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전 전시장 풍경. 연합뉴스 미술관이 단순히 작품을 보는 전시를 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관람객은 실제 게임을 하고 명상에 잠긴다. 국보로 지정된 병풍을 가상현실(VR)에서 즐기고 공감각적 경험을 하기도 하다. 이같은 시도는 높게만 느껴지는 미술관 문턱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게임사회전에 놓인 게임기 팩맨.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게임사회'전. 누군가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게임을 시작하자 20대 남녀 관람객 20여 명이 금세 게임기 주변을 에워쌌다. 모두 숨죽인 채 화면을 응시했고 잠시 후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흡사 오락실 같은 풍경이다.
'게임사회'전은 '게임이 미술관에서 어떤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펼쳐 보인다. 이미 게임은 예술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만큼 게임의 문법과 기술을 적용한 현대미술 작품 30여 점과 실제 게임 9점을 같은 공간에 동등하게 배치했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직접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팩맨, 헤일로 2600, 플라워처럼 직관적이고 빨리 끝나는 게임을 선호한다. 다만 미술관 내 전시장에서 게임을 하는 건 낯선 경험인 만큼 관람객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전시를 기획한 홍이지 학예연구사는 CBS노컷뉴스에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정형적이고 관람 문법이 체화됐다. 그래서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익숙한 게임을 보고 반가워서 선뜻 해보는 사람도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각각의 게임기 옆에는 뒷거울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다음 사람을 배려해주세요'라는 문구를 새겼다. 홍 학예연구사는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게임을 하기 때문에 긴장하고 어색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색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다원예술 2023-전자적 숲; 소진된 인간'전 1부 백남준과 함께 전자명상하기 중 첫 번째 명상법 침묵과 소리로 백남준을 만나다 전시장. 블루부처를 감상하면서 명상하는 프로그램이다. 문수경 기자 바로 옆 전시장에서 개최하고 있는 '다원예술 2023-전자적 숲; 소진된 인간'전(총 4부)은 명상을 접목했다. 피로사회, 성과중심사회에 살면서 마음의 평온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한 전시다.
총 4부 중 1부 '백남준과 함께 전자명상하기'는 백남준의 '블루부처'(1992/1996)와 '필름을 위한 선'(1964)이 발산하는 여러 신호에 상응하는 5가지 명상법을 제공한다.
기자가 참여한 '침묵과 소리로 백남준을 만나다'(1부 중 첫 번째 명상법)는 50여 분간 진행됐다. 캄캄한 전시장에 들어서자 '블루부처'가 관람객을 반겼다. 네온사인이 감싸진 4개의 텔레비전이 흡사 가부좌를 튼 부처를 연상시켰다. 김완두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장의 지도 아래 '블루부처'에서 나오는 전자 소음에 집중했다.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졌고 이내 졸음이 쏟아졌다.
전시 기획자인 성용희 학예연구사는 "백남준 작가는 관람객이 자신의 작품을 몰입해서 보기를 원했지만 요즘 미술관이 관객도 작품 수도 많다 보니 쉽지 않다"며 "명상을 접목한 전시가 작품과 온전하게 시간을 보내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고 '블루부처'는 전자 소음의 몽타주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평소 마음이 힘들었던 분들이 전시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준다. 시간적 흐름을 못 느끼겠다는 분도 있고 주무시는 분도 있다"며 "명상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은 스님, 수녀님들도 참여했다"고 귀띔했다.
환기미술관 '뮤지엄 가이드'전에서 시민참여자들이 향을 제작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문수경 기자 김환기 탄생 110주년을 기념한 환기미술관 특별기획전 '뮤지엄 가이드'에서는 공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시민참여형 배리어프리 전시'를 표방하는 '뮤지엄 가이드'는 △예술의 향(본관) △예술가의 방(달관) △예술의 결(별관) △야외 예술정원으로 구성됐다. 미술관 곳곳에서 시각·청각·후각·촉각 경험을 제공한다.
전시장 바닥에는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음·영상 해설 큐알코드를 부착했다. 사진과 글로 정리한 김환기의 일대기와 별도로 사진을 촉각 콘텐츠로 제작하고 점자 연보를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작품을 낮게 거는 등 어린이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본관 3층에 들어서자 소리와 향이 자연스럽게 공간을 감돌았다. 소리는 조용욱 음악감독이 만들었고 향은 시민 32명이 조향 워크샵에서 김환기의 점면점화 '에어 앤 사운드'를 감상한 뒤 수집한 '감상 단어'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김환기의 뉴욕 스튜디오를 재현한 '예술가의 방' 역시 당시 분위기를 소리와 향취로 재해석했다. 김환기의 삶에서 채집한 소리들과 그의 예술 세계가 퇴적된 듯한 자연의 향이 교감의 깊이를 더해줬다. 정재은 학예사는 "출발점은 시각장애인이었지만 비장애인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며 "미술관의 물리적 환경은 단기간에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시민참여자들의 도움을 받아 공감각적 전시를 꾸렸다"고 말했다.
권하윤 작가의 '영원한 음직임, 이상한 행렬'전. 삼성문화재단 제공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권하윤 작가의 '영원한 움직임-이상한 행렬'전에서는 김홍도의 '군선도'(국보 제139호)를 VR(가상현실)에서 체험할 수 있다. VR기기를 착용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관람객은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다. 우주 공간과 1940년대 유럽, 신선들의 모습이 이어지며 전혀 다른 시공간을 경험한다.
가상현실에 기반한 영상작업을 해오고 있는 권 작가는 "우주 속의 별, 지구 반대편에서 길을 떠나는 피난민, 향연으로 가는 신선들의 모든 세상이 움직이는 발자국이라는 동작 하나로 연결되는 인간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리움미술관 관계자는 "사전예약제로 진행하는 전시(1일 총 8회)의 하루 평균 관람객이 150여 명 정도고 이중 외국인이 절반이다. 색다르고 놀랍다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