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간호사 근무여건 및 처우 개선책을 담은 제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조 장관은 전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간호법 관련 질문을 받고 "간호법을 제정하는 것만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 회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박종민 기자의료계 최대 현안인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부가 간호사 근무 환경 개선방향을 담은 '제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안)'을 내놨다. 당초 '간호사의 날'인 내달 12일로 예정돼 있던 발표를 앞당긴 데엔 간호법을 둘러싼 직역단체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상급종합병원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돌볼 수 있도록 인력을 늘리고, 정부와 간호계가 참여하는 '간호인력 수급위원회'를 통해 간호대 입학정원을 확대하겠다는 게 골자다. 또 신규 간호사가 업무에 원활히 적응할 수 있도록 1년간의 임상 교육·훈련 체계도 도입하기로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복지부 제공복지부는 2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조규홍 장관의 브리핑을 통해 이같은 방안을 발표했다. 조 장관은 "지난 5개월간 현장의 간호사, 간호조무사, 간호학계의 전문가, 그리고 대한간호협회(간협),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이 제안한 사항을 기초로 많은 논의를 거쳐 만든 방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현장에서 헌신해 오신 간호인력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정책의지를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간호인력은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365일 24시간 돌보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필수 인력"이라며
"질 높은 간호인력을 양성하고 의료현장에서 전문성을 키워나가며 장기간 근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고 부연했다.
정부는
'좋은 근무환경과 장기근속으로 양질의 간호서비스 제공'을 이번 대책의 목표로 제시했다. 먼저 간호수요 예측 등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입학정원을 결정하겠다며, '한시적으로' 간호대 입학정원 확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제공정부는
복지부·교육부 외 간협, 병원계(대형 및 중소병원),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전문연구기관 등이 참여하는 간호인력 수급위원회를 꾸려 입학정원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학의 학사편입 과정은 '간호학사 편입집중과정' 중심으로 개편·지원한다.
학위 취득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기 위한 별도의 교육과정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인력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병원의 간호사 채용 여건도 개선한다. 정부는
일정 수준의 간호등급 이상인 비수도권 병원을 대상으로 '지역 가산' 등 수가 지원을 검토하기로 했다.
간호사 대상 공중보건장학제도는 지속적인 확대를 검토한다. 간호사 관련 각종 지원대책도 지방 중소병원부터 우선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과다 채용·순차 임용 관행 또한 개선에 나선다. 복지부는
'대기 순번제 개선 가이드라인'을 시행하는 한편 신규 간호사에 대한 동시면접 선발 방식을 국공립 병원·상급종합병원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복지부 제공교육전담간호사 법제화 등 근속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도 실시한다. 간호사는 장시간 근로와 야근 등 '3교대'와 열악한 처우로
이직률이 가장 높은 직군 중 하나로 꼽힌다. 임상 간호사 10명 중 7명은 '10년차 이하'로, 코로나19 이후 전체 8할은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다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조사 결과도 있었다.
정부는
신규 간호사의 초기 적응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1년간의 임상 교육·훈련체계를 도입한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교육전담간호사를 두도록 제도화하고 관련 비용은 건강보험 재정 등으로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병원에 근무하면서 간호대 교수를 겸직하고 실습교과목을 강의하는 임상간호교수제 도입도 추진한다. 실습 장비·시설 지원 같은 물리적 지원을 포함해 통합적 임상실습, 시뮬레이션 실습학점 인정 확대 등으로 실습 교육여건도 강화한다.
인력 배치 기준은 해외 선진국 사례에 맞춰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간호'하게 하겠다는 지향점을 세웠다.
또 병원이 간호인력을 많이 배치할수록 재정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건보 상 간호인력 지원수가를 개편하기로 했다.
간호인력 확보 수준에 따라 6개 등급을 매겨 기본진료료 중 입원료를 차등 지급하는 간호등급제 기준 등급은 상향한다. 등급 간 재정지원의 가산 폭 확대와 더불어 간호사 산정 기준은 병상 수에서 환자 수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중증 수술환자, 치매·섬망 환자 입원실(상급종합병원 등)에 근무하는 간호사와 환자의 비율은 1 대 5에서 1 대 4로 개선한다. 한 사람당 환자 30~40명을 보고 있는 간호조무사도 배치를 확대해 한 사람이 환자 8명을 볼 수 있도록 변경한다.
복지부는 간호등급제 하한선을 강화해 법에 명시된 인력기준을 준수하도록 유도하고, 미이행 시 제재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제공아울러
간호사들이 다양한 근무방식을 경험하게끔 시범사업을 전면 확대하고 제도화도 추진키로 했다. 가령 현행 3교대 방식을 낮 또는 저녁 고정근무로 바꾸거나, 야간시간 전담근무를 지정하거나 12시간씩 2교대를 세우는 방식 등이다.
병원들이 이같은 근무제를 적용하는 데 필요한 대체인력 채용도 지원한다.
인프라 문제가 심각한
필수의료 분야는 간호인력 배치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환자실, 응급실, 소아·청소년과 등이 해당된다. 각 과별로 경력간호사 양성을 위한 표준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교육전담간호사도 별도 배치한다.
정부는 병원이
필수 부서에 근무하는 경력 간호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건보 지원기준(의료질평가지원금)에 필수병동의 경력간호사 확보기준을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앞서 발표한 응급의료전달체계 개편에 발맞춰 간호인력 배치기준도 중증응급의료센터-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실 등 3단계로 개편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이날
불법 의료행위 논란이 이어져온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다만, 미국처럼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시험을 본 간호사들에 한해 면허를 발급, 합법적 활동을 허가하는
'전면 제도화'를 시사하는 건 아니라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복지부 임강섭 간호정책과장은 "이는 의사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다른 의료기사 등으로 촘촘히 이뤄진 현행 직역별 법률체계 내에서 충분히 역할 분담을 통해 조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직역을 만드는 것으로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비용을 더 상승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이어 "다만
이들의 업무범위가 현행 의료법령상 면허범위 내에서 누구의 역할에 속하는 건지를 보다 분명하게 하고, 이들에 대한 관리체계를 마련해 나가겠다는 뜻"이라며 "명확히 분류되지 못했던 업무 영역, 관리체계의 제도화에 대해서는 의사단체, 환자단체, 간호사 관련 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세부 내용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 발표에 대한 간호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과거 거론된 내용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구체적인 '알맹이'는 없다는 취지다.
오는 27일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갑자기 일정이 당겨진 것도 정책의 진정성을 떨어뜨린다는 평가다.
보건복지부 제공