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세사기와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전세사기 특별법이 일주일 넘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토교통위 소위원회에서 표류할 전망이다.
인천시 미추홀구 피해자의 연이은 사망 소식 이후 여야가 앞다투어 "조속한 입법"을 외쳤지만, 법안 논의가 시작되자 기존 입장만을 고수하는 행태를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정부 늑장대응 끝에 국토위서 특별법 논의 시작됐지만
국토위는 지난 1일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민의힘 김정재,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정의당 심상정 3명의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에 대한 병합 심사를 개시했다.
지난해 전세사기 사태가 불거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전세사기 관리를 지시한 지 9개월 여만에 여야가 상임위에서 머리를 맞댄 것이다.
그간 주무부처인 정부가 여러차례 범정부 대책 발표를 통해 전세사기 방지방안,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방안 등 각종 방안을 마련했지만 핵심 내용인 전세보증금 반환, 안정적인 주거 확보 등은 다루지 못한 탓에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달 17일 숨진 채 발견된 전세사기 피해자 30대 A씨의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 현관문 모습. 황진환 기자특히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법무부 등 관련 부처들은 부처 간 칸막이를 이유로 지원책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는데, 이 사이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피해자들이 연이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윤 대통령의 피해주택에 대한 경·공매 중단·유예를 지시에 정부가 신속하게 우선매수권과 공공임대를 골자로 한 방안을 마련하면서, 이미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과 더불어 특별법 제정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었다.
여야 기존 방안 고수에 소위에서만 일주일 넘게 발목
지난달 28일 3개 법안이 국토위에 상정되면서 특별법이 이번 주 내에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기대와 달리 법안은 여전히 국토위 소위에 머물고 있다.
여야가 서로 상대가 제시한 법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안은 피해자들에게 피해주택 경·공매 시 이를 우선적으로 낙찰받을 수 있는 우선매수권을 주고, 피해자가 매입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우선매수권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넘겨 공공임대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반면 야당안은 피해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세보증금 반환인 만큼 피해주택 매입이나 주거지 안정보다는 공공이 전세보증금 채권을 매입해서 일정 부분이라도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에 정부여당은 사인 간 발생한 사기 사건에 정부가 직접 개입해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것은 다른 경제적 피해 발생 사건 대응과의 형평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물론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채권 매입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미반환을 구제하라', '보증금을 국가가 돌려주라'고 하는 데 대해서는 어떤 정부(부처)도 그런 입법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 확고한 범정부적 합의"라며 "집단적으로 여론몰이를 한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반면 민주당 소속 국토위원인 맹성규 의원은 "특별법을 왜 만드는 것인가. 취지에 맞게 지원 대상을 넓히고 (지원의) 폭을 깊게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그것이 우리 당의 취지이고, 그래서 보증금 반환 요구로 간 것인 만큼 정부도 다른 안을 가져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여당안을 지적했다.
여야 평행선에 피해자들 불안은 지속…"전향적인 모습으로 빠르게 입법해야" 지적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논의를 위한 전체회의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법률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여야 국토위원들은 주말까지 내내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주 내 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 가정의 달 관련 주요 행사가 모두 이번 주말에 몰려있어 지역구를 관리해야 하는 의원들로서는 행사 참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들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불안함 속에 맞이하게 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여야가 다음 주 내에는 어떤 식으로든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국토위 관계자는 "이미 정부여당은 우선매수권을 인정하는 과정과 피해자 인정 요건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지원 범위를 넓히는 모습을 보였고, 야당도 채권매입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며 "서로가 물러설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만큼 피해자들을 생각해서라도 빠르게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