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소비문화 조성을 통한 지속 가능한 K팝 기후 대응 방안 모색 포럼'이 20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사진은 랜덤 포토카드와 무분별한 앨범 종수 늘리기 등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팻말 모습. 연합뉴스무작위(랜덤) 포토카드를 넣어 마치 확률형 아이템처럼 앨범의 성격을 바꿔버리고, 중복 구매를 조장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향해, K팝 팬들이 지나친 상술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K팝 팬 단체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과 환노위 소속 김소희(국민의힘)-김태선(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미래소비자행동, (사)소비자권익포럼이 공동 주최한 '올바른 소비문화 조성을 통한 지속 가능한 K팝 기후 대응 방안 모색 포럼'이 20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케이팝포플래닛 김나연 캠페이너는 지나친 앨범 중복 구매를 유도하는 엔터사의 상술을 비판하는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캠페인을 먼저 소개했다. 전 세계 팬 1만 명이 넘는 청원을 받았고, 국내 팬들로부터 8천 장이 넘는 앨범을 받아 생산·판매자인 엔터테인먼트사에 반환하는가 하면, 국회 포럼을 열어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한 바 있다.
캠페인 이후 하이브는 디지털 플랫폼 앨범을 내고, JYP엔터테인먼트는 엔터사 최초로 한국형 RE100을 이행했으며, SM과 YG엔터테인먼트는 친환경 소재로 앨범을 제작하는 변화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4대 기획사는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리포트를 발간하고 있기도 하다.
김나연 캠페이너는 "(엔터사가) 기후 위기를 신경 쓰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이기도 하지만, 플라스틱 앨범 쓰레기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이 올해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한 이유다. 소재나 형태를 달리해서 앨범을 내는 것 정도로는 근본적인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종수를 늘린 앨범은 더 많은 생산으로 이어지고, 그만큼 더 많은 '폐기물'을 낳는다. 앨범의 중복 구매는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환경 문제로 직결된다. CD는 자연분해까지 100년이 넘게 걸리는 플라스틱으로, 소각해야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유독가스가 발생한다. 포장재는 폴리염화비닐(PVC)로 돼 있는데 염소 성분이 포함돼 연소 시 독성가스를 배출하고 재활용도 어렵다.
케이팝포플래닛 제공"아무도 CD를 듣지 않는 시대"라고 운을 뗀 김 캠페이너는 써클차트 조사 결과 지난해 앨범 판매량이 전년 대비 50% 넘게 성장해 1억 장을 넘긴 것을 언급하며 "중복 구매를 조장하는 상술이 없어지지 않는 한, 플랫폼 앨범 등도 모두 불필요하게 생산돼 버려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는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라고 꼬집었다. 그린워싱이란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상품의 친환경적인 특성을 과장하는 행태를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발매 첫 주 앨범 판매량이 K팝 아이돌보다 훨씬 적은 것을 두고도 김 캠페이너는 "앨범 판매량이 정말 기형적이라는 걸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도 앨범 표지를 다양화하는 등 앨범 종수를 늘리고 있다고 거론한 후, "K팝 앨범 마케팅이 성공하면서 (이런) 반환경적인 마케팅이 해외로 소개되고 퍼져나가는 것은 정말 부끄럽다"라고 비판했다.
영상으로 참석한 뮤직 서스테이너빌리티 얼라이언스(MSA)의 커트 랭어 상임이사는 "음반 산업에서 화석연료 기반 플라스틱 사용량은 1977년 5800㎏에서 2016년 800㎏으로 줄었으나 그 수치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앨범을 다양한 버전으로 출시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2010년대 K팝에서 시작된 관행"이라며 "2022년 2분기부터 (앨범 종수가) 증가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앨범 종수가 1~5개 선이었다면 그 후로는 10~15개가 넘어간다"라고 설명했다.
커트 랭어 이사는 "2024년 상반기 빌보드 차트 '톱10' 앨범은 평균 22가지 버전으로 출시됐다. K팝 마케팅 트렌드로 대중화된 관행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 음악 산업은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엘레노어 앤더슨 상임이사는 "앨범 표지, 포장, 곡 목록을 변형하거나 포토카드 등 수집용 아이템을 다르게 넣어 플라스틱 소비를 줄여야 하는 방향에 역행한다"라고 짚었다.
하지만 앨범 판매량은 랜덤 포토카드, 팬 사인회 응모, 각종 기록과 수상과 직결돼 있어 팬들이 '알아서 불매'하기도 쉽지 않다. 김 캠페이너는 엔터사가 "(팬들의)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마음을 저당잡아 착취하고 있다"라며 "다들 이게 문제임을 알지만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피해가 갈까 봐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영국을 대표하는 오피셜 차트는 '앨범 관련 무료 선물이 두 개 이상이고 소비자가 앨범을 산 후에야 그게 어떤 선물인지 알 수 있는 경우, 해당 앨범이 차트 집계에 포함되려면 허용된 무료 선물의 전체 세트를 앨범과 별도로 구매하거나 앨범 한 개와 함께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규정을 둔다. 따라서 국내에서 흔한 '랜덤 포토카드 앨범'은 영국 오피셜 차트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케이팝포플래닛 설명이다.
엔터테인먼트사에서 팬 사인회 당첨 기준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K팝 팬덤 사이에서는 더 많이 앨범을 살수록 팬 사인회 당첨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믿음이 공유되고 있고 과도한 지출이 발생한다고 케이팝포플래닛은 지적했다. 김수정 기자커트 랭어 이사는 재생 소재나 생물 기반 플라스틱, 해양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소재 등 PVC를 대체할 고품질 소재가 2020년부터 등장했다며, 이는 제작 과정에 더 적은 에너지가 들고 쉽게 분해되며 향후 새 앨범으로 재활용되는 장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빌리 아일리시, 콜드플레이, 메탈리카, 라디오헤드, 1975 등이 이런 '친환경 바이닐'을 내는 추세다.
앨범 판매량이 높은 아티스트가 이런 움직임을 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커트 랭어 이사는 "혁신과 확장성 측면에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친환경 바이닐에 특화된 새로운 음반 제조 공장을 늘려갈 기회"라고 바라봤다.
기후 위기 메시지를 띄우고 자전거 타기와 춤추기 등으로 관객들이 에너지를 공급하게 하는 공연을 연 콜드플레이, 올해 8월 세계 최저 수준의 탄소 배출량을 기록한 공연을 연 매시브어택, 관객에게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고 차량 공유 옵션을 제공하며 재활용 가능한 굿즈(기획 상품)와 100% 재활용 바이닐을 쓴 음반을 낸 빌리 아일리시의 사례도 참고 사례로 전했다.
4대 엔터사를 포함한 기획사를 회원으로 둔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의 최광호 사무총장은 앨범 판매와 관련해 '환경'과 '소비자 보호' 두 가지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폈다. 최 사무총장은 "4대 기획사는 상장사라서 매년 재무적으로 성장해야 하기에, 코로나 시기에 고육지책으로 여러 시도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피지컬(실물) 세일즈(판매)가 높게 책정되지 않았다면 K팝 산업은 거의 고사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마케팅 상술이나 차트에 관해 책임감을 느끼고, (문제 제기에) 공감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라며 "개선점 논의를 내부적으로 하고 있고, 그 부분을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자율규제, 팬들과의 교감 이야기도 나오는데 내부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K팝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 사무총장은 플라스틱 폐기물 사안에서 K팝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을 근거로, "(환경오염 관련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져서 시장이 다운 사이징됐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