 한남동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머니가 한국계라서 더욱 감개무량하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프로-아메리칸(Afro-American·미국의 흑인)인 구스비는 1996년 재일교포 3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권유로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는 "집에서 타이머를 켜고 매일 1시간씩 3번 연습했다. 대신 연습시간을 채우면 어머니가 비디오게임도 하고 만화도 보게 했다"고 말했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이차크 펄만과 캐서린 조를 사사한 구스비는 2020년 클래식 음반사 '데카'와 전속 계약을 맺고 2021년 데뷔 앨범 '루츠'(Roots), 2023년 첫 협주곡 앨범 '브루흐·프라이스'를 발매했다. 지난 1월부터 삼성문화재단에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후원받고 있다.
"새 악기 이름은 '타이거'에요. 제가 좋아하는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의 이름에서 따왔죠." 그러면서 골프와 바이올린 연주는 공통점이 많다고 했다. "두 가지 모두 날씨, 관람객 태도, 기분 등 예측할 수 없는 요소를 컨트롤하고,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 유사하죠."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스승 펄만에 대해서는 "테크닉 보다 음악으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깨닫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 credit Kaupo Kikkas. 빈체로 제공 구스비는 공연할 때나 음반을 녹음할 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로-아메리칸 작곡가의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데뷔 앨범 '루츠'는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작품을 세계 초연 녹음했고, 자비에 폴리의 위촉곡을 담았다. 모두 아프로-아메리칸이다.
그는 "바이올린을 처음 배운 7세부터 14세까지 아프로-아메리칸 작곡가의 작품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서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벌어졌죠. 이 과정에서 클래식 음악계에서 아프로-아메리칸이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구스비는 "유명한 곡과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로-아메리칸 작곡가의 작품은 출판된 악보를 구하는 게 어려웠고 자필 악보도 대부분 소실됐다"고 했다. 하지만 "자주 연주되지 않은 곡에 대한 해석이 부족한 건 신나는 일"이라고 했다. "정해진 해석과 연주법이 없으니까 오히려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죠."
이번 공연에서는 릴리 불랑제 '두 개의 소품',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윌리엄 그랜드 스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등을 들려준다. "라벨의 작품은 블루스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베토벤은 이 작품을 아프로-아메리칸에게 헌정했죠."
음악가로서 구스비의 목표는 뭘까. "우선 오래 연주하고 싶고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평을 넓히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클래식 음악은 백인과 부유한 노인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는데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