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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소환된 날개 단 '천리마'와 '만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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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광명성 실은 은하→2023년 만리경 탑재한 천리마
'고난의 천리를 가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는 통치담론 투영
전문가 "정찰위성, 고난극복·행복위한 미래비전…발사성공에 더욱 집착"

북한이 지난달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 연합뉴스북한이 지난달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 연합뉴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명마이다. 전설이나 설화라고 해도 날개가 달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천리마를 형상화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페가수스처럼 날개를 달게 했다.
 
평양 모란봉 구역 모란봉 공원에 있는 천리마동상은 지난 1961년 4월 15일에 준공됐다. 김일성의 생일에 동상 준공을 맞춘 것이다.
 
이 천리마동상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붉은 편지를 치켜들고 있는 남성 노동자와 볏단을 안은 여성 농민이 날개를 펼친 천리마를 타고 하늘로 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 강대국인 소련과 중국이 북한 내 친소파와 친중파를 고리로 내정에 개입한 1956년 8월 전원회의 사건의 흉흉한 여파 속에 천리마운동과 천리마작업반 운동을 이어가며 북한판 경제 기적을 일군 당시 상황을 '날개 단 천리마의 기세'로 형상화한 것이다. 
 
60년대의 이 천리마를 북한은 지난 달 31일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며 소환했다.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탑재한 신형 로켓이 바로 천리마 1형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021년 8차 당 대회에서 군사정찰위성의 개발을 지시한 뒤 2년 넘게 준비를 했지만 허망하게도 결과는 실패였다. 
 
북한은 위성 발사와 관련해 뼈아픈 기억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숨지고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뒤 2012년 4월 13일 정권 출범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위성을 발사했으나 공중 폭발하고 말았다. 
 
이 때 위성 광명성 3호를 싣고 하늘로 난 것이 장거리 로켓 '은하 3호'이다. 광명성이 김정일을 뜻하는 것이라면 은하는 김정은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발사 실패 후 8개월 뒤 북한은 광명성 3호 2호기를 탑재한 은하 3호를 발사해 결국 궤도 진입에는 성공하기에 이른다. 
 
광명성을 탑재한 로켓 은하. 지구와의 연락이 끊긴 죽은 위성이지만 아들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을 모시고 우주로 날았다는 식으로 3대 세습을 정당화하는 선전에 활용됐다.
 
북한의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2014년 3월 29일 중국 샹강신문에 실린 '북조선이 사랑의 위성을 발사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번역 소개했다. 중국 신문은 "은하는 조선어로 은하수를 의미할 뿐 아니라 김정은 최고령도자께서 조상대대의 맑은 아침의 나라를 무궁번영에로 이끌 하늘이 낸 정치가이시라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 신문은 "광명성 3호의 성과적 발사는 북조선이 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호랑이로, 경제 강국 구락부의 새 성원으로 되리라는 것을 긍지높이 선언하고 강조하는 계기로 될 것"이라며, "미국과의 노골적인 적대관계와 미국의 범죄적인 제재가 지속되어 온 북조선에서 모든 것이 부족한 조건에서 위성발사는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집권한지 11년이 넘은 현 시점에서 '김정일과 김정은', '광명성과 은하'의 비유는 그다지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등장한 것이 천리마 1형과 만리경 1호이다. 1만리를 내다본다는 군사정찰위성을 천리마에 태워 우주로 발사하는 그림을 연상시킨다.
 
위성 그 자체의 목적만이 아니라 위성 발사를 통해 피폐한 삶의 인민들에게 현실의 어려움을 참고 애국심을 고취하도록 하는 의도는 이름이 바뀌었어도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에는 명색이나마 평화적 목적의 지구관측위성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지만, 지금은 "미국과 그 추종무력들의 위험한 군사행동을 실시간으로 추적, 감시, 판별하고 사전억제 및 대비하며 공화국 무력의 군사적 준비 태세를 강화하는데서 필수 불가결한" 군사정찰위성임을 노골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최근 '고난의 천리를 가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는 구호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봉쇄와 장기적인 대북제재에 따른 어려움 속에서도 미국 등 외부세계에 책임을 돌리며 인민들을 동원하는 통치 구호의 하나이다.
 
군사정찰위성과 운반로켓에 만리경과 천리마라는 이름을 붙여 발사하는데도 이런 식의 고난극복 담론이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60년대의 천리마운동처럼 천리마를 탄 기세로 '국난'으로까지 불리는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천리마와 만리경은 핵미사일과 함께 북한 인민들에게 제시된 미래 비전이다. 핵 강국이자 우주 강국이라는 비전은 김정은이 강조하는 '우리국가제일주의'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1차 발사 실패가 북한에는 '엄중'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김여정이 예고한 2차 발사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차 발사마저 실패하면 수령의 면모는 분명히 깎일 것이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고난의 천리, 행복의 만리'라는 구호처럼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취지로 운반로켓과 군사정찰위성에 천리마와 만리경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사했다고 본다"며, "군사정찰위성은 대북제제 속에 모든 것이 부족한 북한에서 고난 극복과 행복을 향한 미래 비전을 상징하기 때문에 더욱 더 재 발사의 성공에 집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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