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달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감사원 전원위원회(대심)에 출석해 의견 진술을 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류영주 기자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위법, 부당 행위'를 찾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오히려 감사원 지도부가 전 위원장에 대해 '엉터리 수사' 요청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유병호 사무총장 등 감사원 관계자들에 대한 직권남용이나 무고 혐의 등에 대한 공수처의 집중적인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감사위원회는 지난 1일 전원회의를 열어 전현희 위원장에 대한 사무국 감사 결과를 논의한 끝에 전 위원장에 대한 8개 핵심 쟁점에 대해 '불문' 조치를 결정했다. 불문 조치란 개인적으로 책임이 없고, 위법 부당한 행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위)>에서 보듯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 혐의는 모두 8개 항목으로 정리된다. 전 위원장의 출퇴근을 포함한 근태 문제,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이해충돌 유권해석과 관련한 쟁점 3개 항, 서해공무원 사건 유권해석 관련 1개항 그리고 전 위원장의 감사방해 2개 항, 마지막으로 갑질 간부에 대한 탄원서 제출 1개 항이다.
감사원 감사위원회의는 8개 항에 대한 전 위원장의 귀책 책임에서 모두 '불문' 조치를 결정했다.
다만 감사위원회는 8항의 탄원서 제출 쟁점에 대해선 "부적절하다"며 기관 주의 조치를 내렸다. 기관 주의 조치도 "위법 부당하다"는 것이 아니고 "부적절하다"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기관 경고조차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미다.
감사원이 수사 의뢰한 6건 모두 '불문' 조치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말, 1항 출퇴근과 8항 탄원서 쟁점을 제외한 나머지 6개 항에 대해 전 위원장의 책임을 물어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을 했다. 추미애 전 장관 이해충돌 유권해석 관련 2항의 보도자료와 3항의 보도자료는 지난해 9월 16일 같은 날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보도자료 건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0년 9월 16일 배포한 보도설명자료
2항과 3항 보도자료는 추미애 전 장관의 (법무장관으로서) 직무와 아들(군 복무 중 휴가 논란)수사 건에 대한 직무상 이해충돌에 관한 권익위 입장이다. 당시 권익위는 "이해 충돌이 없다"라고 판단했는데 "사실 관계 해석을 거쳐 유권해석을 했고, 그 해석도 전적으로 담당 실무진의 판단 결과"라고 발표했다. 권익위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추 전 장관이 아들 사건과 관련 지휘권 등을 행사했는지 확인했고 대검은 '그런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감사원은 그러나 전 위원장이 실무진에게 "허위로 보도자료를 내게 했다"고 주장했다. 전 위원장이 보도자료 작성에 직접 관여했고 이 과정에서 허위공문서 작성을 하도록 했다는 것으로 혐의로는 이른바 '허위공문서작성동행사'가 된다.
그러나 전 위원장은 "간부들과 함께 수렴한 권익위 회의 내용을 실무자가 다른 직원들에게 메일을 발송하면서 '보도자료(위원장님 작성)'라고 제목을 잘못 쓰는 바람에 그런 '오해'가 생겼다"며 "그 자료는 해당 실무자의 컴퓨터에 그대로 저장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위 보도자료에선 "'전적으로' 담당실무진의 판단 결과"라는 부분에서 '전적으로'라는 표현이 쟁점이 됐다. 감사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내는 과정에서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논의해 '방침'을 결정했고, 실무진은 그 방침에 따라 보도자료를 직접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전 위원장이 보도자료 작성에 직접 개입했다는 감사원 사무국 주장을 탄핵한 것이다.
다만 감사위원회는 3항 보도자료 작성 부분에 대해 전 위원장에게 직접 책임을 묻지 않고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감사보고서에 관련 사실만 기술하기로 했다. '전적으로'라는 말이 '비록 허위는 아니지만 보도자료 상에서 표현이 부적절했다'라는 취지이다.
4항은 전 의원장이 추 전 장관의 이해충돌 유권해석 건에서 라디오 방송 시사프로에 '담당국장'을 시켜 허위로 인터뷰하게 했다는 것이다. 즉,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담당국장을 제외한 다른 관련 직원으로부터 "허위로 인터뷰하게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지 못했다. 결국 이 부분도 담당국장의 허위 진술로 판명됐다.
지난해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5항은 2022년 7월 27일, 국회 정무위 출석 후 점심 식사 때 일어난 사건이다. 그날 국회 정무위는 서해공무원 사건을 다뤘다. 서해 사건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구하는 국민의힘 의원 질타에 대해 전 위원장은 "권익위가 사건의 사실 관계를 잘 몰라 (유권)해석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 감사원은 이같은 결정을 전 위원장이 했고 담당국장에게 강요했다며 강요 미수로 고발했다. 이는 담당국장의 일방 주장으로 정리됐다.
이어진 전 위원장과 국회에 출석한 권익위 간부들이 여의도 부근 '미역국집'에서 한 점심도 문제가 됐다. 그 자리에서 전 위원장이 (불만을 품고) 담당국장을 숟가락을 치며 질책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CCTV를 확보해 조사한 결과 숟가락을 내려 치거나 화를 내는 장면은 목격되지 않았다.
6항과 7항 감사방해는 별다른 쟁점이 되지 못했다.
8항 탄원서는 당시 권익위 모 국장이 직원에게 갑질을 한 사건이다. 담당 국장의 갑질이 인정돼 중앙징계위에서 정직 3개월 징계가 확정되자 이 국장은 소청 심사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전 위원장과 간부직원들이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권익과 인권을 다루는 부처의 장으로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것이다. 감사위원회는 전 위원장이 직원들의 요청으로 탄원서에 사인을 한 점 등을 들어 개인적으로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며 "부적절하다"라고 기관 주의 결정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감사원이 수사의뢰한 6개 항 중 1개 항만 '부적절하다'고 기관 주의가 내려졌을 뿐 모두 전 위원장의 개인 책임에선 모두 '불문'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감사원 수사요청 모두 엉터리…'위법 부당'이 없는데도 무리수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는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달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감사원 전원위원회(대심)에 출석해 의견 진술을 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류영주 기자감사위원회 결정으로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원 수사 요청은 모두 엉터리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개인 조치에서 '불문' 결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기관 주의조차도 '불법·부당'이 아닌 "부적절했다"는 내용 뿐이다.
더욱이 불문 결정은 감사 보고서에 관련 사실과 내용을 적시할 수 없도록 돼있다. 감사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불문 조치가 내려지면 감사 보고서에서 관련 내용을 아예 빼야 한다고 말했다. 불문 결정이 비위 사실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을 감사보고서에 기술하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원 대변인실은 지난 2일 "감사위원회는 제보내용을 안건 별로 심의하며 권익위원장 및 권익위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해 권익위원장에게 기관주의 형태로 조치할 예정이며, 정무직이고 이미 수사 요청된 점 등을 고려해 감사보고서에 관련 내용 등은 서술될 예정"이라고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변인실 문자에서 "권익위원장 및 권익위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해.."라고 적시한 것은 사실과 명백히 다르다. 즉, 감사위원회 결정은 개인 조치는 '불문'이고, 기관 주의 조차도 "부적절했다"라는 것이 전부이다. 역으로 감사위원회 결정을 호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감사원 사무국 감사가 완전히 실패한 무리한 감사였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 자체로 무고죄가 성립할 수 있다.
'위법·부당한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원 지도부가 이를 감사보고서에 적시한다면 명예훼손 죄에 해당할 수 있다.
더욱이 대변인실이 문자를 보낸 날, 유병호 사무총장은 동시에 지휘서신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 사무총장은 '앞으로 기관 감사에서 보도자료를 허위로 작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중대 감사로 취급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내로남불'에 해당한다. 전 위원장의 보도자료 작성부문에서 모두 '불문' 조치가 내려졌음에도 감사원 대변인실 문자는 "권익위원장 및 권익위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해.. 감사보고서에 관련 내용을 서술할 예정"이라며 '위법부당한 행위'라고 어긋난 규정을 하고 있다. 감사원 스스로 감사위원회 결정을 뒤엎고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고 있는 셈이다.
감사원 수사요청은 절차적으로도 수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사원 규정에 따르면 수사요청은 일반적으로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감사 대상자가)도주 우려가 있거나 △증거 인멸 우려가 있거나 △당사자 본인 조사가 어렵거나 △범죄 혐의가 있거나 △긴급성이 있을 때이다. 전 위원장의 경우 5개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수사요청을 하려면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했지만 수사요청은 사무국 직권으로 결정됐다.
감사원의 엉터리 수사요청과 그 경위, 그리고 수사요청 절차 부분 등에서 공수처의 집중적인 강제 수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해석이 많다.
다만, 감사위원회는 1항의 전현희 위원장 근태 문제에 대해선 감사보고서에 사실 관계만 명시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특히 감사위원회에서도 장관의 출퇴근 문제가 논란이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차관의 출퇴근을 지정하고 규율할 수 있는가에 대한 현실적 문제의식이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만일 전 위원장 출퇴근 문제를 삼는다면 현재 다른 장관들도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전현희 위원장은 "감사원이 감사방해라고 한 것도 '직원들보다 나를 먼저 조사해달라' 했는데 감사원이 대꾸도 안하다가 갑자기 감사방해라 몰고 갔다"며 "특히 감사위원회가 '불문' 조치를 내렸는데도 감사원 대변인 문자에서 '위법·부당한 행위가 있다'라고 적시한 것은 사실과 달라 명백히 무고에 해당하며 필요한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장 발언 자르고 끼어들고…' 유병호의 '안하무인' 태도 논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해 10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왼쪽은 최재해 감사원장. 윤창원 기자감사위원회에 참석한 유병호 사무총장의 돌발적인 행태를 놓고 감사원 내부에서 충격과 당혹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유 사무총장은 이날 회의에서 최재해 원장의 발언을 뚝뚝 끊거나 제지하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서슴지 않는 등 최 원장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감사원 내에서는 "유 사무총장에 대한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는 개탄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한마디로 안하무인이었다"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관계자들은 "최 원장이 아무리 '생계형 원장'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지휘력이 없다지만 사무총장이 원장 말을 제지하고 끼어들고 하는 모습에서 비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유 사무총장이 강압적 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한 감사위원은 어느 쟁점에서 '입장'을 돌연 변경했다는 말까지 새어 나왔다.
또 "국감 때 (유병호 사무총장을) 봤던 장면을 짐작하면 되는데, 그 상상 이상이었다"며 "헌법기관 사무총장이라는 분이 회의에 그렇게 임할 수 있는지 충격이었다"고 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